2018년 6월 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F조 조별리그 한국과 스웨덴전을 1시간여 앞둔 미디어센터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킥오프를 앞두고 양 팀의 주전 라인업이 발표되는 시간이다. 나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새로고침’만 눌러댔다. “조현우라고?”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한국 기자들이 모여있던 미디어센터 한쪽이 시끌시끌해졌다. 신태용 한국 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의외였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김승규가 이번에도 골키퍼 장갑을 낄 거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3년

, ,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인 . 이 드라마가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과연 누가 , 즉 “타이틀롤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이병헌을 비롯해 유연석, 변요한 등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인물 모두 역할이 크고, 구한말을 배경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선명한 색을 드러내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진정한 은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양반가 규수라는 신분을 뒤로하고 조국을 위해 남장을 한

모델 출신 배우 주지훈(36)의 연기 여정은 초입부터 꽤나 탄탄대로였던 것 같다. 그 자신 스물 네 살이던 12년 전. 연기 경험 없이 도전한 첫 드라마 (2006)에서 그는 황태자 이신으로 분해 단숨에 멜로계 청춘스타로 비상한다. 이듬해 (2007)에선 이중인격자 오승호를 호연해 진일보한 연기력을 인정 받으며, 영화 데뷔작 (2008)에선 게이와 오묘한 감정선이 흐르는 앤티크 사장을, (2009)에선 한 여인을 사랑한 자유 영혼을 선보였다. 게다가 희대의 카사노바 돈주앙 역으로 뮤지컬(

서울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의 교수인 양혜규는 현재 국제 미술계가 매우 중요시하고 가장 알고 싶어 하는 한국현대미술가다. 전 세계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는다거나 유명하다고 표현하는 대신, 굳이 ‘가장 알고 싶어’ 한다고 쓴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 양혜규의 미술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수도, 충분히 향유되거나 공유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만큼 쉬운 접근이나 흔한 미적 경험과는 인식적, 감각적 거리가 있기에 더욱 가까이하고 싶고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매력이 그녀의

1. 미소와 같은 처음 읽는 것은 아니지만,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몇 구절에서 흔들렸다. 일본의 한 소녀가 한국의 어느 학교를 방문하고, 두 소녀가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나누던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다시 읽었을 때, 거기엔 할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문장으로 남기지 못한 아주 긴 사연이 있다. 이런 것이었었지, 라며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의 뭉클함과 흔들림이 기억 나 아주 잠깐 멍해 있었더랬다. 마침내, 이런 생각에 닿았다. 요즘, 젊은 작가의 소설

2000년의 어느 날, 의 ‘이몽룡’으로 스크린에서 반짝이는 신인배우 조승우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는 내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서 오랫동안 응원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의 ‘이 도령’을 시작으로, 햇빛 비추는 창가에서 와니의 눈썹을 그려주던 의 ‘영민’, 엘리베이터 앞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인주에게 활짝 웃던 의 ‘지형태’, 뮤지컬 의 사랑에 미친 ‘돈 호세’를 연이어 만나면서 나는 점점 그의 충성도 높은 팬이 되어갔다.그 후로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천재지관 승우의 첫 생은 꿈꾸는 용, 몽룡이었다.눈빛보소, 꿰어 뚫을 듯한 시력. 도드라진 이마 반듯하고, 숱많아 두터운 눈썹 또한 가지런하다. 반듯한 콧날 아래 입술 또렷하며 그린 듯한 귀, 갸름한 턱선이 한눈에 도령상이다. 그러니 조선 숙종기 남원부사의 아들로, 천인지일인이 되어 배우 승우가 처음 탄생한 것이다. 소년등과일불행이라 해도 소년등과 후의 염려일 것이라, 암행어사로 돌아온 승우는 일단 탐관오리를 소탕하는 동시에 지조의 연인 춘향을 구출하는 일타양피, 반전의 사내가 되는 것이다, 멋지게.어떤 생에서 승우는, 저 애민의

영화 (2015)은 우장훈 검사(조승우)가 정치깡패 출신인 안상구(이병헌)와 손을 잡고 정경유착 세력을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참신한 서사라고 하긴 힘들다. 정의로운 검사가 외압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악인을 처벌한다는 내용의 한국영화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경찰)가 악당을 잡기 위해 깡패와 공조한다는 설정 또한 몇몇 홍콩 영화로부터 이어져온 클리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럼에도 관객들은 을 식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얼마간 배우들의 열연 덕택이었을 것이다. 이병헌과 백윤식의 연기도 발군이

조승우는 뮤지컬 무대에 설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출연 회차는 피케팅이라 불릴 만큼 순간에 매진되며 편당 출연료까지 회자되곤 한다. 그는 2000년부터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고, 12편의 작품으로 자신의 색채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출연작품을 통해 이를 짚어보기로 한다.그의 뮤지컬 활동은 세 시기로 나뉜다. 그는 초기에 학전의 (2000)와 (2001), 에이콤의 (2000)에서 해설자, 걸인(1인 7역), 고종 등의 배역으로

기록할 ‘기記’자를 쓰지만, 기자記者는 본래 듣는 직업이다. 쓰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람들의 의견을 자주 많이 깊이 들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정結晶이 기사記事다.공연 담당 기자에게 배우 조승우(38)는, 오래된 비유를 빌리면 ‘밭에 숨겨진 보물’같은 이름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야 그 존재감을 익히 보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본향이라 할 무대를 홀연 떠난 지 이미 한참이었다. 그의 무대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공연판 사람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각자가 아는 조승우에 관해 들려줬다.올 봄 뮤지컬

21세기 전까지, 한국인들을 지배하는 희망은 탈출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의 사회 문제, 계층의 불평등 간의 문제를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라 믿으며, 한국을 저버리는 것을 통해 자신이 이 사회에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열심히 일해서 내 자식만은 미국에 보낼 거야.”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지긋지긋하게 듣던 말. 그들은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는 듯했다. 적어도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 그렇다면 이 희망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아마 의 시대. 19세기 후반 즈음부터가 아닐까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역사의 순환을 믿었던 혹자는 이렇게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는 아직 희극으로 다가오진 않은 듯하다. 근현대사 책을 보면서 그다지 웃을 일이 없다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이 비참한 하루를 견딘다. 의 뒷이야기가 어떻게 써내려 질지 뻔히 알면서도 낭만이 느껴지는 까닭은 작금의 우리에겐 딱히 들킬만한 낭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명하게 알고 있다. 의 김우진(공유)이 의열단을

공동집필까지 불사하며 액션 장르에 도전한 (2016), 신적 존재와 사후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 (2017) 등 최근 작품들을 보면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모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도전하는 ‘드라마 장인’으로 한 단계 도약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동안 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남자 주인공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안하무인 재벌과 평범한 여자의 만남을 중심사건으로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즉, ‘사랑받는 여성’으로서의 캐릭터 설정이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주요 시청자인 2030대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는 작가다. 게다가 왕성한 에너지도 있어서 지칠 줄 모르고 그 반짝반짝한 사랑이 어울리는 새로운 배경을 찾아나선다. 김은숙 작가는 전작에 만족하지 않고 본인의 드라마를 복제하지도 않는다. 구조는 비슷할지언정 장르나 배경을 끊임없이 다르게 시도해본다. 그 점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좋은 드라마 작가 후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에서는 뭔가 5프로 부족해 보인다. 전이라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이미 반응이 폭발했을텐데 끝내 미지근한 걸 보면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왜

철없던 유년시절,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던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다. 그때 잠결에 무심코 보았던 드라마가 였을까 아니면 였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틈틈이 몰래몰래 챙겨보던 김수현의 과 나연숙의 , 김정수의 그리고 TV문학관 시리즈는 잊을 만하면 꺼내보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였다. 그 후로 다큐멘터리 영화만큼이나 애청하던 밤하늘의 별과 같은 그 무수한 드라마의 목록들. 송지나의

요즘 대하사극 이 대세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방영되고 중국에 이란 제목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이 드라마가 친일미화 및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이 드라마는 우선 무엇보다도 제작가치(production value)가 매우 높은 드라마다. 24부작인데, 제작비만 무려 400억 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회당 약 16억 원이 들어간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트, 의상, 심지어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만큼

작년 가을, 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왔다. 자취방은 버려야 할 것들로 가득했다. 첫사랑과 나눴던 연애편지, 누렇게 변색된 속옷, 새벽에 끼적인 감성 충만한 유언장…… 더불어 안녕을 고했다. 볕 좋은 날 버릇처럼 들렀던 연남동 서점, 찰리 채플린 영화를 상영해주던 성수동 카페,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 한국영화는 어쩌고 문학이 저쩌고 떠들어대던 신촌 술집에. 사실은 도망친 거다. 등단 후 사라지는 작가가 너일 수도 있다며 겁주던 선배들로부터. 무지함을 감추려 애쓰던 술자리로부터. 누군가와 경쟁 붙이며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시작의 끝 빗속에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거기 조그마한 내가 있다. 일상의 갈증 속에서 떨칠 수 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있다. 자주 딴생각을 한다. 벗어난 것들에 온통 관심이 가닿는다. 소외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말한다. 온갖 사물들이 널려있는 기억 속의 거리, 어떠한 것을 위한 요구, 한 순간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나의 첫. 문학이란 이름 앞에서 낯익은 것들을 바라보는 낯선 눈, 낯선 세계는 생경한 목소리로 쏟아져 나왔다. 고요하게 들끓는 질문들, 외롭고 막연한 자화상이 물음 속에 들어있다. 그것들은 결핍

from. 첫사랑... A가 물었다. “그런데 첫사랑이 정확히 뭐야?” B가 턱을 매만지며 우수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처음으로 사귄 사람이지. 그러니까 첫 연인.” 곁에 있던 C가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첫사랑이란 건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감정을 말해. 때문에 그건 짝사랑일 수밖에 없어.” 나는 그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검색 창에 ‘첫사랑’을 입력해봤다.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첫사랑 -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 나는 말했다. “둘 다 맞는 말이야. 처음으로 느낀 사랑도 첫사랑이고 처음으로 맺

창작의 초심初心홍순모(조각가) 러시아에서 전시 중에 공훈작가인 원로화가의 화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벽에 걸려있는 한 작품에 계속 시선이 끌렸다. 당시 화가가 그린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신선함이 엿보이는 그림이었다. “저 그림은 언제 그리신 건가요?” “대학 졸업 후 그린 첫 작품입니다.” 작품이 세련되진 않았지만 작가의 독특하고 투박 한 체취의 조형언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많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이 있다. 좋은 작품은 경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비운 무심한 상태에서 우연히 나온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