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영화감독 정지영 “내가 모범을 보여주면 후배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INTERVIEW] 영화감독 정지영 “내가 모범을 보여주면 후배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20.07.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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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_ 2020년 6월 14일 토 오후 5시 •곳_ dmc 첨단산업센터 <소년들> 제작 사무실
•인터뷰어_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녹취 정리_ 양진호(영화평론가)
•사진_ 김한솔 기자

  전찬일(이하 전): 고맙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요.

  정지영(이하 정): 나야말로 일요일에 시간을 뺏어 미안한데….

  전: 사실 이 인터뷰는 제가, 《쿨투라》 손정순 대표에게 요청했습니다.

  정: 아, 그래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전: 무엇보다 <블랙머니>에 반해서였죠. <블랙머니>는 250만이라는 유의미한 흥행성적을 거두기 했고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받아, 머잖아 또 한 편 연출하시겠구나 생각했는데 며칠 전 <소년들> 관련 기사가 떴더군요. 영화는 어느 정도 진척된 건지요?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영화에 들어가시는 거라, 아무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불안하실 것 같습니다만….

  정: 걱정되는 부분이 많지. 코로나19 이전에 <소년들>에 대한 투자 계약이 이뤄져서 이 상황에서도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거고.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행운이지.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나에게 정말 좋은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어. 사실 <소년들>은 <블랙머니>와 거의 같은 시점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영화였어. 잘 알다시피, 내가 <남영동 1985>(2012) 이후 작품을 안 했는데…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즈음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어. 추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앞으로 만들 영화들을 준비하는 것밖에 없었어. <소년들>도 그렇게 다른 영화랑 ‘준비 중’인 상태였는데, <블랙머니> 진행 상황이 갑자기 좋아졌지. 투자자가 나타난 거야. <소년들>은 CJ 엔터테인먼트와 이미 제작 일정 등을 다 잡아 놓았던 상태였고. 그런데 갑자기 <블랙머니> 투자가 들어오니 내 입장에서는 먼저 촬영에 들어가야 할 영화를 골라야 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 <블랙머니> 투자자는 무조건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하고…그때 다행히도 CJ에서 양해를 해 줬고…그렇게 <블랙머니>가 먼저 나오게 된 거지. 그런데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차기작이 금방 나왔다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을 거야.

  전: 감독님은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이어 오고 계십니다. 감독님 영화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한 축이 ‘사회 문제’와 관련된 것이죠. 이번 영화도 그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소년들>이란 제목은 부드럽지만 영화 자체는 한국의 어두운 이면을 감독님 특유의 비판적 시선, 그러면서도 휴머니즘적으로 그리는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1999년 2월 6일 새벽,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 3명의 강도가 당시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장모 유 할머니를 위협하여 테이프로 묶은 뒤 금품을 품치고 달아났으며, 이때 77세였던 할머니는 질식사했다 – 편집자 주)에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도 간단하게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정: 일부러 의도하고 그런 주제나 소재들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지만, 평소에 사회적 문제에 대해 꾸준히 내 의견을 갖고 그 문제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보니까, 그런 영화들을 만들게 됐던 것 같아. 나중에 정리해보니 영화에서 다루는 게 대부분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더라고. 내가 <부러진 화살>에서는 사법부를 비판했고, <블랙머니>에서는 검찰을 비판했다고. 이번 영화는 한국 경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야. 의도치 않게 우리나라의 공권력 세 군데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게 된 것이지.

 

  전: 다음에는 언론 비판을 적극 해주시면 좋겠네요. 감독님의 맥락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봉준호 감독도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사회 비판을 향하잖아요. 저는 감독님의 방식이 봉준호 감독에게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독님 영화의 한 축은 사회 비판, 다른 한 축은 한국 사회의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한 것들이라고 볼 때, 감독님은 가장 현재적이라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담론을 선취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70대 중반의 감독이 현역으로 ‘건재’한다는 걸 보여주셨다는 점에서 감독님은 한국영화 역사를 개척하고 계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워낙 영화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입장이라서, 감독님의 행보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전: <블랙머니>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은데요, 영화에 대한 남다른 소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말씀해주시죠.

  정: <블랙머니>를 준비하면서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을 많이 가졌지.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고, 시나리오 작업도 굉장히 오래 걸렸어. ‘론스타 사건’이라는 국가적 사건을 어떻게 하면 서사적으로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지. 그 작업이 오래 걸렸는데, 주인공을 ‘검사’로 하기로 하면서 고민이 좀 해소되기 시작했어.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잖아. 기자나 은행원, 모피아 중에서 주인공으로 할 수도 있고….사건의 스케일이 너무나 크고 복잡해서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주인공에 대한 걸 정하고 나서는 영화의 방향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지.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이 잘 마무리되고 난 뒤에는 돈이 문제였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영화는 시민 펀딩을 받아 제작해보려고 했어. <블랙머니> 제작비를 어떻게 모을까 하는 문제는 양기환(제작사 ‘질라라비’ 대표)도 감을 못 잡았어요. 양기환이 이 소재를 가져왔지만, 양기환도 그 영화는 기업 투자는 절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일단 제작위원회를 꾸리기로 했고,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작비를 구해보려고 했어. 명진스님, 함석헌 신부님 등…시민사회에 계신 분들을 만나서 얘기하고 그분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 펀드를 조성하면 제작비가 모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 이런 구상을 가지고 처음에 제작위원으로 20명을 모셨어요. 하지만 모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못하고, 제작위원회 정관 등등을 작성하고 있었는데…어디선가 나에게 연락이 왔어. 정말 갑작스럽게 투자처가 등장한 거지.

  전: <블랙머니>는 출연 배우들이 참 좋았던 영화죠. 전 이하늬의 열연에 반했고, 캐릭터 처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진웅도 돋보였는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고, 영화에서 요구되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잘 보여줬죠. 이후로 이하늬 광팬이 됐습니다.

 

  정: 이하늬의 경우…주변에서 다들 추천하는데, 나는 확신이 없었어. 키도 크고, 여러모로 화려한 느낌이 드는 배우잖아. 김나리 변호사는 지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우연히 TV를 보다가 이하늬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 무슨 고래 잡는 영상이 있더라고. 그걸 딱 봤는데, 거기서 굉장히 솔직담백한 모습을 보여주더라고. 그 이미지에 ‘지성’만 들어가면 좋겠다 싶더라고. 그 부분은 ‘함께 노력을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게 됐어. 영화를 보면 김나리 변호사는 화려한 색상이나 무늬가 들어간 옷은 한 번도 안 입어. 화려한 거 싹 빼고, ‘넌 외모도 실력도 돋보이니까 화려하게 입을 필요 없어. 그 자신감을 대사로 다 표현해’라고 디렉션을 줬지. 그러니까 모두 이하늬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내더라고. 오늘 인터뷰 전에 전찬일 평론가가 쓴 글을 읽다 보니, 이하늬에 대해서 상찬하는 대목이 있더라고. 그래 이하늬 배우에게도 전했는데, 좋아하더군.

  전: <블랙머니>에서는 주인공들이 지극히 사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판타지적인 타협을 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까요. 봉준호 감독도 서사를 구성해낼 때 감독님처럼, 대중 영화적 타협을 잘 안 하는 편이죠.

  정: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항상 고민을 하는 편이지. 쉽지 않은 작업이야.

  전: 감독님과 봉준호 감독이 철저한 리얼리스트라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의정’을 입히지 않는 것이죠.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오늘 인터뷰의 직접적 계기는 곧 개최될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9일~16일, 이하 BIFAN)입니다. 조직위원장으로서,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이 많으실 텐데, 이번 영화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정: 일단 온·오프라인을 결합해 진행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정한 건 아니고 집행부에서 회의를 통해 그렇게 하기로 한 거지. 이 문제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오프라인 방식이 섞이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 결국에는 개최 즈음까지 가봐야 영화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평창국제평화영화제(6월 18일~23일)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나본데, 그곳은 수도권이랑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코로나 위험이 적은 편이지만, 부천은 수도권이기 때문에 쉽게
24 오프라인 진행을 결정할 수가 없지. 지금 코로나 관련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잖아.

  전: 영화제에 대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의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100퍼센트 온라인 방식으로 영화제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죠. 영화제를 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언텍트’와 ‘컨텍트’의 의미를 영화제에서 어떻게 이해·활용하느냐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100퍼센트 언텍트로 진행되는 영화제는 영화제로서 의미가 없다고 여기거든요. 10퍼센트든 5퍼센트든 오프라인 방식은 필수적인 거죠. 개·폐막식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영화제의 현장성을 지켜내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번 BIFAN도 어느 정도든, 오프라인 방식이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 내 생각에는, 코로나19 이후로 영화제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여러 패턴이 바뀔 것 같아. 그렇다면 영화제의 형태도 대면 방식과 비대면이 섞이는 형태가 되는 건 피할 수 없겠지. BIFAN의 경우 작년에 신철 집행위원장이 와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뭔가 알게 된 것들이 있는 것 같아. 그래 이번에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코로나가 터진 거거든. 그래도 그렇게 기획된 것 중 몇 가지는 이번에 실행하기로 했어. 그중에서 제작지원, 창작지원 등등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겠는데, 예전보다 규모를 확대했지. ‘BIFAN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신철 집행위원장의 계획을 내가 객관적으로 보건데, 이 친구가 ‘확실히 다른 영화제’라는 모토를 유지하면서 영화제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 AI등 첨단 기술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올해엔 세계 괴담을 모집해서 창작지원을 해 주기로 했어. 신철 위원장은 여러 모로 이 영화제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자주 느끼곤 해. 그냥 관습적으로 가는 게 아니고 그동안 경험했던 많은 것들,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제를 다니면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걸 많이 구상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올해로 조직위원장을 그만 두기로 했어. 이번에 그만두지 못한 건 아직 마땅한 분을 조직위원장으로 구하지 못 해서지. 아무래도 나는 계속 영화감독으로서 창작에 집중해야겠더라고. 이런 일은 자신의 본업에 큰 부담이 없는 사람이 해야지, 나처럼 창작하는 사람은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전: 그렇군요. 신철 위원장이 제작자기 때문에 제작에 방점을 찍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제작 지원을 늘리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죠. 예전에는 영화제 하면 ‘소비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는 ‘생산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거든요.

  정: 부천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여건상 지역적으로 모든 시민이 좋아하고, 모든 공무원이 다 좋아해요. 상당히 좋아, 여건이. 이럴 때 잘 키워 놓는 것이 중요하지.

 

  전: 이제 또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올해 평창영화제에서 감독님의 <남부군> 리마스터링 버전이 상영되는데, 감독님께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부군>이 감독님 영화세계에서 터닝포인트적 역할을 했다면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영향을 준 어떤 사건이 있는지요?

  정: 나는 1987년이 한국사회의 분기점이라고 보는데, 1987년도에 국민이 권력을 이긴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지. 그때부터 나는 국민의 ‘빽’을 믿고 <남부군>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데…그전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지.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청년이었고, 그때부터 전후(戰後) 문학에 심취해있었어. 항상 사회문제에 민감해 있었지. 그런데 영화 현장에 들어오니까 그런 걸 주제로 영화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어. 하지만 1987년을 겪고 나니, <남부군> 같은 영화에 도전할 용기가 생긴 거야. 운이 좋았던 거지. 1987년도 6월 10일은 내 삶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어.

  전: 또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올해가 5·18 40주년인데, ‘정지영 감독님이 왜 5·18 영화는 안 만드시지? 분명히 잘 만드실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정지영만의 색깔’이 들어가는 5·18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신지요?

  정: 그 생각을 내가 왜 안 했겠어.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었는데….

  전: 도전을 한번 해보시죠! 그런데 <남부군>이 감독님의 영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영화들도 모두 감독님의 생각을 고루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시나요.

  정: 내 영화는 다 N분의 1이지. 모두 소중한 영화고….

  전: <까>(1998)는 어떤 생각으로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영 아닌 듯해서요.

  정: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지.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 어떤 교수 얘기. 그가 학교에서 연기 지도를 하다가 잘리게 된 얘기. 뉴욕에서는 연기 수업에서 옷을 다 벗고 연기하는 것을 하나의 필수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런다는 걸 다 듣고 난 다음의 일인데…그런 이야기를 한 번 영화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쉽지 않았다고. 그 영화도 나는 ‘정지영 영화’의 하나로 소중하게 생각해. 감독은 원래 객관적으로 인정 못 받는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니까.

  전: 원래 창작자의 ‘의도’와 ‘수용’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까>는 감독님의 <남부군> 이후의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렇고, 평론가로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어쨌든 ‘정지영다운 영화’가 아니더라도 감독 입장에서는 그것도 내 영화다, 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정: 사실 그 영화에도, 영화적인 실험을 많이 담았는데 잘 못 찾더라고….

  전: 영화적으로 발견할 부분이 많이 있는 영화라는 말씀이시군요.

  정: 그렇지. 그 당시에는 영진위에서 받은 지원금을 가지고 어떻게 저예산으로 영화를 한 편 만드느냐, 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며 영화를 만든 건 아니야. 하지만 예산이 적다면 그만큼 영화적으로 더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들에 대해 구상해야 하는 것도 맞았던 거고.

  전: 꼭 <까>를 다시 보면서 감독님이 숨겨놓은 미덕들을 찾아봐야겠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의 주요 감독으로서 크고 작은 역할들을 많이 해오셨는데…감독님에게 특별히 영향을 줬다거나,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다거나, 하는 분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주시죠.

  정: 김수용 감독님은 나를 문하생으로 지도해주셨던 분이시지. 꾸준히 내게 관심을 가져 주셨었어. 나는 이른바 도제 세대의 마지막이지 않은가 싶어. 그런데 내가 도제 제도를 이어받지 못한 것 같아. ‘정지영 사단’이 있다거나, 뭐 그런 게 없으니까. 감독들을 많이 키워주질 못했어. 우리가 영화를 많이 못하고 그러다보니…환경이 변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 냉정히 말하면, 요즘 영화감독은 4년에 한 편 정도 영화 찍으면 되는 건데, 예전에는 안 그랬지. 더 많이 찍었다고. 그래서 내게 영화를 배우고 같이 일했던 감독 중에 아직 데뷔를 못한 감독이 많아. 데뷔는 못 했지만 나와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있는 몇몇 감독이 있긴 해. 개인적으로 친한 감독이나 배우로는 이장호, 강우석, 박중훈, 박광수 등등이 있지. 이장호 감독은 그 전이지만 대개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활발히 활동했던 감독들. 장선우도 있고….

  전: 감독님은 여러 악조건을 이겨내시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고 계시니, 후배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선배일 수도 있겠네요.

  정: 내가 모범을 보여주면 후배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전: <블랙머니>의 250만이라는 스코어는 대단한 건데, 내심 많이들 부러워할 거예요. 오늘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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