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드라마 월평] 심심풀이 땅콩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
[12월 드라마 월평] 심심풀이 땅콩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8.12.2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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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비평할 게 있어요?

아주 가끔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드라마는 수신료를 내긴 하지만 거의 공짜라고 해도 무방한 텔레비전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미디어를 통해 방영된다.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드라마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찾아보거나 전문가의 식견을 구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줄거리 위주의 드라마 관련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는 정도가 노력의 전부다. 물론 이보다 조금 더 성실하고 열성적인 시청자라면 <쿨투라>에 수록된 드라마월평을 매달 챙겨보겠지만 그런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늘 은둔의 고수처럼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드라마 시청에 있어 문화적 취향이란 게 별로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자고로 취향이란 반복적인 시청과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세련된 감각과 전문적 교양으로 발현되는 것일 텐데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기에 드라마는 오래된 친구마냥 그 존재의 중요성이 꽤 오랜 시간 소홀히 다루어져왔다. 그런 까닭에 드라마를 평가하는 가치기준 또한 부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이고 어떤 드라마가 조금 덜 좋은 드라마인지 구분할 수 있는 문화적 교양이 덜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사소한 예로 막장 코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꼭 그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영국 시즌제 드라마 <블랙 미러>에는 돼지와 수간獸姦을 하는 영국 총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깜짝 놀라며 질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돼지와 섹스하는 총리의 모습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카메라가 비출 뿐이다. 드라마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론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러한 여론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급격한 기술의 발달이 현대사회에 가져올 결과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일부 호기심 강한 사람들을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론이다.

영화도 아니고 그래봤자 드라마잖아. 소파에 누워 편하게 먹는 심심풀이 땅콩 같은.

여기까지 읽고도 아직까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수많은 주전부리 중에 땅콩이 선택된 거야.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거라고. 작은 콩이 맵다, 아니 더 고소하다, 몰라?

최근 미디어 플랫폼의 다각화와 함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은 콘텐츠 생산과 소비에 있어 장르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모바일 하나만 있으면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모든 문화콘텐츠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즉, 드라마의 경쟁자는 드라마를 시청할 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활동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우리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끌 수 있는 것이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여기까지 오는 데 레드카펫이 너무 길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심심풀이 땅콩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이라니. ‘정체성’을 논하는 이런 진지한 글을 2018년 12월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챙겨 읽는단 말인가. 이 글은 일종의 ‘신년 운세’와 같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와 드라마,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글.

 

Ⓒ 드라마 <HUMANS> 홈페이지

2018년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2016년 3월 13일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프로 바둑 기사와의 대결로 큰 화제를 모았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알파고가 4승 1패로 이세돌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로부터 삼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때보다 우리는 삼년 더 늙었고 그만큼 낯선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그리고 영국드라마 <휴먼스>는 시즌3으로 돌아왔다.

극중 인간에게 휴머노이드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자의식이 없어 말 잘 듣는 유용한 로봇과 자의식이 있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위험한 로봇. 무용한 로봇들을 한 데 모아 ‘게토’에 가두고 그들의 생명줄인 전력을 끊어버림으로써 인간은 휴머노이드 대량 학살을 감행한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대립구도와 스팩터클한 전쟁. 여기까지는 인공지능로봇을 소재로한 여타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활용되었던 서사전개다. 인간세계를 위협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결국엔 인간적 가치와 신념을 수호하는 용기와 인류애로 전환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휴먼스>는 이전 작품들과 조금 다른 지점에서 스토리를 확장해나간다.

우선, <휴먼스>의 주인공은 ‘휴먼’이 아니다. 주요 캐릭터의 대부분이 휴머노이드이며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의 시각, 그러니까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휴머노이드의 대응방식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유대인의 게토처럼 좁은 공장 안에 갇혀 지내는 휴머노이드들. 부족한 전기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순번을 양보하며 공동체를 지켜나간다. 무력으로 제압하는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입에서는 ‘평화’라는 단어가 흘러나온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인간과의 공존이다.

 

Ⓒ 드라마 <HUMANS> 홈페이지

극중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행동은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라기보다는 그동안 ‘인간’이란 주류 집단이 장악했던 그들만의 패러다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선제공격으로 그려진다. 그들이 수호하는 인간적 가치와 신념은 인간이라는 종족 중심의 이데올로기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 – 남성 – 이성애’를 주축으로 하는 인간사회의 가치 체계 속에서 동성연인 니스카(휴머노이드)와 아스트리드(인간)는 획일화된 가치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성을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국드라마 <휴먼스>의 휴머노이드는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다. 극중 휴머노이드의 인정투쟁 구호인 “Synths have a voice, and it will be heard(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며 너희는 듣게 될 것이다)”가 UN에서 방탄소년단이 강조했던 “speak yourself(자신의 목소리를 내자)”와 하나의 대화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적, 성별, 나이, 인종, 성정체성, 장애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긴 수많은 묵음默音들과 지금 이 글을 말없이 읽고 있는 당신.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의 소수자들이다.

이제 더 이상 <휴먼스>는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그렇고 그런 흔한 SF드라마가 아니다. 시즌1과 2에서 주요 스토리라인을 차지했던 인간과 휴머노이드 혹은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구도가 무너지고 소수자성이 강조된 시즌3에 이르러 <휴먼스>는 ‘지금 여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인간인가’라는 성찰에서 시작해 ‘너희는 왜 인간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되다가 결국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탄식에 도달한다.

시즌 3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과 휴머노이드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알던 그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마치 휴머노이드에 자의식을 불어넣어 인간성을 만들어내듯 시즌 4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다.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조건이 좋은 편이다. 맛도 좋고 식감도 좋은 땅콩 아닌가.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드라마. 오늘부터 <휴먼스>를 시즌 3까지 꼬박꼬박 성실하게 다시보기 하자. 그러면 우리의 내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밝고 고소할 것이다. 건강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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