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7] 영화의 구조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7] 영화의 구조
  • 이무영(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 승인 2020.07.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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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 - 어떻게 영화의 문을 열 것인가?

  영화의 아이디어도 충분하고 이야기의 확장까지 어느 정도 청사진을 갖췄다면 건물을 짓듯 곧바로 시나리오 쓰기에 돌입할 수 있다. 하지만 멋진 오프닝을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각적 묘사도 훌륭해야 하고, 동시에 관객에게 전달할 정보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웅대한 건축물이라도 주춧돌을 잘못 놓는다면 안정성을 장담하기 어렵고 때론 무너지는 참사를 맞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닝 등 전반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그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반부는 관객이 자신들이 볼 영화가 무슨 얘기인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케 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선을 보거나 미팅할 때 첫인상이 모든 걸 좌우하듯 작가는 시작부터 관객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을 명확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장편 전반부의 러닝타임은 길지 않으나, 어쩌면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중반부보다 더 많을 수 있다. 그 쉽지 않은 작가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소개

  대부분의 영화는 시작과 함께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주인공과 관객의 첫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작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객이 자신이 내세우는 주인공에 대해 처음부터 흥미를 갖게끔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주인공을 보며 웃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불쌍히 여기게 할 것인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할까, 실없는 인물로 생각하게 할까?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할까, 객관화하게 할까?

  대체적으로 영화에서 먼저 드러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외적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의 진면목과 차이를 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처음엔 한없이 착한 장애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연인인 영미를 잃은후 장기밀매집단 가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는 모습과 명확한 대비를 이룬다.

  <밀양> 초반부의 신애는 심약한 과부다. 그러나 아들 준을 죽인 박도섭이 자신에게 용서를 받기 전에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하자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다. 교회집회를 훼방 놓고, 장로를 유혹해 넘어뜨리려는 모습은 애초 관객이 보았던 소심한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마더>의 엄마는 아들 때문에 골치 썩고 비굴하게 돈이나 꾸러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여자다. 심지어 아들의 친구에게 모욕당해도 꼼짝 못한다. 이런 그녀가 나중에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관객은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녀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인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녀에 대해 관객이 다 속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전반부가 아니라 후반부에 드러나는 모습이 진짜 그녀다. 무슨 소리냐고? 그녀는 다섯 살 아들을 농약 먹여 살해하려 했던 여자다. 아들도 죽이려 했던 여자가 남을 죽일 수 있는 건 당연지사다.

 

  영화를 보는데 필요한 기본정보 제공

  작가는 영화 시작과 함께 관객이 보게 될 영화가 무엇인지 최소한의 정보를 줘야 한다. 이야기의 배경과 시간(혹은 시대)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다 알려주는 과잉친절은 필요 없다. 첫 데이트부터 자신의 모든 걸 다 까발리는 상대에 대해 호감이 급 하강하듯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다 알려줄 경우 관객의 관심도는 바로 떨어진다.

  반대로 너무 정보를 안 주는 것도 문제다. 데이트 상대가 자신을 드러내는데 너무 신중하고, 처음부터 뭔가 숨긴다는 인상이 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그렇기에 작가는 관객이 처음부터 영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며 따라올 수 있게 적당한 양의 정보를 공급해야 한다. 직선적으로 어떤 영화인지 다 설명할 필요는 없으나 분명 정확한 힌트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전반부가 끝날 즈음 관객 1백 명이 영화의 방향에 대해 다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다. 전반부,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효과적 정보 제공에 실패한 것이다.

  전반부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3가지로 고민을 압축해야 한다.

  1) 어떤 정보를 꼭 알려야 하는가?
  2) 어떤 정보를 감춰야 하는가?
  3) 어떤 정보가 암시적이어야 하는가?

  2와 3은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흥미를 유지하게 하는 효과적 방법이다. 이럴 경우 관객은 계속 “다음엔 어떻게 되지?”란 생각으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게 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영화 전반부의 정보는 인물에 관한 내용, 특히 주인공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CJ엔터테인먼트

  <마더>의 오프닝 씬에서 웬 중년 여자(김혜자 분)가 숲속에서 나와 실성한 듯 춤을 춘다. 흐느적거리는 그녀는 가끔씩 자기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한다. 관객은 왜 여자가 실성한 듯 춤을 추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녀가 좋지 않은 일을 겼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그녀가 춤을 추기 전 살인을 저질렀음이 드러난다.

  곧 이어 두 번째 씬, 약재상에서 그녀는 약초를 자르며 문 너머로 차도 가까이서 개와 장난을 치는 한 청년을 위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차사고가 날 뻔하고 그녀는 손가락을 베인다. 혼비백산한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가 ‘도진’이라 이름 부르며 괜찮은지 살핀다. 뭔가 정신적으로 모자라 보이는 도진은 “엄마 들어가!”라며 그녀를 밀치고는 허둥지둥 멀어진다.

  작가는 맨 앞에서부터 주인공인 엄마가 시골 약재상을 운영하며 불법으로 침을 놓는 여자임을 알려준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를 파악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다. 특히 침은 영화의 플롯에 도저히 빠져서는 안 될 어마어마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살인을 저지른 현장에 불을 지르는데 정작 침 세트를 두고 나온다. 아들 도준이 그걸 주워갖고 오는 바람에 그녀의 살인은 완전범죄가 된다.

  침은 주인공의 정서적 측면을 표현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농약 먹여 죽이려 하지 않았느냐는 아들의 항변에 끔찍한 기억을 잊도록 침을 놔주겠다고 한다. 나중에 살인을 저지른 후에는 그녀 스스로 그 끔찍한 기억을 잊고 싶기라도 하듯 자신의 허벅지에 침을 놓는다.

  전반부는 아들 도준의 지적장애를 알리는 여러 영화적 장치를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그는 골프장 웅덩이에서 공을 줍고는 여자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벤츠차량 백미러를 파손한 친구 진태가 정작 자신을 범인으로 모는데도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전반부 ‘바보 도준’이 그냥 하나의 영화적 설정인 듯 보이나 뒤로 갈수록 그의 지적 모자람은 드라마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드러낸다. 평상시 꽤 유순한 그는 누가 자신을 바보라 부를 때 이성을 잃고 폭발한다. 그가 소녀를 죽인 것도 무시당했다는 감정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지적장애가 선천적인 게 아니라 엄마가 농약을 먹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네마 서비스

  <밀양>은 영화 시작과 함께 주인공인 신애의 신상과 정서적 상태에 관한 정보를 꽤 상세하게 보여준다. 처음부터 그녀는 꽤 불안해 보인다. 고장 난 차를 노변에 두고 아들 준을 간지럼 태우면 놀던 그녀는 갑자기 돌변해 아들더러 빨리 일어나라고 소릴 지른다. 곧이어 그녀는 준에게 “아빠가 고향인 밀양에 내려와 살고 싶다.”고 했다 말하는데, 정작 아들은 “아빠 없잖아!”라고 받아친다. 관객은 곧바로 그녀가 과부임을 알게 된다. 신애는 영화 전반부 내내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남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서울에서 잠시 놀러 내려온 동생이 매형이 딴 여자와 바람을 피우지 않았느냐고 하는데도 부정하려 든다. 남편의 부재가 그녀에게 남긴 마음의 공백이 얼마나 큰지를 잘 설명하는 설정이다.

  영화 내내 신애 두변을 맴돌며 그녀를 돌보는 종찬에 대한 정보 전달에도 작가는 세밀하게 공을 들인다. 종찬은 매우 보수적이며 어느 정도 세상의 찌든 때가 묻은 인물이다. 준의 노랑머리를 처음 본 그는 “머리 스타일이 와 그라노?”라고 퉁명스럽게 묻는다. 첫 만남부터 신애가 마음에 든 그는 계속 호의를 베푼다. 가짜 피아노대회 상장을 만들어 그녀의 피아노학원에 걸기도 하고, 다방 배달녀의 치마 속 팬티에 대해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그가 신애를 위해 아무 대가없이 헌신하는 모습은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아이러니다.

  초반 준이 다니는 웅변학원과 봉고차 씬에서 관객은 왜 이런 별 의미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두 씬에서 드러난 정보가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데 필수적임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왜냐면 이 웅변학원 원장이 나중에 준을 유괴해 살해하는 박도섭이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신애는 도섭에게 자신이 집을 짓고 살 땅을 알아봐 달라고 한다. 관객은 별 생각 없이 이 순간을 지나쳤지만, 이는 결국 크나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돈이 절실한 도섭은 신애가 여윳돈이 많을 거라 잠작하고 준을 유괴한다.

©CJ엔터테인먼트

  <복수는 나의 것> 전반부는 영화의 환경과 주인공 류에 대한 설명을 내레이션 형식으로, 라디오 디제이(이금희 분)의 방송을 통해 손쉽게 해결한다. 아주 효과적인, 뻔뻔한(?) 장치다. 

“전 착한 사람입니다. 성실한 근로자죠. (중략) 피붙이라곤 누나밖에 없는데요. 절 미대에 보내려고 누나는 진학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몹쓸 병에 걸리는 바람에 그것도 그만 둬야 했고… (중략) 그런데 요즘 제가 어떤 결심을 했거든요. (중략) 제 입으론 말할 수 없어요. 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 이니까요.”

  류는 피붙이라고는 누나밖에 없는 고아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 진학까지 포기했던 누나가 몹쓸 병에 걸렸다. 공장노동자이며 청각장애인인 그는 이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병을 고쳐주어야 한다. 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채 1분도 안 되는 러닝타임내에 소화할 수 있는 것은 내레이션의 힘이다.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하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오프닝 내레이션의 효과를 맛본 박찬욱은 이후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도 성우 김세원을 전반부 내레이터로 등장시켜 유괴살인범으로서 주인공 이금자의 과거사를 순식간에 설명한다.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9) 등 다수 영화들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효과적으로 내레이션을 활용한 좋은 케이스들이다. 자막도 영화의 환경이나 주인공의 과거사를 설명하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드라마적으로 방대한 양의 사전정보나 영화가 실화에 기반을 두었다는 내용을 관객에게 알려야 할 경우 많이 쓰인다.

  누나의 신장질환을 고치기 위해 돈을 모은 류는 바로 두 번째 씬에서 크나큰 좌절에 부딪친다. 의사 말에 따르면 A형인 줄 알았던 자신의 혈액형이 B형이란다. 작가는 오프닝에서 류를 한창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하고, 장면이 바뀌자마자 곧바로 좌절의 늪에 빠뜨린다. 잔혹하나, 정말 매력적이다.

  다음 장면, 류는 야구연습장에서 미친 듯 알루미늄배트로 공을 때린다. 관객은 이를 고독한 청각장애인이 울분을 다스리는 취미로만 판단하나, 여기서 보여준 류의 배팅실력은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수술비를 빼앗아간 장기밀매 조직을 응징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이어서 영화는 장기밀매 조직이 ‘장기 알선’ 전단지를 남자화장실에 붙이는 장면과 류의 실직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 정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향후 그가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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