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차라리 행복이 성적순이었으면!
[드라마 월평] 차라리 행복이 성적순이었으면!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0.07.3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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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청소년〉
ⒸSBS

  1999년 시즌1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시즌 7이 방영된 KBS <학교> 시리즈는 장혁, 최강희, 배두나, 김우빈, 남주혁 등 청춘스타 등용문으로 불리며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 십 대 청소년 시절 나 역시도 <학교>에 출연한 배우 장혁을 좋아해 그의 사진을 교복 안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문제아라고 불렀지만 소심한 여고생의 눈에 그의 반항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용기로 해석되었다. 그때 그 시절 반항아 ‘강우혁’은 대리만족의 희열을 주는 나만의 히어로였다.

  세월이 흘러 배우 장혁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는 새로운 얼굴과 함께 돌아왔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인문계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학교 2020>은 사회에 입문한 18세 특성화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쉽게도 캐스팅 문제로 제작이 무산되었지만, 등장인물의 주된 역할이 ‘공부하는 학생’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인’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아니, 매우 문제적이다.

ⒸJTBC

  ‘입시코디’로 큰 화제를 모았던 <스카이캐슬>(2018)은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예서와 우주, 그리고 혜나가 직면해 있는 문제적 상황은 학교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2020년 한국 청소년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순히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수업>의 성범죄와 <아무도 모른다>의 연쇄살인. 아직 뺨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는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범죄수사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과 공포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들의 일상은 생과 사를 오가는 생존의 경계에 서 있다. 이제 더 이상 학교는 학교가 아니고 학생은 학생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2020)은 우리가 알던 학원물의 전형적인 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우선, 극중 열일곱 살 학생들의 생활부터 범상치가 않다. 주인공 오지수는 학교에서는 조용한 모범생이지만 남몰래 세컨드폰을 통해 조건만남을 중개해주는 온라인 ‘포주’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앱을 기반으로 성매매할 남성과 여성을 연결해줌으로써 돈을 번다. 공유경제 기반의 토탈 성매매 플랫폼 운영자랄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클라이언트들 의뢰받고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지, 고객관리 대리하지, 픽업 중개하지, 이게 어떻게 포주야?”

  지수가 짝사랑하는 배규리도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온실 속 화초와는 거리가 멀다. 지수의 세컨드폰을 훔친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는 그에게 개처럼 멍멍 짖으라고 협박하는 한편, 학교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함으로써 그에게 윤리적 면죄부를 선사한다. 쟤는 담배공장 불량품을 일진에게 조공하고, 쟤는 연상 누나들과 조건만남하고, 쟤는 수행평가 대리하고… 너만 빌런인 줄 알았지?

  뭐 이런 요지경 같은 드라마가 있냐고 경악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 않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범죄의 잔혹함과 치밀함 때문에 기자들조차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길 꺼리는 N번방 사건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알 만큼 다 알고 있다. 신상 공개된 범죄자들의 나이가 십 대 고등학생부터 이십 대 중반 대학교 졸업생까지 너무나 어리다는 사실마저 말이다. 현실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장르적 특성을 자랑하듯 드라마 <인간수업>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학교를 설정하고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사회문제를 거침없이 폭로한다. 미성년자 조건만남, 성매매 알선, 학교폭력…


  어른들만 모르는 어른수업

  피해자의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이야기는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묻는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지수의 얼굴 그리고 이어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1등급 성적표에 위조 사인을 하는 지수의 모습에 나레이션이 낮게 깔린다. “내 꿈은 대학가기, 취직하기, 애 낳고 애 키우고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기. 그러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 돈이 구 천만원. 내 꿈의 가격이다.”

  평범한 청소년이 가질 법한 지극히 평범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일곱 살 지수는 같은 반 친구에게 조건만남을 알선하는 ‘포주’가 된다. 부모 없이 일 년 반째 혼자 사는 고등학생에게는 필요한 게 많으니까. 하루 끼니, 학교에 갈 차비, 학원에 다닐 학원비 등등 그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지수에 대한 어른들의 평가는 잔혹하고 냉정하다. “고지능 저감성”

  혼자 열심히 살아서 “기특하다”는 규리의 단 한마디 말에 눈물이 터져 버린 지수의 흔들리는 어깨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옆에는 그를 낳아준 부모도 그를 가르치는 선생도 그를 보호해줄 경찰도, 그러니까 제대로 된 어른이 하나도 없다. 그를 흉악한 범죄자로 만든 건 누구인가. 어른 아닌가. 우리 아닌가. 후계자 수업이란 명분으로 부모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규리의 자살시도 상흔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가. <인간수업>에 드러난 암울한 현실은 청소년의 잔혹한 민낯이 아니라 우리가 숨겨왔던 어른의 비열한 치부다. 이 드라마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건 인간수업이 아니라 ‘어른수업’이다.

ⒸSBS

  어린이는 어른이 된다

  <인간수업>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아무도 모른다>(2020)는 범죄 수사를 다룬 여느 장르 드라마와 달리 서사 전개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는 단순히 사건 해결이 아닌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차영진 강력계 팀장은 오랜 세월 동안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극 초반 범인으로 추정되는 서상원 목사가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함으로써 사건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건의 살인사건이 추가로 발생하면서 드라마는 연쇄살인이 아닌 그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드라마 제작진의 진짜 의도. 우리가 찾아야 할 인물은 연쇄살인범 서상원이 아니라 그의 양자 백상호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백상호, 그는 누구인가. 그는 서상원의 연쇄살인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장한 ‘학대받은 어린이’다. “날 버린 엄마는 울면서 때리고 날 구한 서상원은 웃으면서 때리고.” 폭력의 대물림을 통해 백상호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괴물로 자라난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감옥에 갇힌 그의 모습은 학대당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겹쳐지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결국, 그 방으로 돌아온 건가.”

  극 후반부에 백상호는 차영진 형사에게 묻는다. 학대당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구해준 사람이 서상원이 아니라 “너였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차영진 형사와 같은 빌라에 살며 막역한 ‘친구’로 지내는 열다섯 살 고은호를 연상시키며 깊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엄마에게 학대받으며 자란 은호는 차영진의 도움으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자라난다. 극중 은호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가 범죄에 휘말리게 되어 목숨을 위협받게 되지만 “그래도 자신은 구했을 것”이라며 후회하지 않는다. 백상호가 나쁜 어른에 의해 나쁜 어린이로 자라난 슬픈 비극이라면 고은호는 착한 어른의 보호 아래 착한 어린이로 자라난 모범 사례다.

  드라마는 학교를 배경으로 엄마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선생님과 학생, 삼촌과 조카 등 어른과 아이들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는 여러 유형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좋은 어른인가, 나쁜 어른인가. 그렇게 드라마는 연쇄살인의 시작점에 서상원이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 된 무지몽매한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라면 청소년은 우리의 현재다. <인간수업>과 <아무도 모른다> 두 드라마를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다.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해.” 차영진 형사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은호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나는 백상호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 작고 연약한 아이를 괴물로 키워낸 건 어른이니까. 백상호, 그리고 오지수와 배규리, 그 어린 영혼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한 우리야말로 냉혈한 연쇄살인범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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