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월평] 연대 없는 연대의 가능성
[연극 월평] 연대 없는 연대의 가능성
  • 차성환(연극평론가)
  • 승인 2020.07.30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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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이야〉
ⓒ연우무대

  누군가에게 굴뚝은 생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최전선이 된다. 인간을 풍요롭게 해야 할 노동이 ‘나’를 소외시키고 ‘너’를 소외시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 속에서 노동의 조건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망가뜨린다면. 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의 <이게 마지막이야>는 편의점 야간 노동자 ‘정화’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시대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정화’의 남편은 굴뚝 위 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중에 내려온 후로 무슨 이유에선지 집에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정화’는 ‘남편’과 두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마트캐셔로 일하다가 파업이 벌어져 지금의 편의점 알바로 옮겨온 것이다.

  ‘점장’은 CCTV로 알바들을 감시하는데 근무 태만을 트집으로 수당도 없이 초과 근무를 시키거나 퇴직금을 안 주고 사전에 해고해버리기 위해서다. ‘정화’에게 매니저 운운하면서 예의 그 교양 있고 상냥한 말투로 너그럽고 합리적인 외양을 띠지만 실상은 원활한 업무 교대를 핑계로 ‘정화’가 근무 시간 보다 30분 더 일찍 나오게 해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속내를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웃는 얼굴로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정화’를 빨아먹는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오라며 ‘정화’에게 1시간 늦게 출근하라고 말해주던 ‘점장’은, 수가 틀어지자 출퇴근 전자 기록부를 들이대면서 근로 계약을 어겼으니 해고할 수 있다고 협박까지 한다.

  편의점에서 부당해고 당한 ‘보람’은 ‘정화’를 찾아와 체불된 임금 청구서가 담긴 봉투를 ‘점장’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보람’은 빽빽한 알바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점장’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습지 방문교사 ‘선영’은 3개월 동안 밀린 교육비를 받기 위해 ‘정화’를 찾지만 누구보다도 어려운 가정형편을 알기에 매번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중 노동운동가인 ‘명호’가 찾아온다. ‘명호’는 ‘정화’의 남편이 친동생처럼 아끼며 가깝게 지내던 직장 동료로, 투쟁을 위해 ‘남편’과 함께 굴뚝에 올라갔었다.

  사측과의 협상을 위해 ‘명호’는 혼자 지상에 내려오지만 잘못된 타결을 이끌어낸다. 결국 뒤늦게 굴뚝에서 내려온 ‘남편’은이 사실을 알고 ‘명호’와 크게 싸운 후로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이이다. 목숨을 걸고 투쟁한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명호’는 자신의 말마따나 해고노동자와의 연대가 직업인 삶을 살고 있다. ‘정화’는 폐인이 된 ‘남편’과 지금의 힘든 상황이다. ‘명호’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에 적개심을 드러낸다. ‘명호’가 오랜만에 찾아와 건넨, 아이들 과자가 잔뜩 담긴 쇼핑백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넣을 정도다. 그런 ‘명호’가 남편이 예전에 빌려간 돈 300만원을 되돌려달라고 부탁하자 ‘정화’는 ‘명호’와 다시는 엮이지 않으려는 생각에 돈을 주기로 약속한다.

ⓒ연우무대

  여기서 주지해야할 점은 ‘명호’, ‘선영’, ‘보람’ 모두 어쩔 수 없는 각자의 처지에 ‘정화’를 찾고 결국 ‘정화’는 ‘점장’에게 돈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끊임없는 부탁과 거래와 교환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점장’에게 임금 체불 내역서가 담긴 봉투를 전달해달라는 ‘보람’의 부탁이나 3달치 밀린 교육비를 받으러 오는 학습지 교사의 수금 방문을 ‘정화’는 삼각 김밥이나 우유, 초코파이 같은 간식거리를 건넴으로써 무마시키려 한다. 폐기 상품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결제한 거라면서 사람 좋은 미소로 ‘보람’과 ‘선영’의 두 손에 들려 보내는 ‘상품’은 순수한 증여, 선물이 아니라 거래의 영역에 속한다.

  ‘보람’은 특별한 사유 없이 해고를 당했고 초과 근무 수당을 받지 못했다. ‘정화’는 ‘보람’이 근로기준법에 맞춰 다른 알바들의 체불 임금까지 받아내려고 ‘점장’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명호’의 돈을 갚기 위해) 어렵사리 부탁한 300만원을 ‘점장’이 흔쾌히 입금해주자 ‘정화’는 그런 ‘보람’에게 등을 돌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점장’에게는 분명히 ‘정화’에게 빌려주는 300만원이 보람에게 줘야할 400만원 보다 싸게 먹힌다는 셈법이 있다. ‘점장’은 은근슬쩍 ‘보람’의 봉투를 편의점 뒷마당 펜스의 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정화‘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이다. 이 장면의 집중도는 꽤 높은데 이 꺼림칙하고 불편한 거래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공모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연우무대

  모르쇠로 버티던 ‘점장’은 어느 날 갑자기 ‘보람’이 청구한 돈 400에 웃돈까지 얹어 500만원을 한번에 송금한다. 임금 체불 문제가 편의점 본사에 알려져 자신의 새로운 편의점 개업에 방해가 될까봐서다. ‘보람’은 우연히 편의점에서 마주친 ‘점장’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반가운 척 휙 지나쳐가는 모습에 모멸감을 느낀다. ‘보람’이 편의점 문을 잠근 후 혼자 내부 농성을 시작할 때, CCTV로 ‘보람’의 시위를 파악한 ‘점장’은 ‘정화’에게 전화를 걸어 비상 열쇠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정화’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쥔 상태로 잠시 머뭇거린다. 빨리 들어가 보라는 ‘점장’의 독촉에 “점장님, 들어가서 안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직접 와서 보고 이야기를 들으세요.”라고 말하며 문 앞에 주저앉는다. 결국 ‘정화’는 남편의 꽉 닫힌 문 앞에서 돌고 돌아 ‘보람’의 닫힌 문 앞에 이른다. 해고노동자의 굴뚝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다.

  ‘정화’에게 편의점은 일터이지만 문을 열지 않음으로써 ‘보람’의 시위를 지지한다. 떠나가던 ‘명호’는 이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기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듯이 ‘정화’의 곁에 주저앉는다. ‘정화’에게 1만원이라도 밀린 대금을 받기 위해 찾아온 ‘선영’도 ‘명호’의 옆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몫 없는 자들의 연대이다. 무력해 보이지만 이제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단단함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굴뚝 위에 올라가는 사람처럼. ‘정화’ 옆에 ‘명호’, ‘선영’이 차례대로 주저앉는 행위는 예상치 못한 침묵을, 어떤 사태의 중지를 만들어 낸다. 이는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노동 현장에 대한 은유와 고발을 넘어서는 놀라운 도약을 보여준다. 우선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보람’의 다친 마음은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이제는 정화의 ‘남편’이 무슨 이유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는지 그 이유와 목소리를 들어야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때 이들의 연대는 그들이 앉은 느슨한 간격만큼이나 연대하지 않는 연대이며, 연대라는 목적이 없기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연대가 된다. 각자의 다친 마음이 이들을 여기에 주저앉게 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와 투쟁이 아닌, 이들 가슴 속에 움직이는 마음의 결이 여기에 주저앉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무언가에 저항하게 했다. 그것은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다. 목적도 아니고 체념도 아닌, 인간이 다른 인간의 곁을 지킨다는 순수한 의미의 연대이다.

ⓒ연우무대

  한편, 마지막 장면은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게시한다. 이 연극이 24시 편의점 뒷문 쪽을 무대로 할 때 그것은 옳은 선택이다. 실제 편의점 앞문에 있는 판매대에서 돈과 상품이 교환된다고 할 때 그 뒷문에서는 인간의 노동과 돈이 거래된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든지 간편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은 자본주의의 환등상이며 그 이면에는 노동의 착취와 인간의 소외가 자리한다. 거기에는 서로를 위한 마음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자본가를 대표하는 ‘점장’은 주식과 사업 확장을 통해 부의 축적을 도모한다. ‘점장’에게 노동자인 ‘정화’와 ‘보람’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일회용 편의용품이자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은 공장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보라. ‘보람’에 의해 편의점 문이 잠기고 편의점을 둘러싼 모든 교환과 거래가 중지되었을 때 비로소 무위(無爲)와 침묵이 찾아온다. 굴뚝과 옥상의 광고판과 외딴 방에 홀로 갇힌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정화’, ‘명호’, ‘선영’이 수행하는 ‘주저앉기’는 ‘보람’이 열어젖힌 어떤 공백과 영도(零度)의 지대를 사수한다. 이 연극이 품고 있는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에서 ‘점장’의 지시는 권위를 잃고 고삐 풀린 자본의 수레바퀴가 정지한다. 이 ‘주저앉기’는 자본주의의 동력인 돈의 교환과 거래를 일순간 중지시키는 진정한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바로 우리의 자리가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는 우리시대에 ‘노동’이 갖는 의미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우리가 처한 노동 현장의 핍진성을, 이제는 자본과 한 몸인 ‘노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는 새로운 연대와 해방의 가능성을, 그 놀라운 실천을 증언한다. 연대와 저항을 가로지르는 이 미묘한 줄타기는 뜨겁기보다는 서늘하고 먹먹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작 이연주
연출 이양구
출연 이지현, 백성철, 황순미, 조형래, 정혜지
제작 연우무대
공연장소 연우소극장
공연기간 2020.5.7.∼2020.05.31.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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