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레터] 또 다른 바이러스와 마주한 미국
[미주 레터] 또 다른 바이러스와 마주한 미국
  • 김준철(시인, 미술평론가, 미주특파원)
  • 승인 2020.07.30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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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벌리 힐스 길에 닫혀진 스타벅스
비벌리 힐스 길에 닫혀진 스타벅스

  2020년 5월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거리에서 17살의 소녀가 사촌의 가게로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그 소녀의 눈에 흑인 남자 한 명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세 명의 경찰이 그의 다리와 허리,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소녀는 그 현장으로 다가가며 영상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짓눌려 애원하고 있는 사람은 조지 플로이드였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숨을 쉴 수 없다고 계속 애원하는 그를 경관들이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려든 행인들이 압박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고 항의도 했지만 데릭 셔렌 경관은 그의 목 위에 무릎을 올려놓은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 플로이드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17살의 소녀는 그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경관에 의해 살해되는 조지 플로이드를 보고 말았다. 그녀는 그 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순식간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었다.

  46세의 조지 플로이드는 북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휴스턴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는 풋볼선수로 제법 소문이 났었다. 은퇴한 유명 NBA 농구선수인 스테판 잭슨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90년대에는 힙합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7년 무장 강도로 체포되어 5년 형을 받았고 이후, 미네소타로 와서 트럭운전수와 경비 일을 했다. 그리고 COVID-19으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었다.

  사실상 미국은 팬데믹으로 인해 혼돈의 상태를 보내고 있다. 전 세계를 공황에 빠트린 COVID-19은 지난 3월 미국을 흔들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으며, 학교와 가게 문이 닫혔고 기업들 역시 자택근무로 업무 방식을 변경했다. 거리는 비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에 갇혔다.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도 서서히 지쳐갔다. 처음 겪는 사태로 인해 사재기가 벌어졌고 불안한 사람들은 총과 총알을 사들였다. 그로 인해 사태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적이 감도는 도시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처럼 예민해졌다. 시민들은 불안에 지쳐갔고 또 불안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내렸던 ‘Stay at Home’ 봉쇄령을 해제하라며 항의와 집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 5월 말, 아무런 방안도 없이 정부는 봉쇄령 해제를 발표했다. 물론 여러 가지 규제와 제약을 조건으로 한 것이었으나 백신개발조차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시민들은 생계를 위해 반가운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장 청소를 하고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여 진열장을 채우며 분주하던 사이, 도시의 또 다른 곳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죽음을 당했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모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작은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은 COVID-19이 더 큰 이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빠르게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COVID-19으로 인해 누적된 갑갑함과 무료함이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순수한 안타까움, 그리고 시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고의적 살인행위를 한 것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조금도 나아질 기색이 없는 세상이 뒤집어지길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던 이들 또한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그들은 분노한 군중 사이에서 방화와 약탈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불 탄 경찰차
불 탄 경찰차

  얼마 전, 한 뉴스매체와 인터뷰했던 흑인 여성의 말이 떠오른다.

  리포터가 질문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가?”

  그녀가 대답했다.

  “만일 중년의 백인 여성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경찰은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집으로 귀가 조처했을 것이다.”

  중년의 백인 리포터는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질문했다.

  “왜 비벌리 힐스나 할리우드 쪽으로 행진을 하는가?”

  그녀가 다시 답했다.

  “이곳은 사실상 우리를 위한 거리가 아니다. 돈 많고 잘사는 백인들을 위한 거리다. 그래서 우린 오늘 우리 발로 이 길을 걷는 것이다.”

  리포터가 물었다.

  “행진을 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군중의 일부가 방화와 약탈, 파괴를 자행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답했다.

  “그것 역시 필요한 행위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충분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게 맞고 모든 게 틀린 흑백으로 구별하기 쉽지 않다. 미네소타주를 위시하여 L.A., 시카고, 애틀랜타, 뉴욕 등 40여 도시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사태’ 이후 처음으로 통행금지령이 선포되고 5000여 명의 주 방위군이 15개 주와 워싱턴 DC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투입되었다. L.A. 다운타운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도 장갑차와 완전무장한 방위군을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쥐 죽은 듯 조용했던 도시, 차 소리가 사라지고 새소리만 들리던 도시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이렌 소리와 헬기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사태의 뿌리를 찾으려면, 또 누군가의 잘못을 캐묻는다면 그 가지는 끝도 없이 뻗어나갈 것이다.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또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게 만든 이들, 강력하게 대응한 경찰, 그렇게 교육한 정부, 기타 등등……그러다보면 결국 손가락은 전 인류를 가리키고 각 개인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슬픔에 빠진 이들은 그 아픔을 비명과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하지만 그 방향이 조금만 어긋나도 분노와 파괴로 표현되기도 한다. 고통에 대한 해석이나 표출 방법과 방향이 어긋나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보았던 피해 업소들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많은 업소의 주인이나 직원, 목격자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이 내내 폭동으로 피해 입은 한인 여사장에게 향하고 있었다. 화면 구석에서 그녀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멍하니 인터뷰하는 이들의 배경이 되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몇 달간 가게 문을 닫고 장사를 하지 못했다. 가게 문을 열어도 된다는 행정명령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모처럼 물건들을 잔뜩 사다가 가게를 꾸미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폭동사태가 벌어졌고 그녀의 가게는 그들에 의해 털린 것이다.

  소식은 들은 다음 날, L.A.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COVID-19 때문에 닫아둔 가게 문은 이제 나무판으로 한 겹 더 가려져 있었다. 폭동에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인 것이다. 물론 이미 여러 가게들이 파손되고 거리 곳곳에는 낙서가 즐비했다.

나무판으로 막은 모습
나무판으로 막은 모습

  우리 사회는 어쩌면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주범인 경찰 데릭 셔렌을 닮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을 지키라고 쥐어준 엄청난 힘을 이용하여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국가의 차가운 얼굴. 잘못된 믿음과 자긍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1년 ‘로드니 킹 사건’처럼 무장 해제된 그를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구타했던 일이나 12살짜리 타미르 라이스가 장난감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위협적이라는 이유로 진짜 총을 쏴서 죽인 일 등…….

  인종차별은 우리 안에 있는 숱한 차별의 예 중 하나일 뿐이다. 차별은 언제 어디에나 있어 왔고, 우리는 도처에서 너무나 쉽게 차별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차별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눈에 어떤 색으로, 어떤 무게로,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학교에서의 왕따나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등의 이슈만은 아닐 것이다. 친구나 가족 혹은 한 개인이 남몰래 저지르는 차별적 행위도 엄연히 암암리에 혹은 대놓고 벌어지고 있는 일일 테니 말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태는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밖에서는 사이렌과 헬기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여러 매체에서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어느 지역에선 경찰이 시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함께 평화시위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경찰이 강력대응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폭도로 변한 시민들이 가게를 약탈하고 어디서는 그렇게 부서진 가게를 서로 도와가며 고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우리의 모습이다.

  현재 L.A. 한인들은 예전 1992년 L.A. 폭동의 악몽을 떠올리며 급히 ‘Rooftop Korean’을 재결성하였다. 당시 한인 타운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이 만든 자경단 같은 것이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동으로 경찰병력이 충분히 한인 타운을 커버하지 못하자 한인들이 자력으로 생존하기 위해 만들었던 단체다. 아무래도 폭동이 벌어지면 다운타운이나 고급 상점가와 주택가로 경찰들이 몰리게 된다. 이번에도 폭동이 시작된 시기에 경찰차 한 대가 덩그러니 텅 빈 한인 타운 거리에 주차되어 있을 뿐이었다. 한 유튜버가 업로드한 영상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인들은 더욱 불안과 걱정에 밤낮없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동은 상당한 충격을 전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더욱 우려하는 것은 폭동으로 인해 조금은 잦아들던 바이러스가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참으로 걱정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조지 플로이드 사태도, 폭동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만들어낸 이물적인 행태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 시작은 끝없는 욕심의 이기심이나 다름에 대한 선입견, 권위의식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라이지만 그 기저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노예제도에서 시작하여 유대인이 겪은 고난도, 또 현재 이민자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 역시 차별의 연속이다.

  미국 FBI가 발표한 2018년 흑인과 백인의 인종별 살인사건(100만 명당) 비교 자료에 따르면 흑인에 의해 살해된 백인이 11.3퍼센트, 백인에 의해 살해된 백인이 10.84퍼센트, 흑인에 의해 살해된 흑인이 57.14퍼센트, 그리고 백인에 의해 살해된 흑인이 0.95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통계로만 본다면 1퍼센트도 못 미치는 숫자로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미국 내에서 백인과 흑인이 느끼는 인종적 차별이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예민해져 있음을 시사한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애도하고 미국 시위에 연대하는 행진이 한국에서도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몇몇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고맙다는 의견과 어색하다는 의견, 또 뜬금없다는 반론도 있다. 조지 플로이드는 투사도 열사도 아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시민이다. 그의 삶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힘이, 세상이 문제이고 우린 그 시선을 혼동하면 안 될 것이다.

한인타운에 배치된 주 방위군
한인타운에 배치된 주 방위군

  점점 확산하는 조지플로이드 사태는 그렇듯 여러 가지 모습으로 지금 이 시각에도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잦아들고, 또 잊히고, 일상이라 불릴 어떤 날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일상 안에서 우린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들과 마주해야 할 것이고 그 순간들이 매번 똑같은 익숙함으로 끝나게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조지 에이큰이 했던 말이 많이 회자하고 있다. 공감되는 그 말에 기대어 글을 맺을까 한다.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종, 신념, 피부색의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정오까지 편견을 갖기 위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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