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40편의 영화와 함께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배혜화 『영화속 나, 너, 우리』
[북리뷰] 40편의 영화와 함께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배혜화 『영화속 나, 너, 우리』
  • 손희(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7.31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혜화 전주대 영화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영화속 나, 너, 우리』

  지난 6월에 열렸던 제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주제는 ‘이음’이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순간에 서로 이어져 있음을 느끼지만, 함께 고통을 겪는 동안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행위원장인 배혜화 명예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서로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만, 영화제를 통해 곁에 있는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영화가 지금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 소중한 연결고리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동안 우리를 이어주었던 것은 멀티플렉스 극장을 가득 채운 블록버스터 영화, PPL로 가득한 드라마였다. 매체는 우리 안의 작은 상처들, 일상을 견디는 동안 새겨진 좌절과 소외감을 온통 ‘즐길 거리’로 덮어 버리려고 했다. 코로나19는 어쩌면 그 환한 거짓을 뚫고 나온 우리의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연결고리들이 끊긴 곳에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새로운 끈을 달아 놓는다. 이 ‘영화’라는 끈은 너에게서 나로, 나에게서 너로 ‘사랑’뿐만 아니라 ‘고통’도 전달한다. 배혜화 교수의 영화평론·에세이 모음집인 『영화속 나, 너, 우리』는 너와 나의 빛과 그늘을 모두 담아 이어주는 영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그래서 ‘선택된 풍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풍경’, ‘보편적인 삶’ 보다는 ‘다양한 삶’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영화의 영화적 순간, 스투디움(Studium)이 아닌 푼크툼(Punctum)과 마주하며 너와 나를 이어주고 있는 ‘기쁨’이면서도 ‘아픔’인 ‘사랑’이라는 흔적을 잠시 더듬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 속 나, 너, 우리』는 배혜화 교수가 한국알트루사의 심리상담 계간지 『니』의 ‘영화 속의 니’에 쓴 글을 묶은 책이다. 2005년 겨울 창간호부터 2016년 가을까지 사랑, 공동체, 독신, 갈등, 짐작, 질투, 폭력, 믿음, 가난, 우울증, 불륜, 자살 등의 주제에 맞는 영화를 찾아 소개했는데, 원고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나’를 찾고, ‘너’를 만나, ‘우리’ 함께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방향으로 책을 구성했다. 국내외 영화 40편에 담긴 영화사적 의의와 문학적 가치를 함께 살펴보며 독자들은 영화가 타자와 나를 잇는 매개체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관계의 출발은 자기 자신에서 시작되므로, 성찰을 통해 ‘나’를 찾아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너’와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고 나아가 ‘우리’라는 공동체로 이어져, 서로 도우며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꽃 피우기를 바람이다.”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청소년감호소를 탈출하는 영화 후반부, 늘 바다를 동경하던 앙투안이 무작정 뛰다가 바다에 이르게 된다. 처음으로 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해 텅 빈 백사장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인다. 화면 가득히 광활한 수평선과 바다. 앙투안은 바다에 발을 담그고 몇 걸음 거다 돌아서서 파도와 함께 백사장으로 밀려와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바라보는 데 익숙한 관객들에게 당황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표정이다. 영화는 이렇게 방황하는 앙투안의 클로즈업된 얼굴로 끝난다.
  -1부 ‘나를 찾고’ 중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인간에게 후각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사미르는 셀린의 향수와 셀린이 좋아한 자기 향수를 들고 병원으로 간다. 배에 긁힌 자국이 의문스럽지만 아직 의식이 없다. 새로운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와도 의식이 없어 확언할 수 없단다. 사미르는 셀린이 좋아한 향수를 뿌리고 가까이 가 손을 잡고, 이 향을 맡거든 손에 힘을 주라고 한다. 간호사가 실험했을 때 반응 없던 셀린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셀린의 손은 사미르 엄지손가락을 손등에 핏줄이 돋도록 쥐고 있다. 두 손의 클로즈업이 모두가 상처투성이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마지막 장면이다.
  -2부 ‘너를 만나’ 중 ‘아쉬가르 파라디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온 길을 되돌아 지그재그 언덕길을 있는 힘을 다해 뛰어 내려가는데, 길가 평상에 앉은 할아버지가 불러 담배 심부름시킨다. 빵 사러 가야한다고 더 늦으면 빵이 없을 거라 해도, 기어이 집으로 담배 찾으러 보낸다. 옆 할아버지가 담배가 있음을 상기시키자 천연덕스럽게 애들 교육을 위해서, 잘못이 없더라도 2주일마다 때릴 구실을 찾아 회초리질을 해야 한단다. 아마드가 할아버지께 집에 담배가 없다고 말씀드리다가 주위에서 네마자데 이름을 듣고는 누가 헤마티 아버지냐고 애타게 묻는다. 그런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3부 ‘우리 함께’ 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국내외 영화 40편을 소개하는 곳곳에서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 영화사적 의의와 제작에 얽힌 이야기까지 문학과 영화를 전공하고 삶에 대한 치열하고 폭넓은 성찰과 연륜에서 우러난 저자만의 독특한 감상 포인트는 독자들에게 ‘영화의 재발견’이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는 소르본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 중 덜컥 전주대학교 불문과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다가 2003년 우연히 만난 대학 연극반 선배와 함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된다. 이후 동국대 영화과 박사과정에 등록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영화과 교수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서울기독교영화제에 관여해 서울국제사랑영화제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매년 영화제를 개최하고 영화관과 카페, 세미나실, 전시공간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필름포럼’에서 영화인으로도 바쁘게 살고 있다.

  프랑스 유학시절 막막해지면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면서 위로 받았다는 저자는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위로가 필요한 어른에게 헌정한 것처럼, 이 책도 읽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영화 속의 다양한 삶에서 나를 찾고, 너를 만나서, 우리 함께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도록…”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