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가장 보통의 연애’에 관하여
[8월 Theme] ‘가장 보통의 연애’에 관하여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20.08.03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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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라이크 크레이지〉(2011)

  연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 문화콘텐츠의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시대가 바뀌어 열정적인 사랑에 가치를 두기보다 가벼운 만남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셀럽들의 열애설이 번번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하거나 연애 리얼리티 쇼가 높은 화제성을 보이는 것을 보면 연애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오히려 결혼적령기가 사라지고, 연애를 하는 연령대가 더 넓어졌기 때문에 감정뿐만이 아닌 행위로서의 연애도 함께 부각되면서 대중들은 미디어가 유도하는 일종의 관음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데이트 장소, 데이트 룩, 데이트 먹거리, 데이트 액티비티를 찾는 이들에게 이만한 참고서도 없다.

  타인의 연애담에 대한 호기심은 셀럽을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적용된다. 모 포털사이트에는 주기적으로 일반인들의 연애사를 대문에 내건다. 직접 사연을 공모한 연인들은 사진 속에서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의 모습만큼이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이였거나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등의 일상적 만남의 범위 밖에 있다. 대개 로맨틱하게, 혹은 엉뚱하게 만나서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골인하게 된 이들의 사연이 선택되기 때문이다. 즉, 불가능할 것 같던 연애가 성사되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껄끄럽지 않은 케이스들이다.

 

  일반인 남녀가 한 달 동안 한 집에 살면서 연애상대를 찾는 리얼리티 쇼, ‘하트 시그널’(채널A) 시리즈는 출연자들의 출연 의도 및 과오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면서도 최근 시즌 3까지 방영을 마쳤다. 출연자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미모를 지녔고, 소위 뛰어난 스펙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 인물들과 진배없으며, 촬영이나 편집도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 엇갈리는 감정의 시그널이 쓴맛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프로그램도 연애의 판타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핫플(hot place)에서의 먹음직스런 식사와 낭만적인 데이트는 중년 시청자들의 연애 세포를 다시 깨우기도 하고, 청년들의 녹록치 않은 연애를 대리 실현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N포 세대라는 말의 모체가 된 3포 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그 무엇보다 연애를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출연자는 열렬히 응원하는 야구팀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다. 서포터즈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속에 사랑의 작대기가 쌍방으로 오가는 출연자들은 커플 매칭에 ‘성공’한 연인이 된다. 호감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실패한사람이 되어야 하다니, 본질적으로 야속한 게임이다.

 

  영화 속의 연애는 어떠한가. 상업영화, 그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것은 기본적으로 연애의 아름다움이며 사랑의 희열과 그로 인한 결실, 곧 결혼과 가정의 성립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최근 로맨틱 코미디는 많이 달라졌다. 열린 결말은 물론이고, 주인공들의 사랑을 기준으로 했을 때 비극적인 결말도 서슴지 않고 내놓는다. 그렇다면 그 영화를, 아니 이 장르를 계속 ‘코미디’(희극)로 불러야 할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로맨틱 코미디가 동시대의 연애 트렌드와 사랑에 대한 청춘들의 사고를 잘 보여주는 장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작년 개봉해 3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가장 보통의 연애>(김한결, 2019)는 내용 보다 제목이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의 연애는 사실상 평범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이런 일이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하기야 사람이 모두 다른 것처럼 연애도 다 다른 모습인데 무엇을 ‘가장 보통’이라고 일컫겠는가. 경험상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의 감정이 천년만년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보통의 로맨스 영화는 그 감정의 변화를 그래프로 잘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초반의 뜨거웠던 감정이 조금씩 식어가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들, 그러나 그 조차도 연애의 일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탁월하게 만드는 감독이 있다. 최근 <엔딩스 비기닝스 >(2019)를 내놓은 드레이크 도리머스는 <라이크 크레이지>(2011)부터 <우리가 사랑한 시간>(2013), <이퀄스>(2015), <뉴니스>(2017) 등 남녀 간의 사랑을 꾸준히 스크린에 담아온 감독이다. 뮤직비디오처럼 흔들리는 화면, 감각적인 편집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기로 정평이 나있다. 상황은 각각 다르지만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개 만남과 연애, 갈등/장애, 이별, 재회 등의 수순을 밟는다. 그중에서도 <라이크 크레이지>의 ‘애나’(펠리시티 존스)와 ‘제이콥’(안톤 옐친)의 이야기는 현실 연애의 정수를 꿰뚫는다. LA에서 유학중인 영국 출신의 애나와 미국 남자 제이콥은 서로 첫눈에 반한다. 이들은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 할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애나는 학생비자가 만료되었는데도 제이콥과 시간을 보냈다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다시 LA로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지만 각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둘 사이도 멀어져버린다. 마지막 신에서 애나와 제이콥은 바라던 대로 한 집에 살게 되지만 어쩐지 둘 다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함께 샤워를 하면서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 보다가 결국 자리를 떠나고 마는 애나, 혼자 샤워빗줄기 속에 남겨진 제이콥의 외로운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연애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연애 그 자체나 결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과의 만남, 불가능해 보였던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단계를 성공이라고 부르는 건 좋다. 연애의 판타지에도 순기능이 있으니까. 다만, 나이가 들수록 그 성공이 당사자들의 행복을 얼마나 유지시켜줄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연애의 찬란한 행복에 기대어 오는 불안, 실망, 갈등, 온갖 씁쓸함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영화가 더 좋은 이유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아마 그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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