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천사와 사랑의 방식
[8월 Theme] 천사와 사랑의 방식
  • 정현우(시인·뮤지션)
  • 승인 2020.08.03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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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천녀유혼>입니다. 장국영과 왕조현이 함께 시를 써 내려가는 장면에서 사랑의 감정이란 이승과 저승을 오고갈 수 있는 것이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에서부터 1990년까지 황금기를 누렸던 홍콩 영화계에 장국영이 있었고, 학창시절 책받침에 고이 모셔져 있던 동양계의 최고 미녀로 꼽히던 왕조현이 있었습니다. 장국영은 종종 “나는 즐거운 사람이 아니다.”라며 외로움을 표현하기도 했고, 마지막 유서에서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2003년 4월1일,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고, 그때 당시의 불안하고 외로운 청춘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눈빛으로 대변했던 그였기에 아직도 그를 많이 회상하고 추억합니다. 정소동 감독의 영화 <천녀유혼>은 SF판타지 장르와 로맨스 정서를 결합한 상상력과 특수효과 촬영기법이 조화를 이뤄 어둡고 눅눅한 정서지만 신비롭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던 영화입니다. 장국영이 직접 부른 메인 테마 ‘노수인 망망’의 가사를 보면 짧고 화려하게 살았던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죠. 영화에서 직접 노래까지 불러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인생길이란 아름다운 꿈은 기나긴 길처럼 멀고
인생길의 바람과 서리, 얼굴에 남아 있네
어지러운 세상에 아름다운 꿈은 어디에 있는가
어리석게도 꿈같은 사랑을 찾는 내 마음
인생길처럼 아득하여라
인생은 꿈의 연장이던가
꿈 속에 어렴풋이 흘리던 눈물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 마음 속 가야할 길을 찾건만
바람 부는 꿈 속에서 탄식하며
인생길을 떠나네
인생을 풍류하던 젊은 청춘
괴로운 가운데 달빛을 감상하네
이 모진 세상 기쁨은 어느 곳에 있나
실낱같은 빛줄기를 찾아
인생길을 떠나네
- <노수인 망망(路隨人茫茫)>

 

 

  장국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패왕별희>입니다. 영화는 1925년 베이징 경극학교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국영(데이)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지지만, 또래 소년 샬루(장풍의)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잘 적응하게 됩니다. 경극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모두 마치고 데이와 샬루는 두 사람이 죽도록 연습해온 경극 ‘패왕별희’를 혼심을 다해 연기하죠.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데이 역을 맡은 장국영은 동성애적인 성향 연기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장국영이 불렀던 <사랑이 옛일이 됐을 때>를 듣고 있으면 장국영의 사슴 같은 눈망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나간 일은 다시 생각하지 말아요
인생에는 아직 시련이 남아 있어요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지울수는 없겠죠
사랑과 미움은 아직 마음에 남아 있어요
과거를 끊어내고 싶어요
내일은 잘 지낼 수 있도록
당신도 힘들게 다신 제 소식을 묻지 마세요
사랑은 어려운 문제예요
눈앞을 캄캄하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네요
아픔을 잊는 건 쉬워도
사랑이 있다면 아픔도 있는거죠
어느날 당신은 알게 될 거에요
인생에 제가 없지만 똑같을 거에요
인생은 이미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요
나는 두려워요 늘 눈물어린 눈으로 몽롱할까
나를 잊어요 곧 아픔이 없어질테니
지나간 일은 바람에 뭍어버려요
- <사랑이 지나간 일이 되었을 때>

 

  지금에서야 다시 보는 이 영화가 더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주인공 데이의 삶과 장국영의 삶이 교차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두 주인공이 옛날처럼 초패왕과 우희가 되어 호흡을 맞추어 봅니다. 샬로는 그가 어릴 적 계속 틀렸던 대사 ‘나는 본래 계집으로서’를 시키고, 데이는 ‘나는 본래 사내로서…’라고 말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는 데이가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어떤 이들은 <패왕별희>를 퀴어 영화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퀴어 영화인지 아닌지를 말하기 전에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먼저 떠올려봅니다. 사랑은 인간의 정서에서 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며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를 여러 형태로 배워왔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피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적인 것이다. 사랑은 그것에 참가하는 것이며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활동적 성격을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즉 사랑이란 자기 자신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표현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그 자체가 기쁨인 것이지요. 사랑의 본질에게 충실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들에 대해 비난할 수 없겠지요.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됐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원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시절이 있었지만, 거기에 가까운 답을 주었던 영화가 바로 <베를린 천사의 시>입니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마음의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더이상 ‘영원’이란 말은 싫어.
카페의 빈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고 싶어.
고개만 끄덕일지라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그저 환상일뿐이야.
어떤 녀석과 싸운것도 환상이고 물고기를 잡는 것도 환상이고,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환상이야. 황야에서 양고기를 구워먹고 와인을 마시는 것도 다 환상이지.
아이를 낳거나 나무를 기를 순 없지만 난 그러고 싶어.
힘든 일과 후 집에 와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싶고
아파 봤으면 좋겠어. 손때가 묻게 신문도 읽고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쾌락도 느끼고 싶어.
목선이나 귀에 흥분하고 싶고 때론 거짓말도 하고 걸을 때 움직이는 뼈를 느껴 보고
‘네’나 ‘아멘’ 대신 ‘오!’, ‘아!’ 라고 외치고 싶어.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중에서 베를린에 내려온 천사 둘이 대화 장면에서 한 천사는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고 결국 천사는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어 남긴 말이 있죠.

 

둘이라는 것에 대한 놀라움
남과 여에 대한 놀라움
이것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심각하게 인생을 고뇌하지만 <시티 오브 엔젤>은 천사와 인간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가 인간세계를 경할 때면 느린 연주곡과 흑백화면이 나오지만, 천사가 인간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낄 때 컬러풀하게 변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영화에서 <베를린 천사의 시>는 천사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 곡예사였고, <시티 오브 엔젤>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여의사로 나옵니다. 맥 라이언이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모습이기도 했죠.(웃음)

 

In the arms of the angel
천사의 품에 안겨
Far away from here, from this dark, cold hotel ormo
여기로부터 멀리, 이 어둡고 차가운 호텔방을
And the endlessness that you feel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막막함으로부터 벗어나요
You are pulled from the wreckage of your silent reverie
당신은 소리없는 환상의 잔해에 등을 잡혔죠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그대는 천사의 품 안에 있어요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여기서 편안함을 찾을 수 있기를...
Oh, it's glorious sadness
오 이 영광스런 애수는
That brings me to my knees
저를 무릎꿇게 하네요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그대는 천사의 품 안에 있어요

 

  <시티 오브 엔젤>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진 사라맥라클란의 노래<Angel>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천사는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천사의 신분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사랑을 보통 이성 간의 성적 사랑인 에로스, 이타적 사랑인 아가페, 오랜 친구의 우정 같은 사랑 필로스 세 가지로 나눕니다. 이렇게 나누는 사랑을 말하기 전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본래 한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어떤 사랑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라 말 할 수 없지만, 위에서 잠깐이나마 말했던 장면들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옥상에서 떨어져 내리는 천사의 장면처럼. 자신의 절개를 보여주고 싶어 칼에 목을 긋는 장국영의 모습처럼. 제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모습과 형태 냄새를 지닌 것이 아니라 시대와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천사의 품을 생각하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할 때, 그걸로 하여금 내 가치와 존재를 느낄 때, 그것이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라는 것은 천사에게는 어떤 것일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참 인간에게 어려운 숙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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