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 이원규
홍련 백련 꽃피던 날들도 없지 않았지
절절한 고백 한번 못하고
때늦은 겨울 저수지에 얼굴을 처박고
겨우 이 문장을 쓰는데 석 달 열흘
미안해, 각혈하듯 온몸으로 쓰는 연애편지
꽃잎 편지 - 박완호
네가 써 놓고 간 꽃무늬 글자들.
물살 흔들릴 때마다
불멸의 문장처럼 반짝거린다.
글자 하나하나가
네 낯처럼 눈부시다
엽서 - 우대식
노을에 앉아
나를 꺼내 읽는다
그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문자는 없다
꼭 걸어서 당도하라는 당신의 부탁만이
활판(活版)의 문자로 새겨졌을 뿐
오독 - 변종태
누가 건넜나,
마르지 않는 가슴
오독오독 새겨대는
고백의 문장.
기원전 새겨놓은 그리움의 화석.
四時長春-독거 - 김 륭
사랑은 가끔씩 거짓말 속에 발을 숨겨 세월을 견딥니다.
내 슬리퍼 한 짝이 어젯밤 내 슬리퍼 한 짝과 잤습니다.
사이에 - 김왕노
하늘과 바다 사이 저 일획의 말
“못 견디게 보고 싶다”는 그 말
오래된 꿈 - 김상미
이런 창을 가진 남자와 사귀고 싶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끝없이 입 맞추며 질주하는
그 무한에 건배하며 나를 던지고 싶다
내가 사는 이 도시는 너무나 비좁고
숨이 막혀!
그새 보고 싶은 당신 - 오민석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신의 부재가
폭풍처럼 고요하기 때문입니다
* 《쿨투라》 2020년 8월호(통권 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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