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0.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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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평론가, 동료문인 100명이 선정한 시 74, 시집 16권 수록

‘2020 오늘의 시 수상작은 작년 최고의 시, 안희연의 스페어

 

도서출판 작가에서 매해 간행해 온 오늘의 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시단의 성과와 그 특성을 증언하는 가장 명징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해마다 각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에도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에 남았던 좋은 시와 시집을 모아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하 2020 오늘의 시)를 내놓는다.

 

2020이라는 숫자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퍽 멀기만 했는데 어느새 일상적 국면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20년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2010년대 한국문학의 현상이랄까 성취랄까 하는 것을 천천히 돌아볼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가령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전혀 새로운 경험을 가진 작가와 시인들의 등장과 주류화를 경험한 때이고, 사회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성세와 함께 소수자들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와 형상화 의지가 강하게 대두한 때이다. 이 소수자 담론은 일국 차원의 노동, , 종교, 언어, 육체 등에서 갈라지는 범주 외에도 국경을 넘어서는 탈북자, 난민,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 여성 등 다양한 인적 구성을 포괄하였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범주의 형상적 성취로 성큼 나아간 것이다.

이제 빈번해진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과 행사 등으로 인해 세계화라는 의제는 제 철을 만난 듯하다. 활발한 인적 교류와 함께 작가들의 해외 진출도 늘어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무대의 변방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출판시장의 불황과 디지털 혁명에 의한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문학의 수요는 급감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미학적 정예들의 활발한 성취는 한국문학의 눈높이를 훤칠하게 해주었다. 시단에서는 2000년대 미래파와는 또 다른 의미의 미학적 전위들이 나타났고, 소설에서는 장편 창작이 크게 늘어났고 표절 논쟁도 뜨거웠다. 출판사들의 잇따른 팟캐스트 출범은 작가들을 마이크 앞으로 불러냈고, 비평 현장은 새로운 매체인 유튜브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른바 본격문학이 정체하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장르문학이 강세를 띠기도 했다. 담론적 측면에서는 문학의 정치와 윤리가 표나게 강조되었고, ‘세월호 사건으로 비롯된 죽음과 기억과 애도의 형식으로서의 문학의 역할이 적극 성찰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해석에서 첨예한 이견이 제출되기도 했고, 제주43사건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의 분수령에 대해서도 가열한 논쟁과 증언이 잇따랐다. 이때 한국문학은 근대사에서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다시 설계하는 쪽으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갔다. 그 점에서 이 시대는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한국문학의 전환기이자 난숙기로서 모자람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 2020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지난 한 해 동안 역작을 남긴 시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한 번 시단의 조감도가 되기에 충분한 선집을 꾸렸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의 감각과 사유를 정점에서 보여준 수많은 가편들을 수록하였다. 많은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시와 시집은, 완결성과 개성을 아울러 갖춤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성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되었던 시편 가운데 안희연 시인의 스페어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스페어의 열린 존재성, 가능성, 필요성을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는데, ‘스페어에 주목할수록 진짜라는 말의 허구와 억압이 환기되면서,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경계를 넘어서 살아 숨쉬고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었을 것임을 노래한다.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닌 다양한 가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들을 통해 가치의 다원화와 탈중심을 웅변처럼 내세운 사유를 흥미롭게 개진하였다.

 

좋은 시를 선정하기 위해 2020 오늘의 시100명의 시인,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 좋은 시 74(시조 19편 포함)을 선정, 수록하였으며,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 가운데 좋은 시집으로 평가되는 16권의 시집(시조집 2권 포함)들도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기획위원들의 2020년 한국 시의 미학이란 주제의 좌담은 우리 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진 우리 시의 동향을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과 작품집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동시대 한국시의 미학을 제시하는 좌담이 될 것이다. 또한 말미에 붙인 안희연 시인 인터뷰는 ‘2020 오늘의 시수상작 안희연 시인의 시 스페어에 대한 매혹적인 해석을 선사한다. 양경언 평론가는 “(안희연 시인은) 눈으론 보이지 않는다 해도 감쪽같이 일어나는 마음의 일이 사람을 얼마나 다른 상태로 바꾸어낼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며 그런 당신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 안희연의 시가 있으며 남겨진무언가가 오늘의 일부가 되어 내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기도 함을 일러주는 시라고 평한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이는 카(E. H. Carr). 이러한 비유적 정의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흐름이나 국면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지난 시간의 그것들이 유력한 참조항이 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2020년대는 2010년대가 남긴 미완의 의제를 반복하고 그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면서 새롭게 펼쳐져갈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시대의 이러한 과제에 대해 유추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수상작

 

스페어

 

안희연

 

진짜라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단 하나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태도 같은 것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 같은 건 없다

식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 한 봉지가 놓여 있을 뿐

 

저 감자는 정확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싹이 아니라 독이지만

저것도 성장은 성장이라고,

 

초록 앞에선 겸허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싹은 쉽게 도려내지는 것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흐린 것은 흐리고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

 

아직일 수도 결국일 수도 있다

숨겨 놓은 조커일 수도

이미 잊혀진 카드일 수도 있다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안희연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이 있다.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목차

 

펴내면서

 

2 0 20 오 늘 의 시

강성은 개의 밤이 깊어지고_16

고영 무중력_17곽재구 목도장_19

곽효환 노둔한 사람들_21

권달웅 독락당_23

길상호 심해의 사람_24

김남규 화요일_25

김병호 그런 일이 있었다_26

김선태 노래방은 흐른다_27

김안 피붙이_29

김양희 절망을 뜯어내다_31

김이강 낮잠_32

김이듬 당신이 잠든 사이_34

김행숙 우산과 담배_36

김혜순 숨을은물러설퇴_38

나태주 너무 늦게 슬픈 아들_40

도종환 속유_41

류인서 해당화_43

맹문재 경안리에서_44

문순자 소리쟁이_45

문정희 절벽 위의 키스_47

민병도 선운사에서_49

박기섭 이름의 편력_50

박라연 아무것도안하는애인_51

박명숙 택배_53

박형준 아침인사_54

변종태 에곤 쉴레 혹은 대합실_55

서영처 얼룩말_56

손세실리아 수묵 기법_57

손택수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_59

송종찬 마음의 서쪽_60

송찬호 산꼭대기의 집_61

신용목 밤은 필요하다_63

신필영 뚝섬_66

안미옥 여름 끝물_67

안희연 스페어_69

오광수 슬로슬로우 퀴퀵_71

오승철 연해주의 페치카_72

유계영 썩지 않는 빵_73

유안진 솔베이지_75

유재영 겨울 테라코타_76

이규리 당신은 첫눈입니까_77

이근화 망치론_79

이나영 드라마틱_81

이남순 고시원을 아시나요_82

이송희 유리잔을 마주하다_83

이승은 무렵_85

이승하 신용에 대하여_86

이원 친목모임_88

이은봉 스투키, 너는_90

이장욱 신경정신과에서 살아남기_91

이재무 우리시대의 더위_94

이정환 월류봉_95

이해존 이물감_96

이현호 세상의 거의 모든 순간_98

이혜미 원경_100

임성구 빈잔_102

장옥관 없는 사람_103

장재선 도망 중인 그녀와 함께_105

정끝별 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다_107

정수자 사막풀_109

정용국 고사목 궁전_110

정희경 _111

조승래 모차르트의 시간_112

차주일 잇몸이 높은 여자_115

천양희 그늘에 기대다_117

최금진 붉은 실지렁이_119

최영효 바랭이_121

최정례 4분의 3쯤의 능선에서_122

함명춘 해피_124

허연 슬픈 버릇_127

홍성란 그 봄_129

홍일표 꽃의 본적_130

황인찬 소양돼지닭_132

오늘의 시집 시집 16

권성훈 밤은 밤을 열면서_138

김민정 너의거기는작고나의여기는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_140

김영재 목련꽃 벙그는 밤_142

김용락 하염없이 낮은 지붕_144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_146

노향림 푸른 편지_148

박소란 한 사람의 닫힌 문_150

신달자 간절함_152

신동옥 밤이 계속될 거야_154

이달균 열도의 등뼈_156

이은규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_158

이태수 내가 나에게_160

조정인 사과 얼마예요_162

최동호 제왕나비_164

최문자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_166

하재연 우주적인 안녕_168

 

오늘의 시 좌담_ 시 기획위원

2020년 한국 시의 미학_ 170

안희연 시인 인터뷰

나머지를 품고 우리는 계속 가네-양경언_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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