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연 시집 '달의 기원'
이예연 시집 '달의 기원'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0.08.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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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참으로 아끼고 모셨던,

그 다함없는 사랑으로 마침내 봉오리를 맺어놓은 이예연 시인

남아있는 우리는 그를 시인이라 불렀다

 

시조를 참으로 아끼고 모셨던, 그 다함없는 사랑으로 마침내 봉오리를 맺어놓은이예연 시인의 첫 시조집 달의 기원이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49년 충남에서 태어나 숭의여자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7샘터시조대상과 2018영주일보신춘문예에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4부로 나누어져 총 84편의 신작시가 수록된 이 시집은 모든 시가 삶의 현장에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다. 한 개인이 관계 맺고 사는 삶의 전체상이 서로 갈등하거나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공동체의 모습이 온전하게 그려지고 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삶의 세계에 긴밀하게 얽혀 있고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의 당선작(샘터시조대상)을 보자.

 

빗방울은 등에 지고 땀방울은 지르밟아

가락시장 삼십여 년 공손히 함께해온

온몸에 보푸라기가 훈장으로 매달린 너

 

골 깊은 허기에도 비상구 없던 외길

숱하게 부대긴 날 짐받이에 걸어두고

힘차게 달리고 와서 숨고르는 발동무

 

쭈글해진 두 바퀴에 기운을 넣어주고

다른 데는 괜찮냐고, 아픈 데는 없느냐고

페달과 늑골사이에 더운 손길 얹는다

 

청지기 받침대가 남은 하루 받쳐 들면

윤나는 안장 위에 걸터앉은 가을 햇살

소담한 너울가지를 체인 위에 감는다

- 자전거 소개서전문

 

사람과 삶의 도구 사이의 한없는 우정과 우애를 이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자전거를 통해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삼십여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이 부대끼고 더불어 살아온 자전거에 대한 이예연의 애정과 그 자전거 속에 서린 주인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이 자전거의 실제 주인은 이예연의 동반자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점은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보살피는 이예연 특유의 겸허함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해설에서 강형철(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은 세상 전체를 견디어내면서도 괴로워하지 않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도저한 겸허. 이 시를 보며 시란 목숨의 반성문이다라는 말이 그 실체의 한 예를 얻었다고 생각했다.”고 평한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가 빠져나온 저 가난한 시대 그 복판에서 맨주먹 하나로 견디면서 간신히 빠져나와 한 가정을 이룩하는 동안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면서 살아온 생애를 잘 알고 있던 터였고 그러한 삶의 와중에 놓쳐버린 공부의 꿈을 예순이 넘은 나이에 시작하여 일단 졸업까지 한 인생의 이력이 떠오르고 더하여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칭찬에 용기를 내 문학에 정진하여 한 결말에 이른 과정이 너무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형철 교수의 절절한 애정이 녹아있는 긴 해설은 단순한 시의 해설을 넘어 한 시인의 삶과 문학이 얼마나 아름답게 일치하는가를 평하며, 시를 쓰는, 시를 공부하는 우리들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한다.

 

달의 기원4부로 나뉘면서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부분인 사람과 자연으로 세분된다. 세분된 부에서 1부를 이루고 있는 시는 이예연 시인의 삶의 전체 세계를 개관해볼 수 있는 시로서 개인의 생활과 사회적 삶이 미분화된 더 정확히 말하면 생활 전체를 통관할 수 있는 시다. 이예연 시인이 살아내고 있던 전체적인 생활의 모습이 형상화되고 있다 하겠다.

2부의 시는 1부 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굳이 구분하자면 일하는 사람들(타인)과 일하는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좀 더 정밀하게 그려져 있고 그 의식은 좀 더 예각화되어 있다. 당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가령 철판닦이를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가 하면 생활의 주변에 버려진 매트리스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내밀한 모습 즉 아들 며느리 이야기나, 본인의 은혼식 혹은 시인 자신이 병상에 누워 느끼는 복합적인 모습도 형상화되어 있다.

3부는 우리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늘 대상화되어 그려지고 있는 자연의 시편들이다. 여기에는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 그 자체 즉 시인이 조우하는 꽃이나 나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개인 혹은 인간 자체와 구별되어 존재하는 사물들이 주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이 자연 풍경의 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예연 시인의 자연의식이나 타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개인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자연의 풍광이 형상화되어 있어서 타자에 대한 속 깊은 시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4부의 시편들은 생활의 전체상보다는 개인의 실존적인 내밀한 의식이 깊숙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병마에 시달리면서 절대적인 고독 혹은 실존의식과 마주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승은(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 시인은 시조를 참으로 아끼고 모셨던, 그 다함없는 사랑으로 마침내 봉오리를 맺어놓은 시인. 늦깎이 공부였으나 학업이나 시업에 지칠 줄 모르는 향학열은 나를 늘 숙연하게 했다.”, “병상에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퇴고를 거듭했던 그의 유작원고를 정리하면서 여러 번 품고 놓던 그의 손길이 내 가슴에 무수히 빗금으로 지나갔다.”고 고백한다.

이예연은 천성적으로 가락을 풀고 맺는 유연함을 지녔다. 소소한 일상의 경험에도 깊은 사유를 거느리며 특유의 천진한 상상력이 시에 탄력을 줌으로써 곤고한 시대의 갈증을 풀어냈다. 시적대상에 섬세한 감각으로 접근, 말의 텐션으로 인한 탄탄한 서사를 구축함과 동시에 구체적으로 현실세태를 관조하는 작품으로 견고한 자리매김을 해두었다.”고 평했다. 또한 그의 단시조는 압축과 긴장미가 돋보이며 가장 최근작인 왼쪽, 달의 기원을 보면 먼 길을 에둘러가는 여행자의 호젓함까지 느끼게 한다. 나비는 떠나며 꽃잎에 상처를 남기지 않듯이 그 봄날, 매화 꽃가지 사이로 한 목숨이 건너갈 때 발자국 하나 없이 푸르던 하늘빛. 남아있는 우리는 그를 시인이라 불렀다.”고 칭송했다.

 

어두워야 볼 수 있는,

멀어서 더 간절한,

 

모진 비바람의

격정이 지나간 뒤

빈 가지 끝을 더듬어

나붓하게 앉는 나

-달의 기원전문

 

어두워야 볼 수 있는,/ 멀어서 더 간절한,” 이예연 시인은 이 시를 마지막으로 2019311일 하늘 품에 잠들었다. 이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서 볼 수 없고 그가 남긴 시집 한 권만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맑고 겸허한 이예연 시인의 삶의 태도는 그의 시를 대하는 자세에서 그대로 삼투되어 겸손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편을 읽는 우리들은 그의 삶의 모습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시에서 시가 줄 수 있는 무상의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에 대한 열정과 뜨거운 사랑만을 오롯이 남기고 간 이예연 시인의 시조가 남은 우리들의 심금心琴 위에 작은 위안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예연 시집 달의 기원차례

 

序詩

시인의 말

 

1부 이음새 하나 없이도 눈비 바람 건넜다

자전거 소개서 15

갈매기 16

허수아비론 17

오월 18

가을 들기 19

개밥바라기 20

낮달문패 21

동전지갑 22

연극무대 23

두루마리 24

먼지의 속성 25

그날의 헌시 26

웃는 돌 27

종이 달 28

노크 29

현장보고서 30

, 한 마리처럼 32

거멀못자리 33

연둣빛 34

미세먼지 갠 날 35

봉우리는 서서 잔다 36

 

2부 기어코 오르고 마는 불굴의 저 몸짓,

얼레빗 39

저물녘 41

희망역 42

주차장이 보인다 44

바람 없는 날 45

태안에 들다 46

불길 47

첫 몸앓이 48

검지의 말 49

환절기 50

블라인드 51

숨바꼭질 52

눈치 없는 날 53

철판닦이 54

데드라인, 55

동지 무렵 56

짝꿍 57

팔작지붕 58

병상에서 59

음 이월 60

은혼식 61

 

3부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절 순간처럼

꽃 밤 65

매실항아리 66

장봉도 떡갈나무 68

대나무집 아이 69

70

꽃바람 결에 71

생강 꽃 72

은행잎 엽서 73

꽃비혁명 74

살아라 살구나무 75

향나무를 새기다 76

소나무를 읽다 78

간지럼나무 79

박꽃 소나타 80

으뜸꽃 81

찔레 얼굴 82

개나리도 흥정하는 83

민들레배짱 84

보일락 말락, 그 꽃 85

칡넝쿨을 읽다 86

시래기 87

 

4부 어머니, 부를 수 없어 입속으로 삼키는 말

뜨는날 91

맨발 92

분가分家 93

안개탈춤 94

주인 없는 말 95

스킨스쿠버 96

여름편지 97

열대야 모시기 98

어름사니 100

오는 길 101

덮개이불 102

누에고치 103

허물 104

11월 나이테 105

액자소설 106

허리 울음 108

다시 109

어미 달 110

계단을 오르며 111

달의 기원 112

왼쪽 113

 

해설

시의 위안慰安 -이예연의 시조를 읽으며_강형철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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