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문화와 연애하고, 융합을 연주하는 지휘자
[INTERVIEW] 문화와 연애하고, 융합을 연주하는 지휘자
  • 김준철(시인·미주특파원 겸 지사장)
  • 승인 2020.08.26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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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국문화원장 박위진

  어느새 익숙한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COVID-19.  이 글을 쓰는 지금, 캘리포니아 30여 개 카운티를 비롯한 여러 주에 또다시 ’LOCKDOWN’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예상했던 일임에도 도시는 당황한 기색으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도 여전히 바쁘게 문화적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위로하려는 움직임들이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화 교류의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문화원도 마찬가지다. COVID-19 속에서도 한국문화의 원활한 소통과 융합을 위해, 서로 다른 문화와 깊이 교감하고, 연애하듯 문화국제교류를 위해 전두 지휘하는 엘에이 한국문화원 박위진 원장을 만나보았다.

김준철(이하 준) 정말 바쁘고 경황도 없으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원장님 소개를 직접 부탁드려도 될까요?

박위진(이하 박) 네. 반갑습니다. 오늘 다시 LOCKDOWN 행정명령이 내려져서 좀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좋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일단 저는 2019년 3월 9일에 이곳에 부임했습니다. 부임 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의 문화와 체육의 진흥 및 국제교류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해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공직생활을 국제 스포츠 경기대회 유치 및 개최 관련 국제스포츠 업무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관계로 미국의 텍사스 대학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기도 했고요. 그 이후 98년부터 10여 년간 한류진흥업무를 집중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말하자면 한류의 태동부터 참여했던 거죠. 그때의 실무경험을 토대로 공부를 계속해서 국제경영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었고요. 그 이후 또 다른 10여 년간은 한국의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과 같은 문화기반시설 확충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관련 업무도 수행했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원장님 업무의 대부분이 문화와 체육의 국제교류와 관련된 일을 해오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그렇습니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 흐르면서 교류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임을 피부로 느껴왔습니다. 우리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치가 높지 않아서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Made in Korea’를 가급적 감추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히 한국산임을 내걸고 마케팅을 할 정도로 위상이 올라갔죠.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류가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말씀처럼 한류의 성장을 가장 밀접하게 느끼셨을 텐데요. 이미 가요,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르에서 성장하고 있는데, 한류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전망과 필요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한류의 원조를 따지자면 태권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당시 미국에는 없던 존중과 존경, 또 정신적 문화 전달까지 많은 한국 사범님이 미국 곳곳에서 우리말로 태권도를 가르쳤죠. 안타깝게도 그 힘이 깊이 뿌리내리진 못했지만 이후 박세리, 박찬호 선수가 한류의 맥을 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K-Pop이 정점을 찍고 있죠. 그들이 SNS에 포스팅만 하면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1억 명이 보고 있으니 엄청난 거죠. 그 관심과 사랑이 한글을 배우게 하고 또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도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원에서 꾸준히 하는 행사 중에 한국영화 상영이 있는데 그때마다 많은 미국인들이 찾아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나온 음식을 한인 타운에 방문해서 먹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요.

그렇겠네요.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네요. 한국문화에 대한 벽을허물고 친숙한 문화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된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으로 들리네요.

박 네. 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원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저희의 가장 주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어 강좌입니다. 강좌를 오픈하면 거의 1분 만에 기초반은 마감이 됩니다. 그리고 5분 내로 300여 명의 온라인 한국어 강좌가 마감됩니다.

대단하네요. 한국어에 대한 인기는 사실 곧바로 한국에 대한 호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호감이나 관심이 있어야 한국어 공부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음악도 듣고 한국식당에 가서 한국 음식도 먹는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한국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동양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차별행위나 가혹행위를 받게 된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만들었던 것이 경찰 세미나였습니다. 현재 3천여 명이 넘는 경찰들이 한국문화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문화를 이해하고 나면 받아들이는 폭이 커집니다. 실제로 한국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죠. 이 외에도 여론 주도층들을 집중적으로 우선하여 한국문화강좌를 준비해 진행하고 있으며 학교 교사, 공무원들에게도 알리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COVID-19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이 팬데믹 사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이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현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죠. 오늘 다시 LOCKDOWN 행정명령이 내려진상태인데요. 짧은 기간이지만 소위 언택트Untact시대로 급속히 진입함에 따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언택트 및 온라인 사회로의 진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그 속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시켰다고 봅니다. 코로나 퇴치를 위한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위해 온 세계가 매진하고 있으니 현대의 과학 기술로 조만간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14세기 유럽에서도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나 이를 극복한 유럽은 이후 산업의 발전 및 르네상스의 도래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였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인류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 즉, 뉴 노멀New normal을 만들어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문화원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나요?

LA 한국문화원은 코로나 확산 시기 언택트 문화홍보방식을 통해 수많은 고객과 다차원의 문화 소통을 하면서 한류 커뮤니티를 지속시키고 지원해왔습니다. 코로나 이전의 콘택트 방식은 문화홍보에 있어 시간과 장소의 제한이 있었지만, 언택트 방식은 시공을 초월하여 한국문화 팬덤을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전략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려면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해서 공급할 수 있어야 하고, 현지인들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콘택트 방식 못지않은 몰입도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택트 방식의 문화홍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박 언택트 방식의 문화홍보라 하면 일견 해외문화홍보를 총괄하는 한국의 본부 한 곳에서 일괄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온라인으로 제공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문화홍보는 한 방향 소통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문화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쌍방향, 소비자와 소비자간, 또는 중간 매개자influencer를 사이에 두고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다차원적인 소통을 통해 콘텐츠의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해외문화홍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죠. 이를 위한 핵심고리 역할을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기존의 문화원 시설을 활용한 문화홍보방식과 온라인 문화홍보 방식과 혼합하여 운영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이지만 문화홍보의 성과는 몇 배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견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에는 위기였지만, 성공적으로 극복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가 그 이전보다 더 높아졌듯, 한류로 상징되는 해외문화홍보에서도 이제는 언택트 방식을 병행할 새로운 기회가 다가온 것으로 봅니다.

제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문화원의 역할과 활동이 중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원의 행사들에도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어떠한 것들을 진행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특별히 신경 쓰고 추진하시는 행사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LA 한국문화원은 문화홍보 방식 전환에 대한 로드맵을 신속히 설정, 실행에 옮김으로써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을 선도하는 현지 문화기관으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그중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사업 유형이 인플루언서를 주축으로 하는 ‘문화원 멀티 플랫폼’ 구축인데요, 이는 문화원을 유일 플랫폼으로 진행하던 기존 사업을 각 분야의 인플루언서와 결합해 그들이 이미 형성해 놓은 거대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이 방식은 문화원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 수의 단순 증가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각 인플루언서의 팬덤이 기존 문화원 팬덤과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하다는 점에서, 또한 그들의 팬 중 다수가 단순 관객이 아닌, 콘텐츠를 각자의 플랫폼으로 다시 실어 나르는 재생산자라는 점에서 폭발적 파급력을 갖습니다.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외에도 문화원의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온라인상에서 즐길 수 있는 전래동화 스토리텔링, 화상 강의, 웹 세미나Webinar 등과 같은 버추얼 프로젝트Virtual Project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높은 조회 수로 호평을 얻고 있고요 .

제가 알기로도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온라인행사들이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한류 문화와 달리 한인 문화가 또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한인 문화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이민문화라고도 칭할 수 있을 텐데요. 원장님이 바라보는 한인 문화의 진행 방향이나 발전가능성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디아스포라는 어찌 보면 또 다른 문화적 열쇠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시대는 어느새 국적이 중요치 않은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내내 문화 예술과 관련된 많은 동포 2세 문화인들을 접하며 그들 각각의 활동에 놀라웠지만, 반면 안타까운 부분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반적 문화인들의 결집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미국에 이민을 오거나 이곳에 태어난 이들은 일반적으로 미국적 사고를 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결국 어떤 경계에서는 반드시 한국인의 DNA가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문화원은 그런 이들 사이에서 서로를 네트워킹해주고 문화 분야에서 힘을 기르는 결속력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도 드림워크, 소니, 디즈니 같은 메이저 회사들과 한국의 인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물론 PPL이나 다른 다양한 분야의 협업도 포함되겠지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화원의 역할이 훨씬 깊고 넓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좀 더 적극적인 후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박 사실 문학적인 요소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가장 기초가 되고 뿌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소통으로 그 반응 속도가 더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그런 메이저 회사들과의 소통에서 시나리오작가나 소설가들의 작품 역시 재조명되거나 재창조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또한, 주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예술인들의 공연이나 전시, 민화, 전래동화들의 콘텐츠를 함께 만들며 단편적 장르를 지휘자적인 역할로 융합 콘텐츠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정말 많은 분야와 더 많은 인재가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데요. 끝으로 쿨투라 독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실 수 있는 희망적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어렵고 힘든 일도 겪기 마련이죠. 새로운 방식의 삶에 적응이 다 때가 되어야 하듯, 아마도 코로나 백신도 나오고 이번 사태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긍정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다소 힘들고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방식의 삶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장이나 극장, 전시장 같은 오프라인상의 문화를 즐기기는 어려운 시기이지만 온라인으로 들어가 보면 그동안 잘 몰랐던 많은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분간 온라인으로 다양한 콘텐츠의 바다 항해를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 역시 이 시간을 계기로 다시 한번 문화원과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을 되새기게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은 다시 LOCKDOWN을 선택했고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함과 긴 시간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알게 모르게 스며든 익숙함이 당혹스러운 감정들과 이어지고 있다. LA 한국문화원 박위진 원장과 나눈 이야기 속에서 그가 가진 동포를 향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자신이 맡은 직책 안에서 이루어내려는 선명한 목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한국의 문화와 이민의 문화 속에서 정확한 소리를 찾아 어우러짐을 만들려는 지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지만 문화를 통한 아름다운 연애를 꿈꾸는 그의 연주를 더 많이, 더 오래 들을 수 있길 바란다.

 

 

* 《쿨투라》 2020년 8월호(통권 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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