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12] 에필로그
[아티스트 신중현 12] 에필로그
  •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 승인 2020.08.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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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의 이별
버클리음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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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하늘, 낮은 구름 아래, 김포공항에서 떠오른 비행기가 보인다. 장맛비를 앞두고 바람이 오간다. 음악이 물의 벽처럼, 피막처럼, 머문다. 어른대는 얼굴. 나를 구성하는, 살갗에 문신한, 내 눈에 깃든 얼굴 보고 싶은 얼굴, 사라진다. 꿈처럼 지워졌다. 남아 있지 않은 그리움. 말끔하게 세척된 피부. 길게 길게, 영원으로 치닫는 신중현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느리게 술을 마시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잊어도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없어졌다. 푸스스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린, 없어진 것들. 이제는 나 아닌 것들이여. 음악이여, 나를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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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음악만 살아서 흘러가는 느낌. 눈물 마른 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돌이킬 수 있을까. 음악은 나보다 오래, 아름답고 깊게 살아 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음악에게, 그 사람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문장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음악이 나를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글의기술(記述) 주체를 파악할 수 없다. 음악이 다가온다. 몸이 뜨거워진다. 신중현의 음악이 내 몸을 부린다.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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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요. 나를 봐요. 내가 부풀고 있잖아요.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 빛이 동공을 찌르는 순간, 나는 터질 것입니다. 한 음절로 허공에 남을 거예요. 펑! 뚫린 가슴에 소소리바람 지나갑니다.

  음악이 내 몸을 지날 때 나는 아프지 않았어요. 비명도 지르지 않았어요. 깊은 어둠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누워 있었어요. 빠져나가는 당신을 붙잡지 않았어요.

  기타 소리가 불빛처럼 번지고 있어요. 모퉁이를 도는 바람처럼, 닫힌 문이 잘라낸 그림자처럼, 헤어지는 나와 당신. 이것을 거짓말이라 부르겠어요. 이별은 아침의 재즈 같아요. 기타를 연주해줘요. 이곳의 나를 삭제해줘요.

  죽음의 빛깔을 닮은 기타 소리 허파에 고인다. 내리쉬고 들이마신다. 저미는 음악 앞에서 시동 걸린 엔진처럼 부르르 떨고 있다. 경경열열(哽哽咽咽). 영영,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늑골 마디마다 걸려 있는 기타 소리. 기타의 현이 진동할 때마다 나는 걸린다, 넘어진다, 깨진다, 부서진다. 마음이 무거워서 걸린다. 마음이 아파서 걸린다. 마음이 누더기 되어서 걸린다. 걸릴 때마다 운다. 닫힌 몸. 다친 몸.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펼쳐지는데, 그 안의 나는 살아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제거하는 음악, 신중현의 기타. 마음의 요동을 잠재우는 기타. 어둠에 파묻힌 나를 굴착하는 기타. 기타 선율이 나를 어루만진다. 나는 돌아온다. 기타가 영송(詠誦)한다. 기타 연주가 시이다. 언어가 아니라 기타로 신중현은 시를 읊조린다. 과거를 유폐시키는 단호한 빙결의 의지. 얼음의 통곡 같다. 나는 동결 건조된다. 신중현의 기타, 빙설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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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더 스트라토캐스터. 왜 이 앨범이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이라는 명칭을 걸고 있는지 확인한다. 신중현을 위해 기타가 제작되었고, 악기를 헌정 받은 연주자가 그것을 기념하려고, 거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앨범을 창작했고, 그 결과가 작년에, 이 글의 연재를 출발할 무렵, 우리에게 주어졌다. 8곡이 수록된 앨범의 작품을 이전 글에서 나는 하나하나 감상했다. 맞이한 끝을 위해 3곡을 남겨두었다. 종점에 도착한 이 글이 품고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감춰 두어야 할 것들이었다. 숨죽여 경청해야 할 신중현의 음악이 남아 있어야 했다. 글쓰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신중현의 음악이 펼쳐내는 광야에 다시 선다. 절정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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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들> : 신중현은 더듬더듬 노래한다. 아버지의 음성 밑에서 아들(신윤철)의 해먼드 오르간이 활주한다. 대하(大河)처럼 유장하게 전진하면서 열리는음악. 나는 그의 기타를 기다렸다. 신중현의 연주가 들려온다. 기타가 흉곽을 파고든다. 청취와 무관하게, 끝도 없이, 머문다. 이곳에 항존한다. 신중현의 몸속에서 밖으로 방사되는 기타 소리는 인지하기 전에 순수한 감각으로 몸에 스며든다. 모르는 사이에 새겨진다. 나를 떨게 한다. 나를 파동으로 바꾼다. 물결치면서 멀리 멀리 퍼진다. 음악은 머묾도 떠남도 없이 영원한 현재 속에 나를 꽂아 넣는다. 죽음을 부정한다. 살아 있음의 환희가 내 몸을 불태운다. 신중현의 기타가 불꽃으로 피어난다. 노장이니 거장이니 하는 호칭은 쓸모없다. 그를 분식(粉飾)하는 어떤 단어도 그의 영혼이 깃든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다. 언어가 분해된다. 모음과 자음으로 흩어진다. 물리적 소리에 불과한 음소가 되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음악만이 여기에 있네.

  수많은 그날들 모두 다 잃고 / 허무한 그 세월에 말없이 지냈네 / 귀중했던 그 시간 가질 수 없어 / 방황 속에 헤매던 기나긴 그나들 / 마음 잃고 사랑 잃고 / 버림에 차이며 갈 곳을 잃었던 / 차디찬 그 세월들 / 찾을 수는 없지만 모두 잊어야만 하기에 / 저기 저 밝은 빛 찾아서 다시 한 번 가보리 / 내 그 길을 걸어가리

  음악이 품고 있던 언어들. 음악이 없다면 부스러질 언어들. 신중현은 “저기 저 밝은 빛 찾아서 다시 한 번 가보리”라고, “다시” “그 길을 걸어가리”라고 다짐한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본다. 되찾을 수 없는 과거를, “모두 잊어야만 하”는 운명을, 수긍하는 신중현. 주어진 음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의지, 언어가 아니라 음악, 신중현이 나의 심장에 박아 넣는 것.

  가사가 사라진 후, 신중현이 기타에 불을 붙인다. 이것은 연주가 아니다. 이것은, 이 음악은, 이 소리는, 몸의 울부짖음이다, 마음의 흐느낌이다. 대립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싸안아 용융시키는 기타의 불꽃이다. 모든 적요를 기립시켜 하늘로 쌓아올린 냉혹한 기타의 빙벽이다. 전자를 연주자의 느낌으로, 후자를 연주자의 기술로 파악해도 좋다. 예술의 끝에서 빛이 된 찬연한 존재, 신중현의 현현을 목격한다. 그처럼 나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나의 마음을 김수영의 시에 얹어본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 사그라져 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 산이 //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 슬픔처럼 자라나고 (……) /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 가지 / 까지도 사랑이다 //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김수영, 「사랑의 變奏曲」 부분

포토뉴스 사진 제공

  <어디서 어디까지> : 오르간이 없었다면, 신중현의 노래는 도드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 매끄러운 표면에 안면(顔面)을 생성하는 주름 또는 파란 하늘 속의 붉은 풍선. 노래하는 신중현이 기타 솔로에 들어가기 전까지 건반은 작품의 전면에서 휘황한 선율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건반이 광선을 방사한다. 휘감긴 나는 열기에 휩싸인다. 나는 행복을 복사(輻射)한다. 솟구치는 분수 같은 나의 기쁨. 음악의 열락. 신중현에게 ‘록(rock)’을 헌정해야 하는 이유. 심장에 육박해서 온몸을 전율로 몰아 넣는 근원적이고 급진적인 음악이 ‘록’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의 맥동이 느껴진다. 미니멀한 가사.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가사. 단순함이 싣고 오는 명쾌함. ‘어디’와 ‘어디’ 사이를 오가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 사랑에 달뜬 청년의 마음. 희망과 좌절의 진자 운동. 이별과 재회의 연속. 사랑에 빠진 청춘의 혼란한 심사. 청년의 상황은 애달픈데 듣는 나는 왜 즐거울까.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다가선다. 건반의 날개 위에서 기타는 나를 찌른다. 맹금의 발톱에 뚫린 것 같다.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파랑이 밀려온다. 신중현의 기타가 다다른 질감의 단독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동안> : 종착지이다. 신중현의 노래는 끊어질 것 같지만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나보다 빠르게 슬픔을 돌파한다. 그와 나는 황홀한 이별의 순간을 맞이 했다. 신중현은 담담히 말한다. 노래와 발화 중간 지점에서 들리는 숨소리. 그는 숨 몰아쉬며 살았던 인생을 돌아본다. 그리고 약속한다. 이별 후의 만남을, 이별 후의 이별을, 영원한 이별의 시작을, 마침내 이루어질 재회를. 오늘 헤어지고, 우리,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 내일이 아니라 모레 이별하면 어떨까. 하루만 더 머물면 안될까.

  신중현이 기타로 말한다. 떠나는 자가 남겨진 자에게 건넨다. 언어가 아니라 음악으로, 감정의 극점을 선사한다. 나는 떠나지 않아, 나는 이별하지 않아, 나는 사라지지 않아, 나는 허공에 기타 선율로 걸려있어, 끝없는 바람처럼 너의 몸속에 머무를 거야, 숨을 쉬어봐, 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기타가 울고 있다. 기타의 몸이 사라진다. 기타의 혼불이 시퍼렇게 타오른다. 나는 소거된다. 나는 기타가 된다. 내가 신중현의 기타가 되어 이별을 완성한다. 내 몸이 운다. 그도 떠나고 나도 사라진다. 우리는 만났으나, 그곳에 없었고, 우리는 헤어졌으나, 이곳에 함께 있다. 신중현이 노래한다.

  그동안 기뻤소 그동안 즐거웠소 / 난 이제 가지만 그대를 못 잊겠소 /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 못 다한 그 말을 그에게 할텐데 할텐데 / 가로수 길 따라 끝없이 가는데 / 무엇이 자꾸만 내 가슴 울리나 /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다면 / 못 다한 그 정을 나누어 볼텐데 볼텐데

  나는 ‘그동안’ 명사 하나를 아껴 두었다. 마지막이다. 나는 그와, 그의 음악과, 그의 기타와 이별한다.

  당신이 눈으로 들어와 / 뒤통수 뚫고 사라졌을 때 / 총알처럼 // 이곳에 있었던 당신이 빛에 파 / 먹혔을 때 나는 고개 저으며 / 응결시켰어요 당신을 // 으깨듯이 / 짜내듯이 // 당신을 안자 / 홍옥 냄새 지났어요 // 나는 깨물린 과육 / 이마 위로 보름달 내려왔지만 // 그날의 살과 뼈 / 더듬고 냄새 맡고 만지는 / 그 몸 누구의 것입니까 // 배꼽 맞대자 적반이 피어나요 / 가려워요 도려내고 싶어요 // 증발한 후 / 어떤 몸을 기억하는 일 // 기타 그리고 어떤 몸
―장석원, 「이별 후의 이별」 전문

CJ문화재단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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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현의 음악은 역사성과 현대성의 징표로 예술사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신중현 덕분에, 한국적인 것과 한국 고유의 것, 주체 ‘우리’가 지닌 전통의 기원, 그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뒤돌아본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음악이 아니었으면, 신중현이 아니었으면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배움이었고 즐거움이었고 흘러넘침이었다. 혼자라고 느꼈을 때, 세상에 던져진 후 사랑이 단 한 번도 실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살아갈 다른 날들도 홀로 아득한 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을 깨달았을 때, 내가 아팠을 때, 따스한 빛이 되어 나를 비춰준 음악. 그 음악의 주인공, 신중현. 발견이었기에 경이였고, 기적이었기에 경악이었다. 그의 음악 때문에 행복했다. 내 피에는 어느덧 그의 음악이 녹아 흐르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여,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0년 8월호(통권 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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