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2]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살아가야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에서
[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2]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살아가야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에서
  • 이정환(시인,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
  • 승인 2020.08.27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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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그래라
그래, 그래 알겠다
그래, 그래 가봐라
그래, 그래 바쁘제
그래라
알아서 해라
하도 바쁜 그래이
- 류금자, 「그래, 그래」 전문

 

  류금자 시인은 대구 비산동 출신으로 201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텃밭』이 있다.

  「그래, 그래」는 얼마나 정겨운가. 살가운 정이 짤막한 단시조 한 편에 잘 녹아 흐르고 있다. 우리가 보통 대화할 때 어른이나 아이나 흔히 잘 쓰는 말 가운데 하나인 그래, 가 제목까지 합하면 무려 열세 번이나 나온다. 사실 웬만한 대화는 그래, 로 다 해결될 수가 있다. 더구나 가까운 친구나 가족끼리는 더욱 그렇다. 그래, 그래 그래라, 하면서 그래, 그래 알겠다, 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서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모든 의사 교환은 가능하다. 마음으로 다 통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하면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겠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화자는 그래, 그래 가봐라, 라고 하면서 덧붙이는 말로 그래, 그래 바쁘제, 라고 호응한다. 바쁘니까 그리고 이야기가 잘 되었으니 가보라는 것이다. 또한 그래라, 라고 하면서 알아서 해라, 라고 재량권을 준다. 믿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혼자서 하도 바쁜 그래이, 로구나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을 듯하다.

  요즘 삶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가족끼리 혹은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점일 것이다. 소통의 부재다. 각자 일에 바빠서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어 각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여유를 가지고 ‘그래, 그래’를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커다란 돌은 밟고
조그만 돌을 이고

돌 가운데 버티고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

사는 건
보이지 않는
돌덩이와의 마주침

부대끼면 안아주고
간간이 업어도 주면

등지고 앉았어도
느끼는 너의 체온

그렇게
나를 주면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

보잘 것 없었지만
너를 맞아 둘이 되고

어설픈 꿈도 꾸며
돌담장 된 나를 본다

세상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이다
- 황만성, 「돌담장」 전문

 

  황만성 시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201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세상은 돌들이 만나』가 있다. 「돌담장」은 읽을수록 맛이 난다. 워낙 술술 자연스럽게 잘 풀려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속으로 푹 빠져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인은 가야산에 입성하면서 새로운 청록파를 개척 중이다. 이것은 흙과 더불어 온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결실의 소산이 첫 시조집 『세상은 돌들이 만나』이다.

  「돌담장」에서 화자가 차근차근 밟아가는 시의 돌단에 함께 발을 올려놓을 수 있겠다. 커다란 돌은 밟고 조그만 돌을 이고 돌 가운데 버티고서 돌담장이되고만 나라는 대목에서 나와 돌담장의 합일을 읽는다. 그런 뒤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돌덩이와의 마주침임을 제시한다. 부대끼면 안아주고 간간이 업어도주면 등지고 앉았어도 너의 체온을 느낀다. 끝수에서 보잘 것 없었지만 너를 맞아 둘이 되고 어설픈 꿈도 꾸며 돌담장 된 나를 보면서 종국에 이르러 세상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임을 깨닫는다.

  돌담장이 한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그만의 도읍지에서 영원을 꿈꿀 수 있으리라.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 《쿨투라》 2020년 8월호(통권 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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