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세상아, 네가 너무 맵다
[드라마 월평] 세상아, 네가 너무 맵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0.08.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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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회사원〉

  요즘 부모님과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미스터트롯>에 이어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그리고 ‘트롯맨’들이 출연하는 여러 예능까지. 언제 이렇게 부모님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즐겁게 대화를 나누어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흥겨운 트롯맨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음압병실처럼 고요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코로나19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트롯맨 효과는 비단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닌 듯하다. 가수 영탁이 까메오 출연을 하고 가수 장민호, 김희재 등이 드라마 OST에 참여한 <꼰대인턴>이야기다. 아무리 봐도 비극적인 내용인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훈훈한 해피엔딩”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 1위로 종영했다. 배경음악에 따라 드라마의 톤앤매너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꼰대인턴>의 훈훈함은 삶의 희로애락을 흥겨운 멜로디로 승화시키는 트로트의 매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꼰대인턴>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다. 모두 즐거운 와중에 혼자 못 웃는 내가 진짜 꼰대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이대로 불명예 퇴진할순 없다. ‘꼰대’가 되느니 ‘진지충’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 모름지기 오피스물에서 주인공은 진지한 캐릭터의 몫이니까.

 

  <미생>(2014)과 장그래
  오피스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미생>(2014)이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한 현대판 손자병법으로 ‘인생드라마’의 명단에 올라간 웰메이드 드라마.

  고졸 검정고시 출신인 장그래는 운 좋게 무역상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지만, 오랜 기간 취업을 준비한 고스펙의 명문대 동료들과 끊임없이 비교된다.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프로기사 준비와 생계를 위한 알바를 힘겹게 겸했던 그는 프로입단에 실패함으로써 지난 세월을 모두 부정당한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하기보다는 더 노력하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노오력’의 대명사, 그가 바로<미생>의 장그래다. 드라마 첫 회에서 장그래는 “나는 노력을 아직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낫다.”라고 굳게 결심한다.

 

Ⓒ <미생>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오피스물인데도 스릴러를 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는 것은 모두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른” 장그래 때문이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퇴사자의 말처럼 드라마는 직장생활을 하며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전쟁과같은 적자생존의 게임에서 장그래가 과연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을까. 브라운관 밖에서 시청자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가슴 졸이며 그의 행보를 지켜보게 된다.

  비록 정규직이 되진 못했지만 훌륭한 멘토 오상식 과장이 새로 설립한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전 세계를 누비며 그는 자신이 꿈꾸던 ‘상사맨’이 된다. 드라마는 중동 사막을 배경으로 열심히 일하는 장그래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미생>은 고졸 출신 인턴의 무모한 도전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꼰대인턴>(2020)과 가열찬
  <미생>의 장그래가 드라마 완결 20회 만에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면 <꼰대인턴>은 단 1회만에 주인공 ‘가열찬’을 인턴에서 마케팅영업 팀장으로 승진시킴으로써 화끈하게 드라마의 포문을 연다. 이만식 부장으로부터 ‘월급이나 축내는 인간’이라는 모멸과 멸시를 받고 해고당한 가열찬은 경쟁사인 준수식품에 인턴으로 입사하자마자 ‘핫닭면’을 기획해 위기의 ‘준수식품’을 구하고 마케팅영업팀의 신화가 된다. 한 신문기사에 의하면 <꼰대인턴>의 인기요인은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통 튀는 이야기”다. 아마 이 부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설정의 통쾌함은 딱 여기까지다. 딱 1회까지.

 

Ⓒ <꼰대인턴>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며 근무시간에 볼링장에서 회식을 하는 “세상에서 다시 없을 젠틀상사”가 된 가열찬은 이민식과는 다르게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만식이 윗사람 눈치 보며 회사 내 정치싸움에 민감하였다면 가열찬은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위아래 모두 눈치를 본다. 그는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강매당한 라면을 사비로 환급해주고, 화장실 가는 척 휴대폰을 켜두고 와서는 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나 엿듣기까지 한다.

  2014년 장그래가 살던 세상이 갑과 을로 나누어진 이분법적인 세계였다면 2020년 가열찬이 사는 세상은 갑을병정의 견고한 위계질서 안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세계다. 회장 밑에 사장 있고 사장 밑에 본부장 있고 본부장 밑에 팀장 있고 팀장 밑에 대리 있고 대리 밑에 사원 있고 사원 밑에 인턴 있고 인턴 밑에 취준생 있고…누군가의 갑이 누군가의 을이 되는, 누구도 방심할 수 없는 무한경쟁의 세상이 바로 가열찬이 ‘싸워야하고 덤벼야 하는’ 세계다. 이곳에서는 가족도 없고 사랑도 없다.

  <미생>에서 장그래의 경쟁자는 동기인턴인 생면부지의 타인이었다. 그런데 <꼰대인턴>에서는 정규직 한자리를 두고 사랑하는 남녀가 경쟁하고 한집에 사는 아버지와 딸이 경쟁한다. 더 끔찍한 일은 그들이 치열한 생존 다툼을 벌이는 동안 회장의 외동아들은 개인 사무실에서 혼자 그림 그리며 놀다가 대표 재신임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세상인가.

 

  고차원적으로 ‘멕이는’ 법
  <미생>과 <꼰대인턴>은 각각 종합상사와 라면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업’이라는 공통된 직무를 담당하는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때문에 인턴을 대상으로 물건 팔기 테스트를 실시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미생>의 장그래는 사우나 앞에서 양말과 팬티를 팔면서 “물건을 팔려면 그 물건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반면에 <꼰대인턴>은 우산을 팔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에게 호스로 물벼락을 퍼붓는 장면을 통해 “그 물건을 상대방이 필요하게 만들어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곤궁에 빠트리면서까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인턴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려낸다. 이해관계에 따라 타인을 위기에 빠트리는 ‘악’보다 그것을 취업을 향한 절실함과 순수한 열정으로 포장하는 ‘위선’이 나는 더 무섭다.

  <꼰대인턴>과 같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요구하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장그래를 이끌어주던 오상식 과장과 같은 멘토는 존재할 수 없다. “모르니까 가르쳐주실 수 있잖아요.”라는 장그래의 유명한 대사는 이만식에 의해 희화화된다. 부장에서 시니어인턴으로 재취업한 이만식은 상사취향에 맞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부터 기획서를 만드는 것까지 회사생활의 모든 것을 새로이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 컴퓨터 앞에 쩔쩔매는 그의 처량한 모습에서 오상식 과장이 보여주던 카리스마와 포용심은 찾아보긴 어렵다.

 

Ⓒ <꼰대인턴>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가열찬과 이만식이 티키타카하다가 연대를 형성하는 모습이 훈훈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존경할 만한 멘토의 부재는 동반 성장서사라는 좋은 포장지로는 가려지지 않는 쓸쓸함을 남긴다. 끝없이 펼쳐진 중동의 모래사막처럼 막막한 현실에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멘토는 2020년 우리에게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걸까. 새 회사에서 오상식 과장과 함께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장그래와 달리, 가열찬은 새로 설립한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다시 구직에 나선다. ‘전직 부장’ 이만식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그는 ‘시니어인턴’의 신분으로 취업전선에 또 나선다.

  <꼰대인턴>에서 중요한 것은 ‘꼰대’가 아니라 ‘인턴’이다. ‘우리 모두 미생이다’라는 <미생>의 명대사처럼 <꼰대인턴> 속 등장인물 역시 모두 ‘인턴’, 즉 회사에 잠시 머물다 갈 비정규직으로 그려진다. 우리 모두 인턴이다. 하지만 ‘미생’과 ‘인턴’은 다르다. 미생에서 완생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의지로 가능하다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가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열찬이 이만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터넷 포탈에 검색해본 ‘고차원적으로 멕이는 법’을 기억하는가. <꼰대인턴>을 보면서 느꼈을 통쾌함 뒤에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희망고문도 짜증이 날 판에 판타지의 탈을 쓴 잔혹동화라니! “세상아, 네가 너무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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