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주작의 사회학
[미디어 비평] 주작의 사회학
  • 김세연(미디어평론가)
  • 승인 2020.08.3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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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라면 ‘주작’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실제로 있지 않은 상황을 꾸며내는 일’을 뜻하는 이 단어는 주로 인터넷에서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 글을 쓰거나 자극적으로 연출된 영상을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표준어인가 싶지만, 사실 이 용어는 게임계에서 유래했다.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프로게이머 생활을 정리했던 마재윤이 1인 방송을 시작한 것이 그 발단인데, 방송을 보러 온 사람들이 채팅창을 ‘조작’이라는 단어로 도배하자 이를 금지 키워드로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조작’을 ‘주작’으로 변형해 여전히 그를 조롱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후 ‘주작’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고어(古語) 중에 같은 음과 뜻을 지닌 단어가 있어 그와도 의미가 통하게 되었다는 것이 후기다.

  주작 논란을 빼고 유튜브 문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음식을 몰래 뱉어버리는 먹방 BJ, 동물을 학대하는 유기묘 보호사, 병증을 과장하는 틱 장애인 등. 인기 유튜버의 ‘주작질’이 밝혀지면서 하루아침에 구독자 수가 폭락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만든 자극적인 영상이 파멸의 씨앗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거짓말 폭로를 주요 콘텐츠로 하는 채널도 생겨났다. 주작 감별사를 자처하는 채널 ‘정배우’는 최근 백만 유튜버 ‘송대익’을 저격하며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치킨·피자 배달원의 무단취식을 주장해 시청자들의 분노를 끌어냈던 송대익의 영상이 사실은 조작이었다는 점을 밝혀낸 것. 송대익 측은 뒤늦게 사과 영상을 게시했지만 이미 실망한 구독자들의 마음을 돌릴 길이 없어 보인다.

Ⓒ urigeller.com

  거짓 방송의 역사는 유구하다. 80년대에는 ‘유리겔라’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초능력자가 KBS에 출연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국의 청소년들이 손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초능력을 따라하는 바람에 각 가정의 숟가락이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즐거운 추억처럼 회자된다. 과거 화제가 되었던 방송에 대해 ‘사실은 작가가 시켰다’며 후일담을 늘어놓는 90년대 스타들, 특별한 사연을 지닌 일반인 출연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경우는 흔하다. 그뿐인가. 따지고 보면 예능 토크쇼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전부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를 위해 과장과 윤색을 거치고, 때로는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처럼 꾸미거나 아예 지어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개 거짓이 드러나더라도 도덕적 지탄을 받지는 않는다. 그 정도 거짓말은 방송의 재미를 위한 일종의 ‘조미료’(MSG)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송대익 유튜브 영상 캡쳐

  어떤 거짓말은 이해받고, 어떤 거짓말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첫 번째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여부다. 예컨대 유튜버 송대익은 해당 치킨·피자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배달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했다. 두 번째로는 발화자의 평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판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더 큰 데미지를 입는다. 평소 반듯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방송해온 사람이 신뢰를 깨는 행동을 할 때 더 크게 실망하는 법이다. 깔끔한 매너와 성실함으로 인기를 누려왔던 먹방 BJ ‘밴쯔’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음식을 몰래 버리는 등 비교적 작은 잘못에도 팬들이 분노한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필자 역시 윤색의 허용 범위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글쓰기 기초 수업을 진행할 때인데,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읽어보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안에 들어가는 내용이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앞에서는 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나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는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에피소드를 바꿔보라거나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다른 식으로 서술해보라는 식의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수정본을 보면 애초의 경험들이 조금씩 왜곡되어 있다. 지어내서 썼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해진 틀에 자신의 경험을 욱여넣는 것 또한 진실에서 멀어지는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댄 애리얼리에 의하면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이득을 얻으려 하는 이기적 욕구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도덕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 조절을 하듯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불법 다운로더나 회사 비품을 집에서 사용하는 직장인, 짝퉁 상품의 소비자처럼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또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주작을 일삼는 유튜버라고 해서 모두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정직하게 방송을 하다가도 한 번 얻은 인기와 관심을 유지하려는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주작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듯하다. 사소한 동기로 시작한 거짓말은 조금씩 이기심과 도덕성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살을 깎아먹는 행위에 가깝다. 거짓 방송의 난립은 개인 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 전반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 전반의 불신을 키워 건강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교란시킨다.

  보통 주작 논란에 휩싸인 유튜버를 향한 비난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은 사과 방송 이후다. 사과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인데, 어떻게 하면 상황을 신속히 무마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머릿속이 네티즌에게도 보이는 모양이다. 거짓으로 거짓을 덮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 가장 좋은 전략은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진정성의 레토릭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1 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이경식, 청림출판, 2012, 297쪽.

 

 

* 《쿨투라》 2020년 8월호(통권 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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