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월평] 스탠딩 코미디, 관람한 적 있으신가요?
[연극 월평] 스탠딩 코미디, 관람한 적 있으신가요?
  • 장윤정(연극평론가)
  • 승인 2020.08.3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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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
사진_박태양 작가

  2018년 6월,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는 등장과 동시에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성주의, 퀴어, 장애인 연극 등, 그간 ‘연극제’라는 이름 아래서 만나기 어려웠던 다양한 화두의 작품들이 한데 아울린 연극제였기 때문이다. 극장 안팎으로 공연되는 작품들 속에서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즐긴 ‘축제’ 그 자체였다. 그렇게 두 해 동안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던 페미니즘 연극제가 다시,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작품들과 함께.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으니,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예비 관객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성원이 넘쳐난 공연이다. 다름 아닌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다. 2가 있다면 1이 있을 것인데, 2019년 혜화동 1번지 7기 동인 가을 페스티벌에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공연이 진행된 바 있다. 스탠딩 코미디 형식을 차용하여, 여러 가지 편견 및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작품이었다. 음식물 반입금지라는 극장의 오랜 규정을 깨고 칵테일을 판매하며, 코미디언이 연극무대에 등장하고,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장애와 희극의 관계성, 배우로서 겪는 일련의 상황 등을 유쾌하게 논했다.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적극적이었다. 그런 공연이 더 강력한 출연진들로 작품을 보강하여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페미니즘 연극제와 스탠딩 코미디와의 만남이라니, 어찌 아니 흥미로울 수 있을까.

 

  스탠딩 코미디와 페미니즘, 서로 얼마나 닮았을까?
  스탠딩 코미디는 한 명의 코미디언이 빈 무대에서 마이크 하나만으로 관객을 몰입시키고 압도하는 코미디를 의미한다. 오로지 언변만으로 웃음을 유발해야 하기에 그만큼 뛰어난 화술과 재치, 순발력이 요구된다. 분명 쉽지 않은 장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스탠딩 코미디는 매력적이다. 창작자에겐 세상에 오롯이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순간이며, 관객에겐 발화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동시대인으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순간인 데다, 모두가 서로의 개인적인 서사에 귀 기울이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스탠딩 코미디는 페미니즘과 맥락이 닿는다. 그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행위,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열린 태도가 그러하다. 작품을 기획한 극단 엘리펀트룸은 이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최초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되었던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은 미투운동 이후 변화를 모색해야 할 연극 방식의 일환으로서 등장했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이란 제목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들어 올려 바로 세우고 싶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 또한 그 의미를 이어간다. 작년과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전문 연기자 이외에 활동가, 학자, 작가 등 일상에서 만날 개인들이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오른 점이다. 그것은, 마이크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음을, 그리고 모두에겐 각자 자유롭게 발화하고 싶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의미했다.

 

사진_박태양 작가

  그래서 이들은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스탠딩 코미디에도 소위 ‘양식’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자기비하와 신세한탄을 적절히 재치있게 표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발화자로 나선 코미디언들의 사적이고 내밀한 역사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개인의 상처가 일회성 웃음으로 휘발되고 경제적 재화로 소비될 위험이 생기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는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이 공연엔 ‘상처의 소비’가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 있었다. 총 9명의 코미디언은 각각 지극히 사적인 자기 고백, 실제와 가상을 오가는 이야기, 일상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공정한 상황 등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속엔 성(性)담론, 퀴어,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비건, 여성 배우, 가족 등의 화두가 담겨 있다. 무대 위 코미디언들은 유쾌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강단 있게 자기 발언을 이어갔고 관객들은 그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것은 놀이로서의 웃음 이상이었다. 서로가 각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공유하는, 유대감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그 지점이야말로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의 펀치라인일 것이다. 펀치라인이란 스탠딩 코미디 문법에선 결정적인 한마디를 의미한다. “모든 페미니스트에겐 자신만의 펀치라인이 필요하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의 이 슬로건에서 ‘펀치라인’은 마치 ‘목소리’로 읽힌다.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듣는 행위,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있는 자세의 중요성을 경험케 하고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행위임을 사유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각 코미디언의 촌철살인 같은 마디마디는 극장 너머의 세상에까지 유효한 역할을 했다.

 

  I AM a FEMINiST
  올해 페미니즘 연극제의 슬로건은 ‘I AM a FEMINiST’다.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라 말하지 못하는 시대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해낸 한 마디가 아닐까 짐작된다. 문득, 페미니즘은 결코 메인스트림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페미니즘은 늘 타자의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스트 또한 자기 정체성을 항상 숨겨야만 할지도 모른다. 작은 극장 공간에서나마 소통과 연대를 경험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러한 지점 때문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될 일에 노력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정체성이 설명될 필요가 없음에도 설명해야만 하는 사회처럼, 페미니즘 연극제가 필요 없는 순간을 위해 페미니즘 연극제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의 슬로건 또한 역설적이다. 페미니스트에게만큼은 굳이 자기만의 펀치라인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역설적인 사회 속에서 허락된 마이크의 자유. 발화의 자유와 그 발언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스탠딩 코미디의 매력이자 페미니즘 연극제의 성격이 아닐까. 만약 그 감각이 궁금하다면, 내년 여름 다시 돌아올 페미니즘 연극제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의 후속작도 놓칠 수 없다. 이번 작품이 판매를 시작함과 동시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으니, 후속작의 인기 또한 벌써부터 짐작 가니 말이다.

 

연출 김기일
출연 경지은, 고은별, 권김현영, 김보은, 에디, 오빛나리,
이리, 최예나, 최정윤
제작 극단 엘리펀트룸
공연장소 1M SPACE
공연기간 2020. 7. 1. ~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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