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유튜브 시대의 음악적 경험
[9월 Theme] 유튜브 시대의 음악적 경험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0.09.03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랙핑크가 새로 발표한 화제의 신곡이 궁금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멜론 등 이용 중인 음원 서비스사의 앱을 구동할 수도 있겠지만 앱을 실행시키고 가수를 검색하고 새 앨범을 찾아 음원에 첨부된 MV를 실행시키는 과정이 다소 번거롭다. 이제는, 아니 언젠가부터 그냥 인터넷에서 유튜브에 접속해 검색하는 길을 택해 왔다. 어쩌면 그 시점이 유튜브가 음악포털로서의 지위도 가져간 때가 아니었을까. 철자 하나만 틀려도 “검색결과가 없습니다”라고 무책임하게 나몰라라하는 융통성 제로인 멜론의 검색기능이 입구에서부터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데 비해 영문 가수명을 한글 자판으로 잘못 입력해도 마저 다 입력하기도 전에 자동완성으로 찰떡같이 제시해주는 유튜브의 강력한 검색기능은 매번 감탄스럽다. 멜론 이야기는 그저 국내 이야기일 뿐이지만 유튜브 검색엔진의 기술력은 시작일 뿐이다.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MV 캡쳐ⓒ유튜브 블랙핑크 채널

  블랙핑크의 신곡을 멜론에서 검색하지 않고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보다 큰 이유는 그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이슈와 문화적 행위들을 한꺼번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곡이 공개된 지 하루만에도 관련 영상은 셀 수 없이 쏟아진다. 오피셜 MV는 기본이고 음악 감상만이 목적이라면 정지화면만 곁들여 올린 게시물도 넘쳐난다. 다른이들의 리액션, 해설, 직접 만든 UGC MV, 신곡을 공연한 TV 음악프로그램 방영분이나 라디오 출연 방송의 발췌본 등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오피셜 MV를 제외한 이러한 게시물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의 팬덤이나 관심사에 기초한 결과물이다.

  유튜브는 문화 실천 공간이다. 유저들은 발췌나 인용, 패스티시와 패러디의 방식들로 기존 자료를 따오거나 짜집기하고 비틀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교감한다. 미디어 이론가 루커스 힐더브랜드가 ‘재중계 혹은 재매개remdeiation’와 ‘포스트 방송 post-broadcasting’ 같은 개념으로 유튜브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문화 실천의 양상을 설명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유튜브가 기본적으로 너You의 브라운관Tube, 즉 ‘너만의 방송’을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여전히 콘텐츠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예능과 드라마·뉴스를 포함하는 TV 프로그램, 영화, 그리고 DVD나 VHS에 담겨있던 각종 영상 자료들을 유튜브를 통해 다시 매개/중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매개/재중계 행위는 기본적으로 유튜브를 거대한 음악 라이브러리로 만들었다. 단적인 예로 한국대중음악사에서 1930~40년대 주요 작품이라 꼽고 있는 앨범이나 음악들임에도 정작 이 노래들을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라는 멜론을 포함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음반 수집가나 마니아들이 산발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옛 음반들에서 추출한 음원을 음반 이미지와 함께 게시함으로써 비로소 들어볼 수 있게 된 것들이 꽤나 많다. 힘들게 모았던 좋아하는 가수의 희귀 음반이나 DVD, VHS 영상 컬렉션이 더 이상 그 이전과 같은 의미를 같지는 못한다. 세상에 존재했던 정식 발매 영상이라면 대부분 유튜브라는 창고 어딘가에서 발견된다. 이제 물리적 음반이나 공연 실황이 담긴 DVD는 정말 소장 자체만을 위한 가치로 살아남았다. DVD를 꺼내서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하는 과정은 유튜브상에서 검색과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하게 된 편리성에 압도되었다.

노래 커버 영상 캡처ⓒ유튜브 해루Heru 채널

  한편 유튜브의 포스트 방송post-broadcasting적 성격은 이제 주류 문화나 거대 자본의 방송국이 지배하던 시대를 벗어나 소비자가 주체가 되는 시청자 중심의 협송(narrowcasting)이 유튜브를 통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관심사로 세분화된 유저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뽐내고 열정을 쏟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은 이합집산을 이루어 여기저기서 다양한 하위문화를 만들어낸다. 노래나 MV에 대한 이른바 리액션, 해설 영상이나 춤, 노래 커버 영상은 유튜브가 보편화시킨 가장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다. 이제 우리는 유명 해설 유튜버가 공들여 만든, 종종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으로 의미 부여된 아이돌 가수의 MV에 담긴 상징과 이야기를 상상해 보게 되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퍼포먼스에 대한 해외 유저들의 다소 과장된 반응reaction에 국뽕이 차올라 흥분하기도 한다. 유튜브 세계의 스타 가수가 새로운 장르로 커버한 팝과 가요사의 명곡은 오늘의 맥락을 배경으로 곡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작업할 때 무슨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3시간 짜리로 편집된 ‘비 올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을 검색해 듣는다. 특히 디지털 시대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대다수는 유튜브뮤직 AI의 추천이나 조회수 많은 검색 상위 플레이리스트의 선별된 취향에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선택 장애를 회피한다. 

  우연한 발견, 혹은 보다 주체적이고 의지적인 문화 실천 행위들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오늘의 가수 GD와의 닮은꼴로 우연히 소환된 잊혀졌던 90년대 가수 양준일의 신드롬은 주류 대중음악사의 기술 논리가 어떻게 다양성과 혁신성을 배제해 왔는지 알게 해주었고, 극리얼리즘으로 재현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공연장면을 실제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현장과 비교 편집한 영상은 우리가 살아냈던 80년대의 스펙터클과 아우라를 상기시키며 저마다의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인가를 남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TV에 몇 안되는 음악프로그램을 일주일씩 기다리거나 음반을 늘어질 때까지 돌려 듣던 시대에 비하면 오늘의 음악 먹거리는 확실히 차고 넘치지만, 오히려 이 정보과잉은 또 다른 피로감으로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 보일 만한 영상을 그럴듯하게 맞추어 내고 우측에 관련 상품처럼 진열된 이 추천 영상들은 대개 목표했던 영상 하나에서 시청이 끝나지 않게 한다. 영상 하단의 타임 스크롤바는 조금의 인내심도 갖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고 이미 발췌 방식을 차용한 유튜브 영상들은 원본의 장편서사를 더 파편화하고 분절시킨다. 이제 우리는 건너뛰기skipping와 채널 서핑을 오가며 시공간이 뒤엉킨 자료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돈다. 아마도 가십성 영상을 좇아 씹을 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 시간은 라벨링이나 기본적인 분류도 되지 않은 무질서한 아카이브 창고인 유튜브 속에서 목적성을 상실한 채 길을 잃게 만든다.

  유튜브를 통한 오늘의 음악적 경험은 양적인 면에서 과거에 비해 분명히 비약적으로 늘어난 풍성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만족감과 짜릿함 측면에서는…? 확언하기 힘들다. 유튜브는 분명 어떤 근본적인 변화의 주역이자 상징이지만 너무 많은 정보와 즐길거리는 한편에서 우리의 감각마비와 주체성 분실을 초래하고 있다. 충족감도 얼마간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 《쿨투라》 2020년 9월호(통권 75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