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경험하는 독서의 시대
[9월 Theme] 경험하는 독서의 시대
  • 김미향(큐리에이터)
  • 승인 2020.09.03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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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TV

  종이책을 읽는 것을 ‘독서’라 부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독서는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이 됐다. 경험하는 독서의 시대, 선두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이들은 단연 ‘북튜버’(book과 youtuber의 합성어)들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1

  ‘독서’라는 행위는 상당히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영상을 틀어놓고 ‘가만히’ 시청하는 것과 비교하여 책을 읽을 때는 일단 손을 움직여 계속해서 책장을 넘겨야 하고 눈으로 읽은 텍스트를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조합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지속하려면 엄청난 수고가 드는 게 사실이다. 책을 늘 곁에 끼고 사는 소위 ‘책 전문가’들도 “사실상 더 이상은 길고 어려운 글이나 책을 읽어나갈 뇌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 어크로스, 2019)하는 때가 바로 요즘 시대다.

  이러한 때에 북튜브는 상대적으로 ‘책’보다 독자들의 진입 장벽이 낮다. 독서를 하면서는 멀티태스킹이 어렵다. 물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순 있지만, 딱 그 정도다. 책을 읽으며 설거지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북튜브의 경우에는 다르다. 보는 독서, 듣는 독서가 가능하다. 따라서 책에 대한 정보를 흡수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등 충분히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게다가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읽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북튜브’는 짧은 시간에 책에 대한 정보를 쉽고 빠르며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북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향유자들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읽었다고 여길 수 있는 동시에 이미 읽은 책이라면 그에 대한 경험을 나눈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북튜브를 통해 단순히 책에 대한 정보만 얻는 것도 아니다. 북튜버들은 서점 브이로그를 통해 책이 진열되고 판매되는 공간을 보여주고 책에 메모하는 법 등 독서와 관련된 활동이나 팁 등을 보여준다. ‘독서’라는 행위 전반에 대한 체험을 함께하는 기분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고양감은 책 구매로도 이어진다.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라는 뜻의 ‘유튜브셀러’라는 단어가 존재할 만큼 현재 시장에 미치는 북튜버들의 파워가 크다.

  해당 채널이 책 소개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 만큼 딱 꼬집어 ‘북튜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타강사 김미경의 유튜브 채널 ‘김미경tv’는 출판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쳐왔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발표한 ‘201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 판매 동향’에 따르면 김미경tv에서 소개된 책들의 경우 방송일 직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이 전주와 비교했을 때 최대 53~60%까지 증가했다. 북튜브가 시장을 흔들 정도로 힘이 있다 보니 책 한 권을 소개하는 데 500만 원의 광고료를 지급하는 등 출판사들도 유튜브에 책을 광고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민음사TV

  더 나아가 출판사들은 직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을 쓰는 2020년 8월 17일 기준 구독자 수가 3.46만 명에 달하는 ‘민음사TV'가 대표적인 예다. 출판사 민음사에서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와 마케터들의 이야기,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출판사로서는 드물게 유튜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유튜브에는 민음사의 편집자와 마케터 등 출판사 직원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유튜브를 뚫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유튜브 문법인데 대다수의 이들이 이를 간과하곤 한다. 민음사TV는 그저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고유하게 드러나는 편집을 통해 향유자와의 친밀성을 높였다. 그저 딱딱하게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유튜브에서 향유자와의 관계 맺기에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친밀성‘을 담보했다는 점이 민음사tv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또한 출판사의 업무 환경을 궁금해 하는 향유자들을 다수 확보했다는 것도 인기를 견인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북튜브, 책이라는 매체와 이루는 조화로움과 함께 유튜브 문법 놓치지 않아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기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정갈하게 풀어놓는 크리에이터들의 보이스도 향유자들의 귀를 사로잡는 데에 주효하게 작용한다. 북튜버 김사슴은 ‘SASUMI김사슴’이라는 채널을 운영한다. 구독자 수는 2.94만 명이다. 아프리카tv BJ로 유명했던 김사슴은 아프리카 방송 중에 진행했던 코너 ‘사스미가 읽다’ 채널을 유튜브로 가져왔다. 중간에 휴지기를 한번 거치고 2020년 7월 11일부터 다시 동영상이 업로드되고 있다. 북튜버 김사슴이 읽은 책에 대한 소개와 해당 도서의 낭독이 주요 콘텐츠라 힘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김사슴의 보이스가 향유자에게 킬링 포인트로 작용한다.

  싱어송라이터 김겨울이 운영하는 북튜브 채널 ‘겨울서점’도 마찬가지다. 종소리가 울리고 시작되는 “겨울서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김겨울입니다”라는 고정 인트로는 북튜버 김겨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멘트다. ‘책’이라는 매체를 소개하는 북튜브이기에 북튜버의 보이스는 향유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요소로서 작용하며 책과 함께 조화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2020 년 8월 17일) 겨울서점의 구독자 수는 14.9만 명으로 명실상부 북튜브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자랑하고 있다. 겨울서점은 단순 책 소개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주인장의 책장, 굿즈 리뷰, 만년필 콜렉션, 언박싱 등)을 제작하고 있어 경험하는 독서에 최적화된 모델이기도 하다. 현재 북튜버 김겨울은 책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는 중이다.

ⓒ따듯한 목소리 현준(좌상)
ⓒ겨울서점(좌하)
ⓒSASUMI김사슴(우)

  책, 북튜버, 목소리 결합 모델로 소개할 또 다른 북튜버로는 구독자 수 8.14만 명의 ‘현준’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따듯한 목소리, 현준’은 ASMR로도 기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율 감각 쾌감 반응’이라고도 불리는 ‘ASMR’은 유튜브에서 사랑받는 콘텐츠 중 하나다. 흔히 시각적 ASMR, 청각적 ASMR로 나뉘는데, 풀어 말하자면 누군가 우리의 머리카락을 빗겨줄 때 느끼는 시각적, 청각적 편안함 같은 것을 뜻한다. 현준은 책 속 구절을 그 특유의 목소리로 낭독하는데, 향유자들은 이러한 영상을 보고 들으며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출판시장의 크기 자체에 대한 한계 때문인지 패션, 뷰티 먹방 등 다른 유튜브 분야에 비하면 아직은 북튜브의 성장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북튜브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텍스트 중심의 독서 시대가 아니라는 점, 경험하는 독서의 시대가 왔다는 점이다. 책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뀐 이상 북튜버가 제공하는 모델은 앞으로 점점 새로워질 것이다. 그 속에서 출판계는 또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할 것이며 독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를 즐기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독서의 시대가 보여줄 다채로움을, 환영한다.


1  이 중제는 피에르 바야르의 동명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08)의 제목에서 따 왔다.

 

 

* 《쿨투라》 2020년 9월호(통권 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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