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유튜브는 스스로를 영화 매체에 적응시키고 있다
[9월 Theme] 유튜브는 스스로를 영화 매체에 적응시키고 있다
  • 김시균(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20.09.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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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
일반화해 말하자면,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 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제2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아우라(Aura)가 사라졌다면, 플랫폼(platform)의 기술적 무한 확장 시대에 극장 역시 아우라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극장과 영화에 어떠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이같이 정의내렸다.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

  하지만 예술이 아우라를 발하던 일회성의 시대는 저물었다. 사진과 영상 등의 복제술이 속속 대두한 데 따른 결과였다. 제의가치로서 예술이 쇠퇴하자, 일시성과 반복성을 지닌 전시가치로서 예술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영화였다. 영화는 플랫폼만 있으면 세계 어디로든 뻗어나갔다. 1895년 파리 그랑카페의 한 지하 살롱. 세계 최초로 대중을 상대로 한 유료 영사가 이뤄진 이래 영화는 세계 각 지극장을 거점으로 복제 예술로서 위세를 떨친다.

  그러나 잠시였다. 시대는 변모하고 플랫폼은 나날이 진화했다. 기술의 혁신과 생활양식 변화에 힘입어 영화 관람의 방식은 더더욱 확장돼 갔다. 20세기 중반 텔레비 전보급이 대표적이다. 텔레비전은 영화를 안방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홈비디오 시대의 개막이다. “1950년경에 텔레비전이 등장하며 영화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경쟁에 적응하도록 강요했다. 이후, 1980년경에 비디오카세트는 시청자들이 자신들이 편한 대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홈비디오의 영향력은 미국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데이비드 보드웰 『필름 히스토리』) 텔레비전의 등장에 극장의 수익은 급감했지만, 이내 회복했다. 두 플랫폼 간 경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충하는 관계로 서서히 발전한 것이다. 극장에서 내린 영화를 텔레비전 전파로 재상영하거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재판매하는 방식은 영화사들에겐 쏠쏠한 추가 수익이었다. 플랫폼이 늘수록 영화는 보다 많은 루트로 대중을 만났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가정용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됐다. 개인의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컴퓨터는 극장과 텔레비전 뒤를 잇는 영화의 세 번째 정거장이 된다. 지름 12cm 남짓 DVD에 담 긴 영화는 컴퓨터와 텔레비전 등을 오가며 자신의 복제성을 한층 더 확장해 간다. 비디오 테이프를 잇는 DVD는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벤야민) 했다. 복제품의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영화는 더더욱 개인화됐다.

상반기에 열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 영화제 최초로
유튜브와 OTT 플랫폼 등을 활용한 온라인 영화제로 개최됐다.
지난 7월 열린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플랫폼을 병행해 관객과 만났다.

  그리하여 ‘뉴 미디어 시대’가 열렸다. 이제 더는 극장만이,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놓인 가정만이 영화를 보기 위한 플랫폼의 전부가 아니었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아예 시공간적 제약마저 극복해 버렸다.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플랫폼 천국이 도래한 것이다. 그 중심엔 유튜브(YouTube)가 있었다. 유튜브는 넷플릭스를 위시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들과 나란히 관객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고 있다. 여기서 극장이 상징하던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서 물질성은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올해, 코로나19가 앞당긴 온 사회의 비대면화는 대중의 유튜브에 대한 의존성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영화 역시 그러하다. 지난 5~6월 전주국제영화제(5월 28일~ 6월 6일)는 국내 영화제 최초로 온라인 상영으로 갈음해야 했다. 전주시 객사거리 등을 중심으로 진행돼오던 오프라인 영화제가 유튜브 채널과 OTT라는 가상공간에서 관객을 만난 것이다.1

상반기에 열린 'We Are One: A Global Film Festival'는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안시 등 세계 주요 영화제
출품작들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보게 해준 행사였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We Are One: A Global Film eFstival’도 주목할 만했다.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안시 등 세계 주요 영화제 출품작들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보게 해준 행사였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열렸을 리 없었겠으나, 이 영화제는 유튜브의 가능성 하나를 입증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관람 행위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오프라인 영화제의 한계인 시공간적 제약을 얼마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기성 플랫폼들의 소멸을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지나간 역사가 보여주듯 이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기보다는 상생을 더 지향해왔던 것이다. 텔레비전이 극장을 밀어내지 않았듯이, 유튜브 또한 극장을 밀어내진 않으리라는 얘기다.2 다만 이런 예상은 해볼 수 있겠다. 신생 플랫폼들에 시장의 파이가 재배분되는 현상은 불가피하다고. 극장은 당분간 수익 감소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이제 더는 극장이 영화 관람을 위한 1번지가 아니어서다. 이미 유튜브는 IPTV와 OTT 등이 그렇듯 영화 구매 및 대여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병행 중이다. 향후 넷플릭스처럼 유튜브에서만 볼 수 있는 신작이 나올 일도 머지않아 보인다.

  요컨대 유튜브 또한 125년을 살아낸 영화 매체에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있다. 영화가 오고가는 신생 정거장의 하나로 말이다. 영화학자 보드웰의 말처럼 “디지털 미디어란 영화를 소멸시킨 것이 아닌 극장과 거실에서 떠날 수 있게” 해주었을 뿐이다. 어쩌면 영화가 자유롭게 유랑하게 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로 다가선 것인지도 모른다.


1 그러나 온라인에 의존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반응은 암담했다. 한국경쟁 섹션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 콘텐츠와 기획전 형식의 대담, 국제경쟁 부문에 출품된 감독들의 인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공개됐으나 조회수는 10~50회를 면치 못했다. 인터뷰나 대담 역시 1400여회 시청수를 기록한 '전주 톡톡; 여성감독 활약전'을 제외하면 100명대에 머물렀을 뿐이다.

2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시도처럼 앞으로의 영화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공존하는 형태로 자리잡아갈 공산이 커보인다. 극장은 극장으로서의 기능을 계속 수행할 거라는 얘기다. 8월 5일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8월 20일 기준 392만 4573명의 누적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는 사실은 극장의 지속 가능성을 분명히 시사해주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9월호(통권 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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