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음악월평] 블루스 속에 스며든 크리스마스 - 에릭 클랩튼의 Happy Xmas
[12월 음악월평] 블루스 속에 스며든 크리스마스 - 에릭 클랩튼의 Happy Xmas
  • 박성도(영화음악감독)
  • 승인 2018.12.27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3년 영국의 록그룹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여, 올해로 활동 55주년을 맞는 ‘Slow Hand’ 에릭 클랩튼이 새앨범 <Happy Xmas>를 발표했다. 가끔 방송이나 공연을 통해 크리스마스 노래를 연주한 적이 있긴 하지만, 앨범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앨범은 2016년에 발표한 <I Still Do>에 이어 24번째로 발표하는 스튜디오 앨범이다.

에릭클랩튼

55년이라는 그의 경력을 고려할 때, 이제야 크리스마스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그러한 의아함은 ‘Tears in Heaven(1992)’으로 시작된 최근 팝시장에서의 성공 이후의 에릭의 차분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물론, 그의 팝시장에서의 성공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다.) 그러나 그 성공에 앞서, 에릭은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3번에 걸쳐 헌액되고, 세계3대 기타리스트라고 일컬어 졌을 정도로 록음악 역사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저항의 상징과도 같은 록의 전설이 크리스마스 앨범을? 잘어울리지 않았을 뿐더러, 한가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엔 너무 바쁜 아버지처럼, 록의 황금기 내내 지금은 후배 뮤지션들의 교과서가 되어버린 명반들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그러셨던 아버지가, 올해 갑자기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집에 돌아오셨다. 자그마치 14곡, 1시간을 꼭 채운 크리스마스 앨범이라는 선물을 들고.

<Happy Xmas>는 대중들이 즐겨듣는 크리스마스 레퍼토리로 채워진 여느 크리스마스 앨범과는 다른 에릭 클랩튼의 정규앨범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앨범은 어느새 크리스마스 앨범의 모양새가 갖춰졌을 뿐, 데드라인을 정하지 않고 평소와 같은 정규앨범의 제작을 진행하던 프로젝트라고 한다. 때문에 전체 수록곡의 절반에 이르는 곡들이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진 블루스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각 레퍼토리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노래할 뿐, 에릭의 이전의 정규앨범의 문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가사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듣는다면, 크리스마스앨범이라 느끼기 쉽지 않다. 이를테면, 빨간 산타복을 입고 슬레이벨을 흔들며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의 정서를 만들어내려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고 할까. <Happy Xmas>는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수록한 에릭의 정규앨범이라고 말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이 크리스마스 노래들에 약간의 블루스 색채를 더해 연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블루스 기타 연주가 노래 사이사이에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첫 번째 트랙 ‘White Christmas’의 재생과 함께, 못갖춘마디를 박차고 나온 기타솔로가 12/8박자의 전형적인 블 루스 인트로를 이끌어갈 때, 이 앨범이 블루스 앨범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각 수록곡들은 전형적인 블루스에서부터 록, 팝, 레게, 컨트리, 그리고 EDM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장르는 에릭 클랩튼의 목소리와 블루스 기타연주로 인해 블루스, 더 정확하게는 ‘에릭클랩튼’이라는 장르로 흡수된다.

에릭 클랩튼은 언젠가 “블루스는 내가 항상 돌아가야 할 집과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록과 팝의 황금기를 거치며,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도, 그는 블루스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오히려 블루스는 그로 하여금 더욱 더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자 토대가 되었다. 덕분에 그는 록은 물론이고, 온갖 장르의 이종결합이 이루어지는 팝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 <Happy Xmas>에서도 그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레게버전의 ‘Silent Night’, 컨트리록의 흥겨움이 가득한 ‘It’s Christmas’, 에릭의 기타리프와 EDM비트가 디스토피아적 크리스마스를 그려낸 ‘Jingle Bell’, 유일한 에릭의 오리지널 ‘For Loveon Christmas Day’ 등 개성이 뚜렷한 곡들이 트랙리스트를 채우고 있는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백미는 다섯 번째 트랙인 ‘Christmas Tears’다. 이 곡은 블루스 뮤지션인 프레디 킹의 1961년 작품으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에릭이 1998년 12월 백악관에서 열린 모금행사에서 부르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졌다. 무엇보다도 당시 에릭이 펼쳤던 호연이 팬들 사이의 화젯거리였다. <Happy Xmas>에서도 ‘Christmas Tears’의 호연은 다시 한 번 펼쳐져 앨범에 새겨졌다. 73세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에릭의 보컬은 전성기의 힘과 소울을 그대로 내뿜고, 청량한 클린톤과 퍼즈의 거친 금속음을 넘다드는 일렉기타는 크리스마스의 블루스 대서사시라 할 만한 연주를 들려준다.

에릭은 한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만드는데 평생이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앨범제작에 들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의 주체할 수 없는 재능과 열정, 친구를 잃은 슬픔에서 시작된 오랜 기간 동안의 술과 약물중독의 나락, 질투에서 비롯된 사랑싸움의 비극적 결말, 어린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아비의 슬픔, 이어서 찾아온 새로운 음악적 전성기, 뒤늦게 깨닫게 된 가족의 소중함 등, 그가 겪었던 수많은 인생의 과정들을 통해 73세가 되어서야 갖게 된 삶에 대한 시각과 자세를 의미하는 것일게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의 사랑, 외로움, 그리움, 흥분 등 온갖 다양한 감정들은 그의 블루스 속에 자연스레 스며, 오래 간직할만한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박성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원펀치’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정규앨범 <낮과 밤>을 발표했고, 현재는 가수 이상은의 프로듀서와 영화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