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K-Art] 롱비치 아트페어에서 만난 신예작가 정소윤
[12월 K-Art] 롱비치 아트페어에서 만난 신예작가 정소윤
  • 김준철(미술 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8.12.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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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LA에 거주하는 일본인 예술 평론가 Ishi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를 통해 ‘First Friday Long Beach’(이후 FFLB로 표기)라고 하는 Art Fair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한 한국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Long Beach는 LA 인근 도시 중에 두 번째로 큰 도시이고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Town 중 하나다. 일찍이 스페인 사람들의 영향으로 스페인식의 고풍스러운 저택과 카페들이 해변가를 따라 이어져 있어 항상 많은 이들이 줄지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1920년경 시작된 석유채유시설에 이어서 항공기산업 등으로 인해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물류운송의 Hub으로 성장하였다. LA 도심에서 4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아 LA와도 일일생활권에 속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Ishi에게 소개받은 ‘FFLB’는 현재, 빅스비 놀스 어소시에이션(“BKBIA”, Bixby Knolls Business Improvement Association)이 기획하고 롱비치시가 후원하는 이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동안 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예술가와 음악가들을 초청하며 그 규모와 영향력을 더욱 넓히고 있다.

수많은 신예작가들의 작품을 출품하는 이 아트페어는 신예작가들에게는 선망의 무대인 것이다. 아마추어에서 스페셜 아티스트까지 참여할 수는 있지만 부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매번 신청서를 내고 작품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가짐으로써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상설 아트페어는 매번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상설 아트페어를 통해 작가들은 소비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현대 미술의 흐름을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해외의 많은 예술가들이 LA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LA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이전의 것을 잊고 오직 그 어느 곳에도 없던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에 빠져 있었다. 많은Avent Garde에 심취한 예술가들은 이 Long Beach에 자리를 잡았고 구술시인들의 시낭송 또한 그 어느 곳 보다 뜨겁고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는 언론에서도 ‘Rebels in Paradise’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놓기도 했었다. 또한 Pop 문화가 세상을 덮고 Jackson Pollock, Alan Davie, Mar Rothko의 추상화들이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런 영향은 민감한 예술가들이 모인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FFLB’가 열리는 현장에 도착하자 San Antonio가에서 Bixby 이르는 거리에는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퍼포먼스에 취해 술렁이고 있었다. 거리에 펼쳐진 많은 행사와 그림들을 지나
메인 갤러리인 Axpo Art Center로 들어섰다. 테니스 코트 두 개 정도 넓이의 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오픈을 앞둔 많은 작가들이 작품 설치에 분주해 보였다. 이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이곳, 전시 총괄 큐레이터인 Sumaco씨 였다. 간단한 인사 후, 그는 ‘작가들에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전시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에게 아시안 아메리칸 예술의 특징을 물었다.

“종종 사람들은 동양 예술이나 유럽미술 등으로 그 특징을 구별해내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서로에게서 또 다른 작가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애니메(anime. 일본만화)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에니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인이 아니듯이,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들의 작품은 이런 특징이 있다고 규정짓고 통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나 구별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유로운 예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그와의 짧은 담소를 마치며 유일한 한국인 화가 참가자에 대해 묻자 그는 바로 홀 중앙에 위치한 한 부츠를 가리켰다. 거기에 June Jung(한국명 정소윤) 씨가 작품을 전시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부츠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것은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동양인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12간지를 주제로 한 듯한 그림들…. 그녀의 그림은 선명함과 강렬함, 그리고 모호함과 아득함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의 색깔은 강하고 선명하다. 그러나 그 색과 색을 이어주는 작가의 감성은 그것들은 모호하게 덮고 아득하게 감춘다.

뒷모습의 그림이 전하는 말들은 앞모습보다 깊은 언어였다. 또한 그 그림을 담아놓은 액자마저도 그림의 일부인 듯, 여느 액자보다 잘 어울리는 옷처럼 느껴졌다. 또한 12간지를 주제로 한 그림들은 동양적 사상이나 일반적 의미론에 빗대어진 상징성과 또 반비례적 의미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작품들이었다. 왕관을 쓰고 있는 돼지라든가, 김정은과 돼지, 풀밭에 평화로이 앉아있는 멧돼지 그림 등은 그녀의 다양한 시선과 시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모던한 붓 처리와 그 전체를 덮는 정통 화법이 혼란
스럽지 않게 묘사되어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바쁜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환한 미소로 맞아준 그녀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Jun 어떻게 이번 행사에 유일한 한인으로 참석할 수 있었는가?
Jung 와서 보니 한인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것을 알았다. 이번에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먼 아트의 동
문 프로그램 담당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이벤트에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고, 그 이후에 정식으로 지원해서 선발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참가 부스 비용은 전액 주정부에서 지원 받았다.

Jun 언제부터 미술 재능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가?
Jung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림 그리고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후 선화예술학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입시 두 달을 앞두고 예중 입학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큰 기대 없이 치렀던 입시 후 합격하여 선화예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 그림에 입문했다고 생각한다.

Jun 가장 많이 습작하고 또 작업한 주제와 이유?
Jung 그 전까지는 항상 딱히 정해진 주제가 없이 정물, 인물화, 풍경화 습작들을 많이 그렸다. 무언가 내 목소리를 내고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전에 자유자재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믿었다. 2017년도에 들어서 머리카락과 뒷모습을 주제로 작품을 많이 했다. 인물화를 보면 항상 얼굴과 표정이 중심이 되는데, 멀리서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만 봐도 알아 볼 수 있잖은가. 그래서 뒷모습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감정과 전체적인 무드를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년에 있을 개인전을 위한 작품은 인물이 많이 등장 할 것 같다. 작품 속에 시간이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한 대상의 여러 인상이 동시에 보여지는 supernatural 한 느낌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Jun 자신의 화풍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Jung 자주 되돌아보고 공부하는 대표적인 작가들은 David Hockney, Jenny Seville 정도다. 그리고 피닉스에서 가장 즐겨 가는 Mesa Arts Center에도 현대미술 작가들을 많이 소개되는데 갈 때마다 큰 영감을 받고 돌아온다.

Jun 한국 화가 중에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작가와 이유?
Jung 한국화가 중에 좋아하는 화가라면 서상익 작가님을 뽑고 싶다. 선화에서 재학 중일 때 저를 지도해주신 선생님이시기도 하고, 선생님의 그림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작품을 하고 싶다”, “이런 화가가 되고 싶다”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거 같다. 인물과 배경의 배치가 재치 있고 강렬한 색감이 항상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작품은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해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들인 것 같다.

Jun 가장 즐겨쓰는 색상이 있을 것 같은데?
Jung 파스텔 톤의 색상을 즐겨 썼었는데, 요즘은 모노톤에 약간의 색깔이 들어있는 팔레트에 관심이 크게 가기 시작해서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을 한다. 가장 자주 쓰는 색을 꼽으라면 Permanent Rose 와 Olive Green 정도일거 같다.

Jun 이번에 출품된 작품 이야기도 간단하게 했으면 한다. 앞서 뒷모습 시리즈에 대해 말했는데, 또 눈길을 끄는 작품은 12간지를 주제로 한 그림같다. 설명을 부탁한다.
Jung 맞다. 12간지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내가 돼지띠이고 다음해(2019년)가 황금돼지의 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돼지의 상징성이라든가 이미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편안함, 안락함, 부, 권위 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타락과 욕심, 부패한 권력 등을 상징하는 이중성이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동양인이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고 다시 동양적 사상을 재해석하여 전달할 수 있다면 더 큰 파급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Jun 많은 한국의 예술을 하고 또 미국시장을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사실 여러 의미에서 미국에서의 동양 예술가들의 입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된다. 한류의 영향을 떠나서 미국에서 예술가로써 성장하고 또 인정받고 있는 비결이나 조언을 해 줄 수 있겠는가?
Jung 사실 나 역시 그 과정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들의 색감이나 분위기가 있다. 물론 나 역시 내가 한국에서 받은 교육이나 환경으로 인한 흔적이 그림에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얻은 흔적 또한 담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그 두 문화를 조화롭게 녹여내는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코리안 아메리칸 아티스트로서 주목받기 이전에 실력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먼저 얻기를 바란다.

Jun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간단히 들을 수 있겠는가?
Jung 많은 연구를 하고 작업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빠르면 돌아오는 3월 즈음 개인 전시를 할 수 있을까? 노력중이다.

우리의 대화는 기다리는 방문객을 위하여 여기에서 끝났다. 언제나 새로운 예술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들뜨게 되고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들의 내면에 쌓인 감정과 그들의 작품세계의 심층을 헤아릴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은 누구든 견딜 수 없는 자신만의 열정가지고 창작을할 것이고 그 창작이 어떻게 마무리 되어진 결과물이 되든지, 사람들에게 어떠한 비평을 받게 되든지 예상하지 않고 주어진 작업의 시간에 몰두하는 순간을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이 길이 모든 예술가가 지향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예술의 힘이 어떻게 작용 할 것인가’ 라는 실용의 문제보다는 아름답고, 슬프고, 황홀한 선율, 고혹적인 음성 등 표면적 시각, 청각들에 너무 치우친다고 생각이 든다.
이상과 현실을 넘나들기도 하고 혹은 분열되고 또는 결합되어져 나타난다. 누군가는 예술은 이상과 현실이 결혼한 것이라고 했다. 우린 이 결혼으로 우리가 아직 닿지 않은 미지영역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의 천부적인, 그리고 본능적인 능력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밤에 만난 신예화가 정소윤은 지금 롱비치 해변에서 작은 파도로 출렁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곧 더 큰 파도의 물결로 치솟아 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인 평론가 Ishi씨는 얼마 전에 “한국의 젊음이들은 힘차고 용감합니다. 예술, 예능에는 도전정신이 무모할 정도로 몰입합니다. 그 끊임없는 부딪힘 속에서 그들 나름에 독창력을 발휘하여 결국에는 그들의 것으로 소화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양문화를 100년 정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은 너무나 정형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Anime에 그렇게 몰입하는 동안 순수 미술계는 제자리 걸음 뿐이라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태평양 연안, 밤바다의 미풍은 아직도 온화하고 어둡게 펼쳐진 저 이미지 바다 끝은 유난히 밝은 색을 띠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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