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무용에세이] 8년간 추적한 천재 예술가의 일상, 다큐멘터리 미스터 가가
[12월 무용에세이] 8년간 추적한 천재 예술가의 일상, 다큐멘터리 미스터 가가
  • 임수진(무용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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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추적한 천재 예술가의 일상, 다큐멘터리 <미스터 가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예술가를 볼 때면 늘 궁금해지는 게 있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을까, 가족 관계는 어떨까,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어떤 사람일까. 현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는 한 인물을 둘러싼 이러한 궁금증들을 일부 해소시켜준다. 이러한 이유로 각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지닌 인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는 상업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영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곤 한다. 무용가를 다룬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때로는 공연보다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되고 사랑받기도 한다. 지난해 개봉한 <댄서Dancer> 역시 그 중 하나로, 세르게이 폴루닌이라는 세계적 발레리노의 천재성과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와 고독, 외로움 등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예술영화, 특히 무용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다룬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상영된 바 있다. 2012년 개봉한 <피나Pina> 역시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매혹적인 영상미로 재해석해 3D 기술로 선보여 그동안 그녀의 이름 정도만 인지하고 있던 대중에게 그녀의 예술세계를 심도있게 소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오하드 나하린 photo by Maxim Waratt 

2015년 발표된 <미스터 가가>는 이스라엘이 낳은 천재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을 무려 8년간 추적해 제작된 영화다. 각종 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어 오고 있으며, 국내에는 지난달 제2회 서울무용영화제의 폐막작으로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바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현대무용이 컨템포러리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꽃피우고 있는 오늘날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가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하드 나하린은 현재 세계적인 스타 안무가이다. 특히 그가 개발한 ‘가가Gaga’는 전 세계 무용수들이 한번쯤 배우고 싶어 하는 흥미로운 움직임 언어로, 그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토머 해이먼 감독은 <미스터 가가>를 통해 이 스타 안무가의 성장 배경, 가족, 사랑, 일, 가치관 등을 총체적으로 추적하며 재구성했다. 나하린의 인터뷰와 사진, 기록 영상 등을 토대로 재구성되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처음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그린다. 활력이 넘치는 사내아이였던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무용을 배워보기를 권했고, 오디션 차 이스라엘에 방문했던 마사 그레이엄의 눈에 띄게 된다. 뉴욕으로 떠난 그는 마사 그레이엄과 모리스 베자르와 함께 작업하며 본격적인 프로 무용수의 길을 걷는다. 22세인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섬세한 움직임은 당시 최고의 안무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그는 이 시기를 무용인생에 있어 최악의 시기로 평가했다. 그들이 제시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움직임을 수행해내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회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뉴욕의 생활이 그에게 늘 지옥만은 아니었는데, 그 곳에서 나하린은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리를 만나게 된다. 뉴욕 엘빈 에일리무용단의 스타무용수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마리에게 첫 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그는 베자르의 무용단을 그만두고 스스로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때 마리는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이 되었다. 결혼 후 마리는 엘빈에일리를 떠나 나하린과 함께 움직임을 개발하고 작품을 만들며 새로운 길을 걷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만큼 그를 사랑했지만, 곧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나하린이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의 예술감독직 제안을 수락하고 그녀와 이스라엘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바체바무용단에서 리허설 감독으로 활동하며 나하린의 곁을 지키던 마리는 그러나 낯선도시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작된 만큼 영화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나하린이 촬영한 홈비디오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고 있는, 외로움과 우울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얼마 후 암으로 사망한 그녀에게 낯선 도시에서의 스트레스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영화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천재적 안무가로 추앙받는 나하린의 곁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화려했던 뉴욕에서의 삶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어둡고 슬퍼보인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나하린과 대비되는 또다른 주변인물들은 바로 무용수들이다. 그의 천재적 재능은 그의 무용수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잣대가 돼 때로는 모질고 인정 없는 안무가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와 오랜 기간 작업했던 무용수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수많은 무용수들이 연습도중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 만큼, 최고의 안무가가 이끄는 무용단에서의 작업은 무용수들에게 녹록치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노출이 많은 의상을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가 바체바 무용단의 공연에 제재를 가하고, 그것을 계기로 이스라엘 시민들이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는 기치를 외치며 데모를 하는 장면이다. 나하린은 끝내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연을 취소하기에 이르는데, 예술적 고집만큼 타협 없는 결단이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바체바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는 많이 있지만, 영화는 그것의 강렬하고 화려한 이미지보다는 나하린의 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추며 인물에 집중한다. 8년간의 제작기간이 말해주는 만큼 최대한 사실적 구성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며, 부족한 부분은 과거에 기록된 사진이나 홈비디오 등으로 보충하는 등 나하린의 삶을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낸다. 이미 그를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은 나하린의 스타성과 천재성 외에 잘 알지 못했던 그의 일상들, 가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용단의 연습 상황, 특히 그의 연인과 무용수들과의 관계에 대해 보다 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일 것이다. 한편 나하린은 물론 이스라엘의 현대무용을 처음 접한 관객들에게 <댄서>나 <피나> 만큼의 화려한 영상미와 무용의 전율을 제시하지는 않는 이 영화는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컨템포러리 무용세계에서 이스라엘의 안무가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사랑받게 되었는지, 왜 세계 각국의 무용수들이 가가를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이스라엘로 모이는지, 그리고 이러한 천재적 예술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미스터가가>는 나하린의 예술세계 만큼 꾸밈없이 자연스럽다.

임 수 진 성균관대학교 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뉴욕대학교(NYU)에서 공연학(Performance Studies)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무용월간지 《몸》 편집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근현대구술사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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