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문화 삼류도시’ 부산을 아시아의 할리우드, ‘국제영화 도시’로
[10월 Theme] ‘문화 삼류도시’ 부산을 아시아의 할리우드, ‘국제영화 도시’로
  • 김호일(휴먼경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9.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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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부산은 늘 ‘삼류’ 도시였다. 나한테는 그랬다. 문화적으로 볼 때 그랬다. 물론 서울이 단연 일류도시였고 그 다음이 의외로 대구 혹은 광주였고 부산은 ‘삼류’도시를 못 벗어났다.”
이는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이 20년 전 내던진 말이다. 그는 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2001년 11월 필자(당시 부산일보 문화부 차장)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부산에 내려와 영화제를 둘러본 뒤 장문의 기고문을 통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이건 건성으로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음악과 미술분야에서는 특히 그랬다”며 부산을 한껏 깎아내렸지만 막판엔 국제 영화제를 통해 문화일류도시로 우뚝 섰음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 그동안 부산하면 으레 ‘항구를 낀 소비도시’나 ‘먹고 마시는 향락도시’ 정도로 인식됐다. 문화의 싹이 틀 토양은 언제나 부족했고 영화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 충무로로 향했다. 그래서일까.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조영남의 생생한 부산 방문기는 세간의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출범 25주년을 맞았다. 과연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될 수 있을까란 숱한우려 속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96년 9월. 이후 초창기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 어엿한 성년이 됐고 4반세기의 지난한 세월을 거치면서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정상, 그리고 세계 5대 영화제로 우뚝 섰다.
  그런데 왜 부산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부산이 영화를 선택한 건 ‘신의 한수’였다. 필자가 한국영화기자협회 초대 회장 시절 펴낸 저서 ‘아시아 영화의 허브 부산국제영화제’(2009년)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는 부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탄생할 뻔했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를 품고 있는 서울은 국제영화제 개최에 부산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1994년은 ‘한국방문의 해’ ‘서울 정도 600년’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은 ‘광복 50주년’ ‘영화탄생 100년’ 등 특별한 이벤트가 많았던 서울의 영화계 주변에선 이 때를 국제영화제 원년으로 살려보려는 움직임이 다각적으로 펼쳐졌다.
  ‘예향’ 광주에서도 국제영화제를 매만졌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이곳 국회의원과 영화인들은 “베니스영화제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모태로 태어났듯 광주비엔날레가 국제영화제에 좋은 생장환경이 될 것”이라며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들 도시는 하나같이 인력 예산 등을 이유로 난항을 겪으며 더 이상 진도를 나아가지 못했다.

 

  반면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부산은 달랐다. 김동호, 박광수, 이용관, 전양준, 김지석, 오석근 등 ‘영화제 개국공신 6인방’이 발벗고 뛰면서 가장 먼저 국제영화제의 출발 총성을 울렸다. 게다가 ‘YS 복심’이라는 문정수 부산 시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예산과 인력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다른 도시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후 전주 부천 제천 광주 등지에서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나고 보니 부산과 간발의 차이였다.
  BIFF가 열리자 부산은 ‘영화 해방구’로 변했다. ‘칼질’, 즉 검열을 받지 않은 영화들 이 온전히 상영되는데다 상업주의에 밀려 상영기회를 얻지 못하던 작가주의 영화들이 줄줄이 극장에 내걸린 것. 바닷바람에 한겨울 같은 수영만 야외상영장엔 두툼한 파카를 입고 모포를 뒤집어 쓴 ‘열혈팬’들이 몰려들었다. 전국의 시네필과 영화광들도 세계적 거장의 신작을 보기 위해 대거 부산을 찾아 남포동과 해운대를 접수하기도 했다.
  부산영화제는 매년 가을에 열린다. 초반에는 9월 혹은 11월을 오가다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이 생긴 2011년 이후엔 10월로 정착됐다. 혹자는 봄이나 여름 겨울도 좋은데 왜 하필 가을일까라고 궁금해 한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 메이저 영화제와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 김동호 부산국제 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은 “베를린(2월), 칸(5월), 베니스(9월) 등 세계 3대 영화제 개최시기를 고려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뿐 아니다. 부산의 가을은 영화 축제를 열기에 제격이다.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넘쳐난다. 자갈치 시장 한켠에서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고 요란하게 외치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그래서 연극배우 박정자는 부산을 찾은 뒤 “가을이 오면 부산국제영화제가 기다려진다. 인파를 뚫고 이 극장에서 저 극장으로 영화를 순례하는 부산영화제는 내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나만의 축제이기 때문”이라고 이 도시를 살갑게 끌어 안았다.

 

  BIFF 개최 이후 부산은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했다‘한. 국영화의 사령탑’인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했고,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물등급위원회도 보따리를 싸고 2013년 이곳으로 내려왔다. 오늘날 한국영화의 40%가량이 부산에서 촬영될 만큼 부산은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변신했다. 이를 본 세계 언론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영국의 BBC는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 프랑스의 르몽드도 “한국의 기적이 부산영화제를 빛내다” 등 지구촌 유력 언론들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고 부산영화제가 꽃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태풍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다이빙벨’ ‘블랙리스트’ 파문 같은 정치 사회적 위기도 함께 겪어야 했다. 이용관, 전양준 같은 개국공신들이 영화제에서 쫓겨나 잠시 핵심동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재정비후 도약을 다짐한 BIFF는 올해 출범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개막일을 10월 7일에서 21일로 연기하고 개폐막식과 야회행사를 없애는 등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BIFF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영화제를 연기하거나 취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5년이 그러했듯이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영화제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문화 삼류도시’ 부산을 ‘국제영화 도시’로 탈바꿈시켜 놓은 BIFF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그리고 또 다른 25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이래저래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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