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부산, 190번 버스 타기
[10월 Theme] 부산, 190번 버스 타기
  • 임회숙(소설가)
  • 승인 2020.09.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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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 광장 시내버스 환승센터에서 190번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가 큰 원을 그리며 유턴할 때는 버스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한다. 그러고도 기울어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초량 육거리를 지나 잠시 멈춘 버스는 마치 숨을 고르듯 그르릉거릴 것이다. 굉음을 내며 달리던 버스가 삼거리 곡각지를 돌아서면 비로소 만나게 되는 곳. 부산 사람들은 그곳을 산복도로라 부른다. 어디에나 있는 산동네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지붕마다 파란색 물탱크가 놓여 있고 실핏줄 같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이 저마다의 크기만큼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바다.

  굽이진 능선을 내 달리는 버스 창으로 바다는 쉬지 않고 달려든다. 영도와 감만동을 잇는 부산항대교의 우람한 교각 너머 오륙도가 불거져 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오륙도를 보면 “해맑은 날에는 여섯 개로 보이고, 바람 부는 날에는 다섯 개로 보이는 그래서 이름도 오륙도”란 동요를 흥얼거리게 된다1. 수평선과 맞닿은 듯 신비롭게 떠있는 오륙도를 산복도로 위에서 바라보면 가사말처럼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버스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모를 오륙도를 남겨두고 보수동 언저리로 달려간다.

  지금은 보수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은 한국전쟁 당시 태극도 도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교주와 함께 삼천 여명이 머물고 있던 그때 부산역과 국제시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들은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머물게 된 곳이 지금의 감천문화마을이다. 그들이 머물 때나 그들이 떠난 뒤에나 그곳은 기댈 곳 없고 힘겨운 이들의 안식처다. 비록 낡은 보수아파트지만 그렇게 버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보수아파트 어느 구석에선 배우 최지우가 안성기와 박중훈을 마주 보며 서 있기도 했었다. 주먹질을 멋지게 표현했던 영화는 심야의 산복도로 골목들을 부산답게 그려내기도 했다.

  190번 버스는 종종 카메라가 들어오곤 하는 대청동, 영주동, 보수동, 동대신동 산복도로를 지나 왕복 8차선의 도로를 만난다. 대신동으로 향하는 넓은 도로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운동장이었던 구덕운동장이 있고,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전철의 종점도 위치해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곳들은 새 단장을 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아담한 버스 정류소가 되어 부산의 흔적으로 또, 부산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산동네를 산복도로라 부르는 것은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 때문이다. 산의 배에 위치한 도로라는 뜻의 산복도로는 이곳이 조선시대 왜관 지역이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 일본인들의 무역과 교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왜관은 조선 후기 초량으로 옮겨져 일본인 거류지가 된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왜관 일대를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맞게 발전시킨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왜관 일대는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되어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온다. 일본인들이 불어나자 거기에 걸맞는 생활기반시설을 만들게 되는데 이때 넓은 도로가 형성되게 된다. 타 지역의 달동네가 좁은 골목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면 부산의 산동네는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되게 되면서 산복도로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시내버스가 자유롭게 오가는 넓은 도로 때문인지 부산의 산동네는 다른 지역의 산동네보다 넓고 거대하다. 산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큰 도로가 대동맥이라면 부산의 산동네 곳곳으로 뻗어 있는 골목들은 가느다란 모세혈관을 닮았다. 이들 도로는 큰 도로를 만났다가 다시 좁은 집들 사이로 숨어들며 부산의 산동네 곳곳을 이어준다. 좁은 골목과 넓은 도로 때문일까. 부산의 산복도로는 언제나 싱그럽다. 발아래 도심이 펼쳐져 있고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산복도로의 싱그러움은 쉼 없이 불어주는 바람이 있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볼을 스치고 목덜미를 지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허공으로 달아날 때의 상쾌함이란 바람을 직접 쐬어봐야 알 일이다. 버스는 굽은 도로를 따라 휘청이며 내달리고 창으로는 산복도로의 싱그러운 바람이 쉼 없이 불어 든다.

  그 맛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부산대학교병원 앞을 지나 아미 빅동구로 접어든다. 그곳의 집들은 유난히 작고 비정형적이다.

  또다시 힘을 모아 언덕을 오른 벗는 누군가의 집 앞에 멈춰 선다. 버스정류장 푯말 앞 유리문을 열면 부엌과 세면장을 겸한 현관이 나온다. 누군가 벗어둔 신발이 구겨진 채 먼지를 맞는다. 버스 창에 기대앉아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의 풍경이다. 이곳은 버스 엔진 소음에 TV 소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곳이라 했다. 도로와 집 사이에 인도가 없어 벌어지는 이곳만의 풍경은 전쟁을 피해 쫓겨 온 이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

  아미동은 일제강점기 화장장과 납골당이 있던 곳이다. 해방 후 유골함과 함께 일본인들이 떠나고 빈 납골당은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의 안식처가 된다. 죽은 자의 공간에 몸을 뉘인 피란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사람의 공간을 빌려 살게 된 우리가 고맙고 미안하다 말한다. 생존해 계신 몇몇 분의 말을 전해 들으며 부산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창밖 풍경에 눈이 간다.

  멀리 깡깡이 마을이 바라다 보이고 충무동 공동 어시장 앞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이 파도에 일렁인다. 송도 아랫길에 층층이 쌓인 집들의 낮은 지붕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송도 윗길의 너른 곡각지를 돌자 송도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190번 버스는 천마산 자락을 꺾어 돌더니 이네 큰 원을 그리며 유턴한다. 몸이 휘청인다면 버스 손잡이를 다시 한번 그러쥐면 된다.


1. 제1회 MBC 창작동요제 은상 수상곡인 <오륙도>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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