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돌아와요 부산항에
[10월 Theme] 돌아와요 부산항에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교수)
  • 승인 2020.09.2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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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노래의 시원(始原)
Ⓒ 조용필 공식홈페이지

  조용필의 노래 전체를 통틀어 ‘기원(origin)’이 되는 노래는 어떤 것일까? 어떤 노래가 조용필의 지금을 있게 했고, 또 가장 풍요로운 원류가 되어 수많은 지류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여러 곡을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이때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조용필을 대중들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한 첫 출발은 그 유명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이 노래는 황선우가 작사하고 작곡하여 1972년에 발표되었다. 가사 속에 나오는 “그리운 내 형제”는 당시 고국을 그리워했던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때 이 노래는 동포애를 강조한 맥락으로 크게 반향을 얻기도 했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밝혀놓은 바 있다. 노래의 원곡은 1970년 통영출신가수 김해일이 취입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였다고 하는데, 황선우가 지금의 모습대로 개사를 하였고, 1976년 서라벌레코드에서 이 노래를 넣어 조용필 비정규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그러다가 조용필이 이곡을 다시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로 편곡하여 1980년 정규 1집에 수록하였는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이 1980 버전이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 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노래가 불리고 유통된 여러 주변적 맥락을 배제하고 보아도, 이 노래는 호소력 있는 조용필의 목소리를 극점에서 빛나게 한 명곡이 아닐 수 없다‘동. 백섬’이나 ‘오륙도’로 ‘부산항’의 공간적 구체성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은, 마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에‘삼서학 도’, ‘노적봉’, ‘유달산’ 등을 목포 주위 배경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빼닮았다. 그러고 보니 어떤 지역을 다루는 노래는 그 구체적 지명을 적극 소환하여 호환할 수 없는 경험적 기억을 각인하게 마련이었을 것이다. 현인의 <서울 야곡>에서도‘충 무로’, ‘보신각’ 등 서울 밤거리를 쏘다닌 이들의 기억을 자극하는 장소들이 나오고,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에서도 대동강을 익숙하게 환기하는 ‘을밀대’, ‘부벽루’ 등이 반드시 호명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부산항’을 그렇게 동백섬의 봄과 함께 떠올린다 .

  ‘동백섬’에 꽃이 피고 봄이 왔다. 생명력으로 가득한 시절이지만,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형제 떠난 부산항”에서 슬피 울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부산항’은 연락선을 타고 떠나 이제는 목메어 불러보아도 대답 없는 '형제’를 환기하는 부재의 장소이다. 그렇게 떠난 곳으로 다시 귀환해달라는 호소인“돌 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는 이 노래의 결구(結句)이자, 부재를 극복하는 방식으로‘그 리움’을 택함으로써 이 노래를 보편적인 연가(戀歌)로 그 소통의 범주를 확장시킨 명구(名句)이기도 하다. 2절로 건너가면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 날의 꿈”을 간직한 이의 마음을“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 이 화답하고 있다. “돌아와요”를 “돌아왔다”로 바꿈으로써 원망(願望)이 불완전성으로 귀환의 완결형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부산항을 떠나 돌아오지 않던 형제를 그리다가 결국 그들이 돌아왔다는 귀환 서사를 배치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모든 이들의 마음을 위안해준 시대의 노래가 된 것이다. 어림잡아 셈해보면 이미 반세기 전에 만들어져 조용필 노래의 시원(始原)이 되어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파란 많았던 한국 근대사의 한 대목을 절절하게 반영하면서도, 조용필 허스키 보이스의 정점을 예술적으로 각인했던 일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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