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10] 운명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10] 운명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
  • 이무영(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 승인 2020.10.22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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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 처한 나쁜 상황

  영화 중반부가 문을 열기도 전에 주인공은 대체적으로 이미 커다란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주인공 개인이나 그가 속한 공동체를 크게 위협한다. 그 위협은 정신적일 수도, 육체적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타인의 사랑이나 존경심을 잃을수도 있다. 육신이 망가지거나 파산할 수도 있다. 이처럼 주인공이 처한 나쁜 상황은 자동으로 서스펜스를 창출해낸다.

 만약 그가 이런 상황을 초반에해결치 못한 채 헤맨다면 곤란함은 심화되고, 따라서 서스펜스의 부피도 증가한다.<마더>의 엄마는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도준은 이미 진범이라 자백하는조서에 도장을 찍었고, 현장검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어떻게 아들의 무죄를 입증할 건인가? 이 악조건 가운데 엄마가 아들의 무죄를 밝히는건 불가능해 보인다. 이 난관이 그녀에겐 매우 나쁜상황이지만, 영화 플롯으로 볼 때는 좋은 상황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수술 후 고통 가운데 깨어난다. 그리고 장기밀매조직에게 전 재산 1천만 원과 콩팥을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악이다. 그는 이미 직장도 잃었다. 누나를 위해 신장이식수술을 해줄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근데 야속하게도 류는 며칠 후 병원에서 누나의 몸에 맞는 콩팥을 확보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수술을 서둘러보겠다고 밀매조직을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누나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밀양>의 신애는 유괴범의 협박전화를 받고 놈이 시키는 대로 돈을 준비해 약속장소에 갖다 놓는다. 그래도 유괴범은 아들 준을 돌려주지 않은 채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자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라도 경찰에 알려야 하나?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하나?이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별 뾰족한 수가 없어도 이런 처지에 놓인 주인공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문제 앞에서 가만히 있는 건 주인공의 역할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제 주인공은 어떤 계획을 갖고 문제를 풀어나가려 애써야만 한다. 그가 세우는 계획은 치밀하게 의도적일 수도, 아니면 본능적일 수도 있다. 류는 연인인 영미의 조언에 따라 유괴를 계획한다. 신애는 유괴범에게 줄 돈을 찾아 약속한 장소에 갖다 놓는다. 엄마는 유치장으로 아들을 찾아가 왜 조서에 서명했느냐고 추궁한다. 류와 신애의 대응은 나름 치밀한 계획의 산물이고, 엄마가 유치장에서 아들에게 하는 말은 다분히 본능적인 대응이다.


  새롭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

  이미 악조건 하에 싸우는 주인공을 좌절케 하는 또 다른 문제, 또는 문제들로 상황은 더욱더 꼬이게 된다. 중첩되는 이런 문제는 관객이 전혀 기대치 못했을 때 발생하는 게 효과적으로 주로 실수나 오해등으로 비롯된다. 당연히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도 서스펜스의 강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내러티브에 적용한 훌륭한 케이스다. 장기밀매조직에 속아 누나의 신장이식 수술대금을 날린 류는 병원으로부터 신장기증자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이제 류는 무조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영미의 뜻대로 동진의 딸 유선을 납치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류의 누나는 유선과 돈을 돌려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류가 자신의 도덕관마저 버린 채 감행했던 유괴가 결과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게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류는 누나의 시신을 싣고 고향 냇가로 장사지내러 간다. 누나를 돌무덤에 묻는 사이 사고로 유선이 물에 빠지는데, 청각장애인인 류는 그녀가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유선은 익사하고, 그녀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류뿐만 아니라 영미와 동진의 삶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리는 비극을 낳고 만다. <마더>에서 엄마는 처음엔 아들 도준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말이다. 아들에 대한 맹신은 엄마로 하여금 그의 친구 진태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녀는 진태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에게 모욕을 당하며 돈마저 빼앗긴다.

  <밀양>의 신애는 뜻밖에도 준의 장례식에서 전 시어머니로부터 ‘눈물도 없는 무정한 인간’이라고 면박을 당한다. 손자보다 아들을 잃은 고통의 무게가 훨씬 큰데도 그녀는 며느리의 아픔은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 울분만 드러낸다. 허망한 아이러니다. 인간 대부분이 이 정도 수준이다. 중간점(midpoint) 앞서 거론한 것처럼 중반부가 영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작가는 플롯을 다 짜고 나서 중간점을 설정, 전과 후로 나눠 재진단해 봐야 한다. 마라토너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반환점을 돌듯 말이다. 물론 이 중간점이 정확히 전체 러닝타임의 한가운데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주인공의 목표가 변하든, 아니면 전개되든 이야기의 흐름이 완전히 새롭게 방향을 틀든, 어찌 됐든 영화는 중간점에서 획기적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중간점은 죽은 유선을 내려다 보는 류의 얼굴에서 시간 경과가 이뤄진 후, 동진이 똑같이 유선의 시신을 내려다보는데서 이뤄진다.

  드라마적으로 이 지점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공격과 수비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딸을 살리기 위해 돈까지 내줬는데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면 아버지 동진의 심정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다. 이제 동진의 목표는 자동으로 딸을 살리는 것으로부터 그녀의 죽음에 대한 처절한 복수로 바뀐다. 반대로 류는 향후 다가올 동진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마더>에서 엄마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진태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나선다. 이전까지 비굴할 정도로 변호사와 형사들에게 의존했던 그녀는 이 시점을 계기로 변호사를 해고하고 스스로 단서를 찾기 위해 죽은 아정의 휴대폰 확보에 나선다. <밀양>의 중간점은 기도회에서 신애가 오열하며 목사의 안수기도를 받는 장면이다. 물론 이 씬이 신애의 회심을 정확히 보여주진 않으나 그 다음 상황에서 관객은 그녀가 신을 받아들였음을 알게 된다.

  신이 없다며, 절대 믿지 않겠다던 그녀의 세계관에 대변혁이 일어나는 순간, 그녀는 잠시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영화 중간 즈음에 드라마적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잠시 그럴뿐이다. 왜냐면 영화는 이 지점부터 또 다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끝나기 때문이다. 신애는 신앙에 귀의함으로 잠시 평안함을 느낀다. 물론 홀로 있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성도들과 함께 할 때만큼은 행복한 듯 보인다. 관객은 부디 불행했던 그녀의 삶이 평탄하길 기대하며 계속 지켜본다. 이처럼 영화 중간점에서 드라마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듯 보이는 현상을 ‘허구적 문제해결’이라고 한다. 영화 <세븐>(데이빗 핀처 감독, 1995)은 ‘허구적 문제해결’의 전형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중간 즈음 형사 밀스와 소머셋이 그토록 잡고자 했던 범인 존 도가 피범벅이 된 채로 자수한다. 이 씬에서 두 형사의 드라마적 목표가 달성된 듯 보인다. 어쨌든 범인이 수중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돼 나간다. 존 도는 자신이 한 명을 더 살해했고, 두 형사를 그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드라마적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존 도가 주장하는 여섯 번째 피살자가 그가 이루려는 ‘일곱 살인’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두 형사가 존 도와 시신이 있다는 장소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관객은 누가 연쇄살인범이며, 왜 흉측한 살인행각을 벌이는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검거될지 등을 궁금해 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간점에서 문제해결이 이루어진 듯 보이나 관객은 왠지 찜찜하다. 놈이 자수할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란 사실도 짐작한다. 그러니 정작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 더 큰 문제가 대두된 셈이 된다. 이제 관객은 완전히 다른 목마름을 안은 채 숨 가쁘게 진행되는 영화 후반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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