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삶의 다양한 경험의 지층들을 융합하여 크래커 안에서 표현하는 작가 RYAN CHO
[INTERVIEW] 삶의 다양한 경험의 지층들을 융합하여 크래커 안에서 표현하는 작가 RYAN CHO
  • 김준철(시인·미술평론가, 미주특파원)
  • 승인 2020.10.2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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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더욱더 힘든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 사회,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 역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자가 사는 미국은 더욱 그런상황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각종 격리조치로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폭동과 소요로 혼돈과 불안의 시간 속을 보내고 있는데, 설상가상 거대한 산불로 서부 거의 전체가 붉은 연기로 가득 차 숨쉬기조차 어려운 현실 위에 서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은 채 동시에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지난 쿨투라 3월호에서 ‘LA ART SHOW’를 다루며 소개한 바 있는 라이언 조 작가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갈색 세상 밖으로 길을 나섰다.

  그는 도자기로 성형한 크래커에 한국과 미국에서의 삶이 농축된 경험을 녹여내어 팝아트나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인들의 모습을 그 위에 얹어내는 동서양의 접목작업 형태로 많은 관심을 끄는 작가이다.

  안부를 전하다 어느 때보다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궁금함에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아담한 개인 작업실은 스튜디오 형태로 되어 있었다. 높은 천장은 작업실을 훨씬 넓어 보이게 하는 시각효과를 주었고, 양쪽 벽면에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그가 전념하고 있는 크래커 모양의 작품과 준비 중인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동양화와 서양회화가 결합한 형태의 작품들도 보였다.

  라이언 조 작가와 1층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준철(이하 김) 바쁘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렇게 선뜻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언 조(이하 조) 아닙니다. 마침 바쁜 작업이 마무리되어 정리하던 중이라 그리 바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김 저희가 만났던 2월 ‘LA ART SHOW’ 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 먼저 알고 싶습니다. 사실 그때도 코로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때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활동이 어려운 시기에 매우 바쁘셨다니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그러네요. 반년 정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게 변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바쁘게 보낸 이유를 설명해 드리려면 한 분과의 인연을 말씀드려야 하는데요, 김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LA ART SHOW에 함께 참여했던 김수연 작가입니다.

  김 네, 실을 이용한 독특한 회화작업을 하는 분이시죠. 그리고 김병지 선수의 아내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분과 2년 반 전에 제가 한국에서 아트셀시 갤러리(Gallery Artcelsi) 초대전을 했었습니다. 그때 김수연 작가가 제 작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초대전에 방문하신 게 첫 인연이 되었고 또 2월 LA ART SHOW까지 연결이 되었습니다.

  김 당시 《쿨투라》 인터뷰를 제가 했고, 행사장에 김병지 선수가 함께 와서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던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네. 바로 김병지 선수가 상당히 아이디어도 많고 적극적인 성격이더라고요. 제 작품을 접한 김 선수가 매년 축구연맹 등에서 선수들에게 시상식을 하는데, 트로피보다 수상자의 기념적인 모습을 담은 제 작품을 전달하는 것이 받는 이도 주는 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김 정말 그러네요. 단순한 트로피보다 자신의 얼굴이 담긴 선생님 작품을 받는다면 소장 가치도 있겠는데요.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에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며당시 선수단의 얼굴을 담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 대단하네요. 온 국민의 마음과 열망이 집결되었던 시기여서 그 어느 때보다 그 뜨거움과 감격을 잊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LA ART SHOW 이후 제안을 받고 내내 작업을 하시게 되었군요. 그럼 총 몇 점을 작업하신 건가요?

  히딩크 감독을 포함해서 코칭스텝과 선수까지 모두 27명을 각 2세트로 제안받았습니다.

  김 와! 그럼 총 54점을 만드신 거네요. 정말 쉽지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단순하게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크래커 모양을 뜨고 건조하고 구워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코팅을 하고, 아크릴판이 아닌 아크릴 박스를 제작해 넣고, 크리스털을 붙이는 작업까지 하는 것이라 일반 작업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다 보니 한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김 총 제작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나요?

  3개월의 기한을 약속드렸고 겨우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을 맞으며 여타 일상적인 행사나 약속이 없어졌기에 오롯이 작업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이죠.

  김 이렇게 나열된 모습만으로도 2002년의 열기와 함성이 전해지는 것 같은데 이 작품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면 그 감동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작품 한 작품 만들면서 그 당시의 감동들로 내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김 이제 전체 완성된 작품들이 한국으로 가게 될텐데 한국에 도착한 작품들은 어떻게 일반인들이 만나보게 될까요?

   제가 알기로 일단 한 세트는 한국 축구연맹에 전시하고, 다른 한 세트는 김병지 선수가 진행하는Youtube 방송 ‘김병지 TV’의 Background로 사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진행에 따라 개인 소장을 위해 한 세트의 추가 주문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김 그럼 아직 고생이 끝나신 게 아니군요. 또 다른 운동팀이나 혹은 다른 단체에서도 작업 문의가 들어올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언제부터 선생님의 크래커 시리즈 작품이 시작된 거죠?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2017년 1월 LA ART SHOW를 준비하면서 세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첫째, 30여 년의 한국 생활과 20여 년의 미국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가. 그리고 둘째, 이 LA ART SHOW의 정서와 함께 할 수 있는 대중적 아이템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제 전공이 도예이기에 오랜 시간 회화작업을 하면서 가졌던 도자기에 대한 갈증과 고민이 모티브가 되어서 2016년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 정말 딱 맞는 고민과 질문이고, 거기에 딱 어울리는 답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크래커를 굽는 것과도자기를 굽는다는 의미의 결합도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는 것 같습니다.

  네. 과자를 대할 때 사람들은 찡그리거나 화내지 않습니다. 그 즐거운 기억과 대상을 접목하면서 아트는 어렵고 멀고 특수계층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과자를 먹듯 가볍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김 그렇군요. 그래서 선생님의 초기 작품들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인식하고 다가올 수 있는 마이클 잭슨이나 마릴린 먼로, 밥 말리 등의 특화된 모습이 올려진 거네요.

  그렇습니다. 거기에 또 유약과 유리, 먹 등의 재료를 이용해서 추상적 모습도 혼합한 것이고요.

  김 그럼 크래커 작품을 처음 선보였던 2017년 LA ART SHOW에서는 반응이 어땠나요?

  아트 쇼 개막 첫날에 모든 작품이 SOLD OUT되었습니다. 그 일로 여러 매체에서 관심을 가져주셨고 또 많은 분이 작품을 주문해주셨죠. 그것이 몰입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를 계기로 한국에서 초대전도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크래커 작업의 변화나 발전도 있었겠군요.

  사실 1년에 3~4개의 초대전과 몇몇 단체 및 그룹 전, 거기에 정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ART FAIR까지 진행하면서 시즌마다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입니다.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여러 재료나 표현 방법을 고민하여 시도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2019년에 처음으로 LA ART SHOW에서 크리스털이 첨가된 작업을 선보였어요. 이때 또 아크릴 프레임 판을 9X9에서 13X13으로 넓혀서 24점을 출품했는데 거의 다 팔리고 현재 2점 남아있습니다.

  김 제가 알기에 미국 연예인도 작품을 주문했었다고 들었는데요?

  아! 네. 얼마 전에 가수이자 모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DON BENJAMIN’ 이 자신의 얼굴을 넣은 작품 제작을 의뢰해 왔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찾아가는 날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페인팅에도 상당한 수준인 것을 알게 되었고, 제 다른 작품도 보면서 자신과의 콜라보 작업을 제안했습니다. 각자의 작품을 따로 선보이고 또 제 크래커를 배경으로 자신의 회화를 그 위에 올리는 공동 작업을 해 보자고 한 거죠. 현재 여러모로 작업하기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준비중입니다.

 김 선생님께서 작업 중인 크래커 시리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 안에 어떤 가치를 담아내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가치라고 하는 것을 제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평면적 작업과 도자기의 입체적 작업의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양적 도자기와 서양적 팝아트의 융합이고 또 흙이란 재료와 크래커라는 이미지의 융합이기도 합니다. 이 융합이라는 화두는 사실 지금까지 제가 해 온 모든 작품 안에서 제가 시도해 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김 저 역시 처음 선생님 작품을 접하면서 단순한 캔버스 위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숙한 이미지가 새로운 재료와 만나서 어우러지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짓게 되고, 대상에 관한 거리감보다는 편하고 익숙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크래커 시리즈 작품들은 다른 제목을 안붙이시고 ‘융합’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선보이고 계신 거군요. 그럼 앞으로의 계획이나 크래커 작업의 변화를 준비하고 계신 것은 없나요?

  사실 주위에서 사이즈나 재료에 대한 문의와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더 크게 만들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도자기의 특성상 일반 크기나 두께 이상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또 제 작품의 개수를 나열한다면 그 크기는 사실 무한대로 커지니까요. 가능한 제 개인 창작에서는 현재의 표현 방식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김 단순히 크기나 재료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크래커의 진열적 변화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올 말이나 내년 초부터는 부수고 붙이고 쌓는 전방위적 표현을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에게 이민자로서의 어려움이나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는 너무나 뻔한 질문을했다. 거기에 대해 그는“면목이 없으며 겸연쩍다.”는 대답을 했다. 누구나 이민자로서의 삶 속에 힘듦과 아픔이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새로운 땅에서는 고통이나 즐거움 역시 자신 안에 지층처럼 쌓여서 작업의 재료로 표현될 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상당히 긍정적이며 그것은 다음 세대에 더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로의 삶만이 허기지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 어느 삶이든 그 안에서 이겨내고 버티고 성공한다면 IT, 기계문명 속에서 FINE ART는 그 어느 분야보다 인간이 직접 해야만 하는 분야로써 경제적, 정서적 풍요를 희망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쿨투라》를 통해 작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자칫 자랑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99% 운이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누구나 삶 속에서 다 열심히 산다고 믿는다. 단지 언제, 어떤 기회가 어떻게 오느냐는 것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안에 내재 된 많은 경험의 지층들이 어떤 모습으로 크래커 위에 올려질지 사뭇 기대된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무엇 하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호흡과 생각을 지키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RYON CHO.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그의 시선을 통해 어떤 결을 표현되어질지 그의 행보를 응원하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작가의 생각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나는 도자기 전공자다. 그래서 그런지 내 작품에 대해 함부로 잘난 체를 하거나 과시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 작업 중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마 앞에서 고사나 기원을 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온의 불 속이나 유약의 반응이나 모든 것이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변수를 예측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말 그대로 예측이고 우연의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또 우리는 원하고 바라며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추가로 그의 여러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고 싶다면 그의 웹사이트 www.artryancho.com을 방문 해봐도 좋을 것 같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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