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윤제균 감독 “제가 부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제 영화를 보면 아실 거예요”
[INTERVIEW] 윤제균 감독 “제가 부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제 영화를 보면 아실 거예요”
  • 김구철(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20.10.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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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부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제 영화를 보면 아실 거예요.”

  부산 출신 윤제균 감독은 부산의 정서가 자신의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연출작 중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성공을 거둔 대표작 두 편의 제목을 부산의 지명(해운대)과 명소(국제시장)로 정한 것도 그의 부산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감독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연속이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사직고)를 마치고 대학(고려대 경제학과)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온 윤 감독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LG애드 전략기획팀에서 기획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짜던 그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로 1개월 무급휴직을 하게 됐고, 그때 방에 틀어박혀 쓴 영화 <신혼여행> 시나리오가 공모전 대상에 당선됐다. 이후 2001년 감독 데뷔작 <두사부일체>로 350만 명의 관객을 모은 그는 두 번째 작품 <색즉시공>(2002)도 4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 <낭만자객>(2003)이 흥행에 참패했다.

  첫 실패를 맛본 그는 웃음과 감동을 버무린 영화<1번가의 기적>(2007)으로 다시 일어섰고, 자신이 지닌 정서를 고스란히 쏟아부은 영화 <해운대>(2009·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관객 수 1132만4958명)로 ‘1000만 클럽’에 가입했다. 또 후속작 <국제시장>(2014·1426만3945명)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최초 2연속 1000만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해운대>는 100만 인파가 모인 부산 해운대에 쓰나미가 덮친다는 설정으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풀어냈다. 또 <국제시장>은 6·25전쟁 때 피란을 위해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서 미국 상선 메레디스 빅토리호에 오르다 아버지, 여동생과 헤어진 한 남자가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머니와 두 동생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지난 15일 강남구 논현동 JK필름 사옥에서 윤 감독을 만났다. 그는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2016년 CJ ENM에 회사 지분 51%를 넘기고, 번듯한 사옥을 마련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부침을 겪은 경험이 작품에 녹아있는 것 같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100%죠. 부산 사람들만의 감정표현법이 무의식적으로 제 작품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부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투박한 감정표현을 들 수 있어요. 세련되지 못해요. 싫은 티는 잘 내지만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표현하지 않아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참 좋으셨어요. 그런데도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사랑한다’고 말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요(웃음). 하지만 부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못하지 않아요. 그걸 밖으로 드러내는 게 쑥스러울 뿐이죠. 제 영화에서 나타나는 감정표현 방식이 부산 사람들과 닮아있어요. <국제시장>에서도 덕수(황정민)가 영자(김윤진)에게 사랑 고백할 때 굉장히 어설프잖아요. 부산은 제게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예요. 죽으면 부산에 묻히고 싶어요.”

  데뷔 초기부터 흥행감독으로 부상했지만 일부 평단으로부터 ‘흥행코드만 잘 잡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그는 <해운대>와 <국제시장>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

“두 작품 모두 초반에 제목 때문에 고초를 겪었어요. 투자자들이 <해운대> 시나리오를 보고 ‘시나리오는 좋은데 제목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당시 지명을 제목을 쓴 영화가 별로 없어서 어색했을 거예요. 그래도 저는 제목을 바꿀 생각이 없었어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고, 한국영화가 해외로 뻗어 나가던 시가라서 제 고향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국제시장>은 스릴러물이냐고 묻더라고요. 무슨 동남아 암시장 이야기인 줄 알았나 봐요(웃음). 국제시장은 6·25전쟁 이후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서 삶의 터전을 이룬 곳이라 많은 의미를 함축한 영화제목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두 작품 모두 제목을 바꾸지 않은 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윤 감독의 부산 사랑은 <해운대>에서 주연 배우들의 사투리 대사에 집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만식역의 배우 설경구는 모든 대사의 억양 높낮이를 기호로 표시해 악보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두 줄이 넘으면 불안했고, 술 취한 채 8줄의 대사를 해야할 때는 전날부터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못 잤다고 엄살을 부렸을 정도다.

“해운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만식과 연희(하지원)의 대사에서 지역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려 했어요. 사투리가 제대로 안 나오면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하기 힘들어요. 저도 감정이입이 안 되고요. 당시 설경구와 연희 역의 하지원이 ‘부산사투리가 영어보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해운대>는 비주얼을 앞세운 재난영화가 아니라 수많은 갈등이 서사 안에서 펼쳐지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해운대> 이후 5년 동안 오롯이 준비해 내놓은 <국제시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는 윤 감독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제 이름이다. 또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덕수의 버팀목이 돼준 친구 달구(오달수) 캐릭터는 윤 감독의 중학교 동창으로, 윤 감독과 함께 JK필름을 이끌고 있는 길영민 대표를 모델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부모님 이름을 썼는데 촬영을 하며 ‘잘 찍어야 한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이제 네가 가장이니 어머니와 여동생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에 답을 하려고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는 황정민의 마지막 대사를 직접 썼어요. 또 영민이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일들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가족을 지켜낸 덕수 옆에 든든한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작가에게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달라고 얘기했어요.”

  불쑥 실패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낭만자객>은 윤 감독 자신이 재밌는 영화가 완성됐다고 자부했지만 평단의 혹평과 함께 흥행에도 실패하며 영화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또 자신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석유시추선 대원들과 심해 괴생명체의 대결을 그린 국내 최초 3D 블록버스터 영화 <7광구>를 제작해 쓴맛을 봤다. 100억대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영화는 ‘드라마 구조가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이런 실패가 그의 영화인생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낭만자객>은 영화평론가나 기자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혹평을 들었어요. 관련 기사에 악플도 많이 달려서 6개월 동안 인터넷을 안 봤어요, ‘나름 착하게 살아온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며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제 나이가 서른다섯이었어요. 나이 들어서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 그런 일을 겪게 된게 감사하죠. 관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항상 그걸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요. 어떻게 보면 <낭만자객>이 <해운대>나 <국제시장>보다 제 영화인생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제게 교훈과 배움의 기회를 준 영화예요. <7광구> 실패 때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깨달았어요. 선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두르며 영화 외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어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실패 요인이죠. <7광구> 이후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완성도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그가 또 한번 선도자로 나서려 했던 한국형 SF물 <귀환>은 황정민, 김혜수 등 쟁쟁한 배우들을 주연으로 낙점해놓고도 2018년 말에 제작을 무기한 연기했다. 당시 JK필름 측은 “한국 관객들이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이라 영화의 본질인 시나리오에 더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에게 “<7광구> 때가 떠올라서 <귀환>을 접은거냐”고 묻자 바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7광구>의 실패가 없었다면 <귀환> 제작을 강행했을 거예요. 시나리오가 사전에 유출돼서 촬영을 연기했다는 루머가 돌고 있지만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귀환>은 100년 뒤에 지구 바깥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요. 밖에서 제 작품과 유사하다고 도는 시나리오와는 전혀 달라요. 처음에는 소문을 듣고 웃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사실로 굳어지더라고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라고 말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기자회견을 열 수도 없잖아요. 오늘 다 얘기해서 후련하네요(웃음). 시나리오 작업만 3년 가까이 했지만 마음에 안 찼어요.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가 나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물론 <국제시장> 다음 작품이니 투자자나 배우들이 저를 믿고 의기투합을 했겠죠. 근데 제 자신에게 ‘완성도 100%의 작품을 만들 수 있겠냐’고 질문을 던져보니 자신이 없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자신이 있었지만 드라마 부분에 대한 확신이 안 섰어요. 작품의 틀이 잡힌 상태에서 투자심사를 마치고 제작을 결정하기 하루 전날 엎었어요.”

  투자가 결정됐고, 배우들과도 교감을 나눈 상황에서 촬영을 접는 결정은 쉽지 않다. 기획개발비용도 많이 들어간 상황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을 거다.

"딱 한가지 생각만 했어요. 지금 포기하면 제 주변 사람들이 실망하겠지만 영화가 완성된 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요. 지금 욕을 먹고 비판을 받아도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죠. 사실 저는 시나리오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제 진심을 담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근데 일반인 모니터링에서 반응이 밋밋하게 나왔어요. 사람들이 100년 후 다른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정이입을 못하더라고요. 그걸 인정하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건 교만이죠. 작품에 대해 교만해지면 한방에 훅 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접은 거예요. 그동안 10억 원 넘게 썼지만 다 떠안고 포기했어요."

  “‘제작연기’라고 했는데, 진짜 다시 할 거냐”라는 질문에 그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올 여름에 개봉하려고 했던 <영웅>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을 미루고있다. 이 영화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순국한 안중근 의사 마지막 1년을 그렸다. 윤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펼쳤을지 궁금하다.

“<댄싱퀸>(2012) 제작할 때부터 이 영화를 생각했어요. <국제시장> 마치고 어머니 병 수발 하느라손을 못 대고 있었어요. 2017년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영화를 준비하려고 보니 <귀환>과 <영웅> 두 개의 아이템이 있더라고요. 새롭게 도전하는 <귀환>을 먼저 하기로 했다가 접으며 <영웅>에 집중했어요. 정성화 씨가 출연하는 뮤지컬 <영웅>을 세 번 보고, 정성화 씨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어요. 사실 저는 뮤지컬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요. 감정몰입을 해야 할 지점에서 노래가 나오면 어색하거든요. 그런 느낌을 없애는 게 한국형 뮤지컬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에 이어 노래가 나올 때도 관객이 감정을 그대로 이어가게 하는 게 제 연출 포인트예요.”

  총제작비 170억 원이 투입된 영화를 대목에 맞춰 내놓지 못하는 초조함이 클 것 같다 .

“전혀 초조하지 않아요. 영화도 생명체라 타고난 팔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기운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이니 좋은 시기에 자연스럽게 개봉하게 될 거예요.”

  윤 감독은 인터뷰 도중 ‘기운’이란 말을 자주 썼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 벽에 걸린 액자에는 ‘운칠기삼’이라고 쓰여있다. ‘작품을 할 때 운이 7 기술적인 부분이 3이라는 소리입니다. 그 운이라는 게 우연히 주어진 행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기운. 에너지를 말하는 것입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운칠기삼. 제 영화 철학이에요. 좋은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자자든 배우든 스태프든 누구 하나 기운이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영화가 안돼요. 그래서 배우 캐스팅을 할 때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뽑으려고 해요. 살다보면 기운이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좋은 기운을 유지하려면 긍정적으로 살며 많이 웃고, 내가 힘들 때도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요.”

  윤 감독은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아무 끈 없이 영화판에 들어가 ‘쌈마이’에서 ‘거장’으로 우뚝 선그에게 20년을 달려온 소감과 앞으로 펼칠 영화 세계에 대해 물었다.

“그냥 열심히 살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했고, 약속도 잘 지켜왔어요. <해운대> 전까지10년 동안은 욕도 많이 먹으며 끊임없이 자책했어요. 아직 올라갈 길이 많이 남아있어요. 계속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죠. 20년 동안 죽지 않고 버티며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해요.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도와주셨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 영화를 좋아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해요. 제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웃사이더로 영화판에 들어와서 ‘영화도 모르는 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낙담한 적도 있지만 꾸준히 배우려고 했어요. 저는 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를 잘 알아요.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영화를 잘 만들어요. 두 시간 동안 꿈과 행복,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제 사명인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해외 영화계에서도 인정받고 싶지만 그건 봉준호 감독님이 계시니(웃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제 일을 계속 해야죠. 그게 제 꿈이에요.”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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