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언택트 시대의 시선 권력
[미디어 비평] 언택트 시대의 시선 권력
  • 김세연(미디어평론가)
  • 승인 2020.10.23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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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언택트 시대의 개막은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 혼란의 풍경을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는 학교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학교 시설의 폐쇄는 온라인 수업에 무방비 상태인 교수자와 학생을 난관으로 몰아넣었다. 준비 없이 맞이한 비대면 체제에 관계자들 모두 진땀을 흘리는 채로 반년이 지나갔다. 온라인 강의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실시간 강의’와 미리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는 ‘녹화 강의’다. 실시간 강의는 참여자들끼리의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학습자의 규칙적인 생활을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통신 상태에 따라 버퍼링이나 잡음이 생기는 문제가 존재한다. 반면 녹화 강의는 시간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게 큰 장점이다. 학생들은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필요하면 중간에 멈추거나 다시보기를 할 수도 있다. 다만 강제성이 부족해 밀린 강의를 한 번에 몰아서 듣게 된다는 점은 아쉽다.

  주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쪽은 ‘실시간 강의’다. 프로그램 조작에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의 실수가 생중계 되어 지난 상반기 인터넷이 떠들썩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수강생들을 대기실에 둔 채 혼자 강의하셨다는 교수님, 방송 중에 난입해 ‘당신 그거 언제 끝나느냐’고 물었다는 사모님,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거나 마이크에 대고 교수 뒷담화를 한 학생의 모습은 코로나 시대의 진풍경을 연출했다. 온라인 강의에 꽤 익숙해진 지금도 학교 커뮤니티에는 수업을 둘러싼 실수담이 꾸준히 올라온다. 예를 들면 “카메라 켜진 줄 모르고 코 팠는데 지금  휴학 신청 가능한가요?” 라든가…….

  흥미로운 것은 ‘캠(cam)’과 관련된 부분이다. 보통 실시간 강의에서는 학습자료(PPT)와 교수자 화면이 중심이 되고, 필요에 따라 학생 얼굴도 노출할 수 있다. 발표·토론을 하거나 수강생들의 표정이 궁금할 때 교수자는 카메라를 켤 것을 요구한다. 이는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도 대면 강의 때와 비슷한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인데, 화상회의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인 소통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취지다. 교수자는 수강생의 반응을 살피면서 설명을 보충하거나 생략할 부분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수업 중에 학생들이 딴짓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실제로 꺼진 카메라 뒤에서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학생이 많다고 하니, 어느 정도 효과는 보장된 셈이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자기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잦은 논란거리가 된다. 카메라가 켜져 있으면 마냥 편한 상태로 수업을 들을 수 없을뿐더러, 뜻하지 않게 개인공간이 노출되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하고 쾌적한 공간을 가진 사람은 덜 하겠지만, 가족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거실을 공개해야 하는 경우라면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때문에 대학생들에게는 ‘캠을 켜는지’ 여부가 수강 신청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원치 않는 형태의 수업을 듣게 되어 ‘왜 이렇게 교수들은 캠에 집착하느냐’며 툴툴거리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캠을 켜는 문제에 조금 미묘한 부분이 작동하는 듯하다. 최근에 들은 일화를 소개하자면, 모 대학에서 온라인 강의 중 한 남학생이 여자 교수의 외모를 칭찬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전체공개 채팅으로 “교수님 너무 예쁘게 생겼습니다. 메이크업은 되게 투명하고 밝아요. 미인이신가 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공계열의 교양 강의였고 오리엔테이션 중이었기 때문에 물론 수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발언이었다. 이 사건은 대학가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이전에는 학생이 교수 외모를 공개적으로 품평했다는 이야기를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쌤, 예뻐요!’하던 고교시절의 정서가 남아있었다손 치더라도, 단순한 친근감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지각한 바를 매우 ‘구체적’으로 언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놀라운 구석이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의 향상으로 인해 외모에 대한 언급이 조심스러워진 사회 분위기는 차치하더라도, 통념상 교수는 학생의 ‘윗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점수를 매기고 호오(好惡)를 구분하는 자격은 항상 권력의 주체에게 주어지며, 그로부터 평가당하는 것은 피주체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학생이 교수를 ‘칭찬’했다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무례한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남학생의 ‘개념 없음’을 힐난하는 선에서 사건은 일단락된 듯하지만, 사실 이 문제에는 시선의 지배관계를 규명하는 현대철학의 중요한 명제가 숨어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푸코에 의하면 ‘보는’ 행위는 ‘지배하는’ 행위이다. 시선의 주체는 가려진 채 시선을 받는 대상만 노출되는 판옵티콘의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시선은 그 존재만으로도 훈육과 교정의 힘을 발휘한다.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며 대상화된다. 시선은 단순한 눈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대방에 대한 냉혹한 평가이다. 시선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왜곡하거나 부당하게 평가해서만이 아니다. 냉정한 객관성 자체가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의실 안에서 교수 눈에 ‘보이는’ 자기 모습을 검열하던 학생들은 이제 카메라 뒤에서 교수를 ‘본다’. 뜬금 없이 교수의 외모를 칭찬했다는 학생도 이러한 권력 관계의 전복을 무의식중에 감지한 것이라 판단된다. 아마 대면 강의 때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 들어 유난히 교강사 강의력 논란이 잦은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강의 방식의 변화로 인해 실제 수업의 질이 떨어진 측면도 있지만, 프레임 밖의 시선 권력이 강해진 탓도 있다. 수강생 캠을 켜게 되면 권력은 다시 교수자 쪽으로 넘어온다. ‘교수들이 캠에 집착’ 하는 이유에는 시선의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심리도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덧붙이면 온라인 강의에는 교수자와 학생 뿐 아니라 가상인물의 시선이 끼어든다. 녹화된 강의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을 참여자들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교수는 평소에 하던 농담을 삼가고, 학생은 강의 시작 전 몸단장을 한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온라인 수업은 양가적이다. 강의실 내 민주화라는 의외의 소득을 가져올 수도 있고, 수업을 경직되게 만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줄다리기 중인 듯하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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