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경계인으로 살아남기
[음악 월평] 경계인으로 살아남기
  • 정현우(시인, 뮤지션)
  • 승인 2020.10.23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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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당신은 인간이 맞습니까? 나는 어떤 경계에서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다르게 굉장히 정밀한 기계와 같은 생물체이지만, 숨을 쉴 수 있는 몸통을 가져야 하는 아주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이 다른 생물체와 구분되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인간의 본질과 그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죠. 그러나, 요즘에서야 계속 이야기 되고 있는, 젠더, 남성, 여성, 이런 단어들이 그저 마음만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닐 겁니다.

  영국 뮤지션 팝가수 샘 스미스가 자신이 제3의 성인 ‘젠더 논바이너리’라며 커밍아웃하기도 했습니다. 젠더 논바이너리(gender non-binary)는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 포함되지 않는 제3의 성을 일컫는 말이고 다른 말로는 ‘젠더 퀴어(Genderque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몸과 마음에서는 항상 전쟁이 일어났다. 경우에 따라 내 머리는 나를 여성으로, 때로는 남성으로 인식한다”며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 중간에 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샘 스미스는 2014년 <I’m Not The Only One>이 수록된 앨범 《In The Lonely Hour》로 12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2015년 제57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앨범’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2020년 2월에 발매된 샘 스미스의 <To Die For>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It is if everyone dies alone”
모든 사람들이 혼자 죽는다면
“Does that scare you?”
그게 당신을 두렵게 하나요?
“I don’t want to be alone”
전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I look for you
당신을 찾고 있어
Every day
당신을 찾고 있어
Every night
매일 밤낮으로
I close my eyes
두려움과 빛들로부터
From the fear
눈을 감아요
From the light
두려움과 빛들로부터
As I wander down the avenue
거리를 헤매다보니
so confused
너무 혼란스러워요
Guess I’ll try and force a smile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 하는 것 같아서
Pink lemonade sipping on a Sunday
일요일에 마시는 핑크 레몬에이드
Couples holding hands on a runway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있는 연인들
They’re all posing in a picture frame
그들 모두 액자 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whilst my world's crashing down
저의 세계는 무너지는 동안
Solo shadow on a sidewalk
길 위의 하나의 그림자
Just want somebody to die for
목숨을 바쳐 사랑할 사람을 원해요
Sunshine living on a perfect day
완벽한 날에 내리쬐는 햇빛
whilst my world’s crashing down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동안
I just want somebody to die for
그저 목숨을 바쳐 사랑할 사람을 원해요

  샘 스미스가 이 곡을 쓸 때 로스앤젤레스 해변가를 걸으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그 사이에 전 애인이 새로운 사람과 함께 지나가는 것을 보고 굉장히 슬펐다고 했죠. 샘 스미스는 2019년부터 기존에 하던 음악의 색깔과 전혀 다른 음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7월 19일에 발매된 <How DO You Sleep?>에서는 공기 반, 소리 반인 믹스보이스를 꽉 차고 매력 있게 구사하는 실력파 보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노래입니다.

What have I become?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Lookin’ through your phone now, oh, now
너의 휴대폰을 몰래 열어보네
Love to you is just a game
이제 너한테 이 사랑은 놀잇감일 뿐
Look what I’ve done
내가 저지른 일들을 좀 볼래
Dialing up the numbers on you
네게 저장된 번호들로 전화를 거네
I don’t want my heart to break
나의 사랑이 산산히 부수어지지 않길 바라면서
Baby, how do you sleep when you lie to me?
나의 사랑, 수많은 거짓들 사이에서 어찌 잠을 청한거야?
All that shame and all that danger
그 많은 수치와 위험들 사이에서
I’m hopin’ that my love will keep you up tonight
나의 사랑이 당신을 잠들지 않게 돕길 바랄 뿐이야
Baby, how do you sleep when you lie to me?
자기야, 그 많은 거짓들 사이에서 어찌 잠을 청하는거야?
All that fear and all that pressure
그 많은 두려움과 압박들 사이에서
I'm hopin' that my love will keep you up tonight
다만 내 사랑이 당신을 잠들지 않게 할 뿐이야

  미디엄 템포의 곡이면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뮤직비디오에 요염하게 춤을 추는 남자들입니다. 예술이나 오락, 유희를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드래그 퀸(Drag queen)’을 연상시키지만, 남성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래그 퀸과는 다른 오묘한 지점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최근 호주 토크쇼 <The Project>에 출연한 스미스는 “나는 항상 엄마에게 ‘They’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 항상 나를 ‘He’라고 부른다.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다” 샘스미스는 ‘그’나 ‘그녀’가 아닌 ‘그들’이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회 통념이 옳은 것인가? 혹은 옳지 않은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이전에 앞서, 근래에 들어와 ‘성 정체성Gender Identity’과 관련해 ‘자신을 어떠한 성별로 인식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 계속 이야기되고 있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하겠지요. 우리는 항상 경계라는 곳에서 존재합니다. 시를 짓고 음악을 노래하고 신을 찾고 하는 행위들은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반쪽짜리 존재이기 때문일 겁니다.

반쪽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입니다만, 영화 <헤드윅>의 가발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방이 떠오릅니다. 영화 <헤드윅>은 2001년 존 카메론 미첼 감독, 주연으로 영화 기본 플롯은 뮤지컬과 다르지 않습니다만, 영화 화면만이 담을 수 있고, 주인공의 감정선이 정갈하게 혹은 거칠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화 <헤드윅>은 완벽한 성전환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로커 헤드윅과 밴드메이트들을 주인공으로 한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짧게 영화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 헤드윅은 어린 소년시절 미군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그리고 20대 중반 한 미군과 결혼하기 위해 불법 성전환수술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말죠. 멋진 노래 실력와 관객들을 압도하는 무대매너를 가진 헤드윅은 밴드를 끌고 다니며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헤드윅>의 음악들은 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컨트리나 왈츠를 접목하는 변주 영화와 찰떡처럼 잘 들어맞는 노래들이 주를 이룹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메인테마 노래 <The Origin of Love>를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동화 같은 일러스트 위로 펼쳐지는 서정적인 멜로디는 주인공이 꿈꾸는 완전한 사랑의 기원을 노래합니다.

ⓒ트리아트 필름

And there were three sexes then,
그때는 3개의 성이 있었지
One that looked like two men Glude up back to back , Called the children of the sun.
하나는 두 남자의 등이 붙은 해의 아이들과
And similar in shape and girth Were the children of the earth.
They looked like two girls Rolled up in one.
비슷하게 두 여자아이의 등이 붙어 하나로 된 땅의 아이들과
And the children of the moon Were like a fork shoved on a spoon.
그리고 숟가락에 붙은 포크처럼 보이는 달의 아이들이 있었어
They were part sun, part earth
한쪽은 해, 한쪽은 땅
Part daughter, part son.
한쪽은 딸, 한쪽은 아들인
The origin of love
사랑의 기원
Last time I saw you
마지막으로 당신을 봤을 때
We had just split in two.
둘로 갈라진 바로 뒤
You were looking at me.
당신은 나를 보고
I was looking at you.
나는 당신을 보고 있었어
But I could swear by your expression
허나 난 이것만은 알 수 있었어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the same as the one odwn in mine.
당신 영혼의 고통은 나의 고통과 같다는걸
That's the pain,
그것은 고통
Cuts a straight line Down through the heart;
심장까지 가르는
We called it love.
그건 바로 사랑이라는 고통
So we wrapped our arms around each other,
우린 서로를 감싸주고
Trying to shove ourselves back together.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We were making love, Making love.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누네
It was a cold dark evening, Such a long time ago,
그것은 먼 옛날 어둡고 추운 밤에

ⓒ트리아트 필름

  본래 한 몸이었던 인간들이 신에 의해 반으로 나뉘게 된 후, 완전한 하나로 돌아가기 위해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곡입니다. 3개의 성별인 해의 아이, 땅의 아이, 달의아이가 있고. 이들은 각각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등을 맞대고 붙은 것처럼 생긴 사람들입니다. 몸이 하나로 된 사람들은 둘이 하나였기에 사랑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제우스에 의해 등을 가로질러 둘로 나뉘었고,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항상 버림받아야 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반쪽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버림받고 배신당하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악착같이 그것을 찾아 나섭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헤드윅이 벌거벗고 골목을 걸어 나가면서 끝이 나는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으로 이해됩니다.

요즘,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경계선>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후각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티나와 역겨운 냄새로 가득찬 보레라는 남자를 출입국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티나와 보레는 인간의 시선과 차별이라는 경계속에서 살아가는 트롤 이야기입니다. 티나와 보레의 오묘한 스킨십과 사랑과 어떤 증오가 서로의 경계선을 지우는 행위라고 보여졌습니다. 티나는 보레에게 “난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면 인간인 거야?”라는 말을 던지게 되는데요,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을 살아왔지만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에 가까운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인간이 인간이라 불릴 수 있게 만드는 ‘경계선’이 과연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십년 넘게 키우던 새가 죽었습니다. 참외 빛깔의 앵무새였는데, 반 쯤 눈이 감겨져 있는 것을 보니,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손을 꽉 쥐고 있었더랬지요. 눈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숨이 칼에 베이듯이 툭하고 끊어졌습니다. 인간은 슬퍼지기 위해 만들어 졌고, 그런 슬픔의 경계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 인간으로서 완성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의 경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에서, 그리고 슬픔의 경계에서 우리는 위태롭고 외롭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구름이나 나무 또는 새나 강아지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어떤 경계들이 날 시험하더라도 와락 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밤입니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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