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한국 근현대미술의 명작들
[북리뷰] 한국 근현대미술의 명작들
  • 이정훈(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0.10.23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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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살아남은 그림들』

  한국 근현대미술의 아프고 치열했던 발자취
  본격적으로 서양미술이 들어온 지 백여 년, 한국 근현대미술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살아남은 그림들』이 출간되었다. 미술 현장에서 십수 년동 안 일한 저자 조상인은 학술적·전문적 분석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그림의 아름다움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미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경제신문》의 미술·문화재 분야 전문기자로 일하며 그림 보는 것을 업으로, 글쓰기를 천직으로 알고 산다.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했고, KBS라디오 《문화 한마당》에서 〈라디오 미술관〉이라는 코너를 수년간 진행했다. 《아시아나》의 커버스토리를 4년째 쓰고 있으며, 직장인들을 위한 인문서 시리즈 『퇴근길 인문학』(공저)에도 참여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화가들을 비롯해 오지호, 변관식, 김창열, 이우환, 이승조 등 각자의 영역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미술가 37인의 삶과 작품을 담았다.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고, 드라마틱했다. 전쟁과 독재, 가난 탓에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고난을 겪어야 했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와중에 떠난 유학 생활 중 생계를 유지하려 막노동을 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들 아무리 힘들어도 그림 그리기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길 멈추지 않았다. 숨 막히는 식민지배 하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붓을 놀렸고, 총탄이 날아드는 피난길에도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다.그림이 영원히 사라지고 말거나, 혹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긴 경우도 많다. 나혜석과 구본웅의 그림은 상당수가 전쟁의 와중에 불타 사라졌다. 이중섭의 그림은 친구 박고석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진 것도 여럿이다. 월북화가 이쾌대의 그림은 남쪽에 남은 부인이 다락방에 꽁꽁 감추어둔 덕에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고 다시 빛을 볼 수 있었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1940년 전후에 완전 추상을 이룬 유영국의 초기작들은 망실된 지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딸 유리지와의 협업으로 재제작되어 비로소 세상에 소개될 수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말 그대로 ‘살아남은’ 그림들이 책에 실려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그림, 시대와 인생을 담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꼭 그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 되기 마련이다. 화가의 삶, 그리고 그림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감동은 배가 된다. 그렇다면 일제의 식민지배, 해방 이후 겪은 분단과 한국전쟁, 독재와 그에 맞선 투쟁, 급속한 근대문물의 유입과 산업화까지. 이 모두를 불과 한 세기에 겪은 우리 근현대사는 미술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었지만 숱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나혜석은 어딘가 불안한 눈빛의 〈자화상〉을 남겼다.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을 들여왔다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오지호는 본인도 일본에 유학해 미술을 배웠지만 이후 한국의 빛과 색을 그려내려 애썼고 또 성공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최영림은 전쟁이 끝나고 20년도 더 지나서야 그간 간직해 온 감정을 실어 한국전쟁의 비극을 그렸다. 강직한 성격 탓에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고초를 겪었던 화가 윤형근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전해 들은 뒤, 언제나 꼿꼿하던 화폭 속 기둥들을 비스듬히 무너뜨렸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이응노는 교도소에서도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알로 조각을 빚었다. 척주측만증으로 평생을 고생한 손상기는 팔을 들어올리기조차 힘들었음에도,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시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표적인 미술가 37인과 우리 곁에 남은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보자. 화가들의 치열했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까지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더욱 친근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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