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소설: 고요한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북리뷰]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소설: 고요한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 이정훈(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0.10.23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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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동시에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고요한의 첫 창작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저자 고요한은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의 단편소설 「종이비행기」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돼 주목받은 바 있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인간 내면을 관통하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의 세계는 오늘날 현대인의 숨겨진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개성있는 문체와 새롭고 신선한 상상력으로 그려 낸 소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우리를 낯설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한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스테이크? 당신은 스테이크 좋아하지 않잖아?”
결혼 후 아내와 스테이크를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신하면 식성도 달라지나 싶어 퇴근길에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최고급 한우 스테이크를 사 왔다.
아내는 포장지를 뜯고 나이프로 접시에 놓인 고깃덩이를 잘라 먹었다.
한 조각 먹다 말겠거니 했는데 아내는 포크에 묻은 양념까지 빨아먹었다.
-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본문 28쪽

  표제작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제목처럼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욕망은 반드시 비극을 불러온다는 고전의 법칙을 깨고 더욱 불온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발칙한 작품이다.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계획한 남편이 있다. 아내는 치욕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남편이 고용한 남자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아내가 아이보다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월한 2세의 유전자만을 희망했던 남편이 이제 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뿐.

  그리움이 사무쳐 마침내 한 폭의 병풍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그는 어릴 적 스님이 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회화 중에서도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설 「몽중방황」, 이성을 향한 왜곡된 집착을 종이 비행기에 접어 보내는 남자의 기괴한 이야기 「종이비행기」,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자의 전 남자친구와 동거를 선택하는 남자를 그린 「프랑스 영화처럼」, 교통사고로 낭떠러지에 추락하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24시간 동안 신과 사투를 벌인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 등.

  사랑과 작별, 상처 입은 유년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결혼과 이혼, 연인을 위한 특별한 선택 등, 이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눈부시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자의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며 내면을 성찰한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종이비행기」를 세계적인 문학 저널 《애심토트》에 번역해 소개한 역자 브루스 풀턴과 윤주찬은 그의 작품이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세계를 그렸다고 평했다.

 

 

* 《쿨투라》 2020년 10월호(통권 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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