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Theme] 커피와 문화
[11월 Theme] 커피와 문화
  • 고형욱(작가)
  • 승인 2020.11.0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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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커피콩을 갈아서 그 향기를 맡는 쪽을 더 선호한다. 그라인딩만 했을 때 나는 향이 커피를 추출했을 때 나는 냄새보다 훨씬 달콤하고 향긋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직 커피 본연의 향을 100% 완벽하게 끌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향기를 만끽하다가 이따금 한 모금씩 마시는 커피의 맛. 커피를 이렇게 이중으로 즐기고 있으면 정신이 말짱해진다.
  커피의 발상지는 에티오피아로 추정된다. 바다를 건너 아라비아로 들어간 커피는 곧바로 부유층이 향유하는 기호 음료로 자리 잡았다. 아라비아인들은 커피를 손쉽게 구하기 위해 예멘을 커피 재배지로 만들었다. 그때 커피 수출항의 이름이 바로 모카(Mocha)였다. 1700년대에 가장 인기 높은 커피가 모카와 자바였다. 지금까지도 커피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지중해 무역을 지배한 베네치아 상인들은 콘스탄티노플과 알렉산드리아 등지로 가서 원두를 수입해 왔다. 1683년 베네치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1720년에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카페 플로리안이 개업한다. 유럽의 모든 여행자들이 베네치아를 찾을 때마다 유행처럼 찾아와서 여행의 추억을 남기곤 했다. 지금도 유럽의 주요 도시에 가면 카페를 찾게 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커피는 우리를 진지하고 엄숙하고 철학적이 되게 해준다.”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1686년 파리의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 앞에 카페 프로코프(Pcroope)가 문을 열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상호로 레스토랑 영업을 하고 있는 이 집이 파리 최초의 커피하우스다. 스위프트의 말마따나 철학자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이 드나들며 토론을 벌였고, 미국에서 대사로 부임한 토머스 제퍼슨이나 벤자민 프랭클린도 대서양 너머의 프로코프를 사랑했다. 당시의 커피하우스는 손님들 모두가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열렬하게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대혁명의 주역인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이 이곳에서 혁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젊은 나폴레옹도 매일 프로코프에 들러서 몇 잔의 커피를 마시곤 했다. 프랑스 근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커피가 전부 지켜본 것이다.
  파리의 작가들 중에서 커피를 가장 사랑한 이는 오노레 드 발자크였다. 그는 하루에 50잔에 가까운 커피를 마시면서 집필에 열중했다.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같은 걸작들은 커피가 발자크의 정신세계를 깨워줬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파리의 커피 문화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확장된다. 파리 도처의 카페들은 다양한 예술가들을 받아들이면서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대화를 나누고 고민하면서 집필까지 하던 카페 되 마고(Les Deux Magots).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상상해보시라. 매일 밤 되 마고에서는 헤밍웨이나 살바도르 달리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되 마고가 생제르맹 데프레 지역을 대표한다면 몽파르나스를 상징하는 전설 같은 카페는 로통드(La Rotonde)와 라 쿠폴(La Coupole)이다. 로통드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사진가 만 레이, 작곡가 에릭 사티 등이 단골이었고, 라 쿠폴은 앙리 마티스를 비롯해 작가 제임스 조이스, 장 콕토, 헨리 밀러, 가수 에디트 피아프,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에 이르기까지 셀러브리티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드나들었다.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매일 파리의 카페를 채웠다. 그렇게 파리는 전 세계 예술의 수도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세계관을 키웠고, 20세기를 이끌어간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스타벅스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각자의 공간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도 같은 집의 커피를 마시면서 뉴욕이라는 도시를 공유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스타벅스 열풍에 기름을 부은 영화가 <유브 갓 메일>이다. 맥 라이언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많은 여성들을 스타벅스로 이끌었던 것이다.
  노래도 커피를 칭송한다. 줄리 런던의 고혹적인 음성으로 <Black Coffee>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찾게 된다. 같은 노래를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면 조금은 더 따뜻한 느낌이 든다.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를 들으면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어지고, 시원하게 터지는 김추자의 막힘 없는 목소리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기다림조차 지루해지지 않는다. 커피 노래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커피 칸타타>로 익살스럽게 예찬했다. “커피 맛이 얼마나 좋은데요! 천번의 키스보다 더 감미롭고 머스캣 와인보다 더 달콤하다고요.” 하긴 베토벤도 정확히 60개의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 한 잔을 추출해 마실 정도로 커피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커피가 그들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창작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에스프레소가 당연하지만, 국내에서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개인적으로 처음 에스프레소 머신을 본 건 1980년대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지하에 있는 소극장 살 르누아르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처음으로 맛보았던 기억. 그곳에서 만난 것은 커피만이 아니라 장 르누아르, 로베르 브레송, 자크 타티,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위대한 감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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