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Theme] ‘커피’ 하면 떠오르는 배우 공유
[11월 Theme] ‘커피’ 하면 떠오르는 배우 공유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20.11.02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커피’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주변 이들에게 물었다. 안성기, 원빈, 강동원 등 익숙한(주로 커피 광고를 하는) 배우들의 이름이 여럿 나왔다. 그 중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은 공유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왜 공유인가요?”

  크게 두 가지 키워드가 나왔다. <커피프린스 1호점>과 <카누>. 각각 12년 전 그가 출연했던 MBC 청춘 드라마의 제목과 그가 10년째 모델로 나서고 있는 커피 브랜드다.

  대중이 12년 전 그의 히트작을 기억하는 것도,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대기업 커피 브랜드의 모델로 10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미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공유라는 배우를 달리 보는 전환기가 됐다는 뜻이고, 10여년 간 그가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쌓아올리며 그 명성을 잘 지켰다는 의미다.

ⓒMBC

  #콜롬비아 수프레모 같았던 <커피프린스 1호점>

  글로벌 마켓 리서치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07년 한국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6억 달러였다. 하지만 2018년에는 43억 달러로 7배 가량 급성장했다. 물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영향이라 단정지을 순없지만, 이 드라마가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순 있다. 커피 전문점을 약속 장소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사랑을 속삭이던 20~30대 젊은이들이 쓴 커피 한 모금 뒤에 숨은 달콤함을 찾던 시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공유는 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이 썩 내키진 않았다. 그가 ‘스타’보다는 좀 더 ‘배우’이길 원했던 탓이다. 공유는 최근 방송된 MBC ‘청춘 다큐 다시 스물’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로맨스 장르 작품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던 때”였다며 “배우로서 일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사춘기였다”고 고백했다.

  2000년 Mnet VJ 7기로 연예계에 데뷔 후, 2001년 KBS 2TV 드라마 <학교> 시리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잠복근무>,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 등에서 그 나잇대 ‘꽃미남’이라 분류되던 배우들이 그랬듯 다소 가벼운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었다. 그에 따른 갈증이 팽배한 20대 후반, 군입대를 결심할 쯤 만난 작품이 바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이었다.

  당시를 공유는 “내 성취감을 채워가며 성장하고픈 때였는데 주변 분위기는 ‘이걸 꼭 해야 스타가 될 수 있고 광고도 찍을 수 있고 첫 번째 주인공도 할 수 있다’는 거”였다고 회상했다. 결과적으로 이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배우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작품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배우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 분명 공유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기점으로 후자의 범주로 옮겨 갔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과 문화를 반영한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였다. 그 부드러움과 달달함에 여성 팬들은 환호했다. 마일드 커피의 대명사로 ‘부드러움’의 상징인 콜롬비아 수프레모가 이 작품의 향기에 걸맞다고 본 이유다.

ⓒCJ엔터테인먼트

  #인도네시아 만델링 같던 <도가니>

  진한 커피향의 여운을 남기고 훌쩍 군입대했던 공유가 2011년 내놓은 영화는 <도가니>였다. 적잖은 남성들이 그러하듯, 군생활은 공유에게 여러 교훈을 남겼다. 병장 진급 기념으로 상관에게 받은 공지영 작가의 책 『도가니』를 단숨에 읽은 그는 자신의 소속사에 이 책을 영화로 제작하고 투자할 것을 권했다.그리고 자신은 주인공으로 나섰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인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청춘 스타인 그가 안긴 다소 버거울 법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이를 짊어졌다. <도가니>의 흥행으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재조사 요구가 거세졌고 경찰은 부랴부랴 전담팀을 꾸려 조사를 벌인 결과 추가적인 성폭력 피해 사실을 캐냈다.

  당시 공유는 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흥행을 떠나 관객들이 꼭 봐줬으면,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때 공유는“재 미있게 봐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영화”라며 “이 영화는 흥하냐 망하느냐의 문제를 갖고 덤비는 영화가 아닌 것 같다. ‘잘돼야 한다’가 아니라 ‘묻히면 안타까울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공유의 진심을 느낀 공 작가는 흔쾌히 판권 문제를 정리해줬고, ‘도가니’의 촬영 전 열린 고사 때도 참석했다.

  당시 공유의 선택을 ‘의외’라고 바라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연기와 작품을 하기 위해 <커피프린스 1호점>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고려해본다면, 그가 <도가니>를 택한 것은 필연일 수도 있다. 그 주제와 소재가 무겁고 상업적 흥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라도, 공유라는 배우가 참여하면 투자가 되고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며 흥행까지 일굴 만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방증이다.

  이후 그가 선보인 영화인 <남과 여>(2016)와 <82년생 김지영>(2019) 역시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 볼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등장인물 중 여성 캐릭터의 심리 변화와 이야기에 강하게 방점을 찍는다. 그 안에서 공유는 오른손이 돼서 힘차게 이 작품을 이끌고 나가기 보다는 왼손으로서 거드는 데 주력한다. ‘나’를 중심에 놓고 작품을 고르고 판단하는 배우라면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공유가 선택한 이 작품들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풍미를 가진 인도네시아 만델링과 어울린다. 입 안에 머금을 때는 씁쓸함이 감돌지만 그 끝에는 은근한 달달함은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커피콩에 비해 쓴맛이 강한 편이라 커피를 이제 막 배우려는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멜로나 로맨틱코미디 속에서 공유가 보여준 일련의 이미지에 익숙한 팬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tvN

  #케냐AA 같은 <도깨비>

  2016~2017년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공유의 출연작이다. 이 작품에는 20년 가까이 연기로 밥을 먹어온 공유라는 배우가 그동안 갈고 닦은 비장의 레시피가 모조리 담겼다고 평하고 싶다.

  그는 <도깨비>에서 타이틀롤인 도깨비 김신 역을 맡았다. 935년 동안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죽지도 못하며,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 사이 수많은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김신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사를 관조적으로 본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두 좋은 날들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오면, 염원을 담아 간절히 빌어. 혹여 어느 마음 약한 신이 듣고 있을 지도 모르니” “예쁘게 웃는 너를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선택, 이 생을 끝내는 것” 등 삶을 달관한 듯 관조하듯 내뱉는 대사 하나 하나가 시청자들 의 폐부를 찔렀다.

  그러다가도, 도깨비 신부 지은탁과 농담을 주고 받을 때는 마치 처음 연애를 해보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유치한 대사를 주고 받는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유치해진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삐치기 일쑤다. 사랑의 밀어를 주고 받고,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지은탁을 바라볼 때만큼은 935년이 아니라 채 9년을 살지 못한 아이처럼 상대방에게 푹 빠진 듯하다. 이런 그의 멜로 연기는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가보자, 갈 데까지”라며 강하게 키스하는 최한결을 기억하는 팬들의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뿌리고도 남았다.

  <도깨비>는 공유라는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데 모은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공유가 그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이는 <도깨비>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였다. 김 작가는 “공유에게 5년 동안 거절당했다. <도깨비>를 제안할 때도 정말 조심스러웠는데 ‘이렇게 소심하고 겁 많은 도깨비라도 괜찮으시다면 이 작품을 하겠다’라고 금방 답을 줘서 기뻤다”고 말했다.

  ‘공유 사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김 작가는 대단한 필력을 보여줬고, 공유는 이를 무리없이 소화했다.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도깨비>가 당시 케이블채널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20.5%)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커피콩을 재배하기 가장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진 케냐에서 자라 ‘밸런스’가 가장 훌륭한 케냐AA를 현실과 판타지, 생과 사, 인간과 비(非) 인간, 가벼움과 무거움, 사극과 현대극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균형감을 잃지 않은 ‘도깨비’에 비유한 이유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같던 <부산행>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화려한 꽃향기와 달콤한 과일 향이 풍부한 커피콩이다. 산미 또한 강하다. 이런변화무쌍한 풍미 때문에 예가체프를 꺼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예가체프를 찬찬히 음미하면 아주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꽃의 이름을 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군고구마와 같은 향을 느꼈다고 말한다. 색에 비유하자면 무지개, 총천연색이다.

  그래서 공유라는 배우가 그가 가진 이미지에 매물되지 않고 스스로 작품 속 부속품으로 기능하길 원했던 작품인 <부산행>과 <밀정> 등을 예가체프에 비유하고자 한다.

  <부산행>은 공유의 첫 ‘1000만 영화’다. 총 1157만 명을 모았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넷플릭스 <킹덤>이 공개되기 이전 ‘K-좀비’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유는 이 작품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성애를 여실히 보여줬다. 완력으로 좀비를 처단하는 모습은 다른 캐릭터에게 양보하고, 자신이 아닌 딸을 위해 좀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의 감정선은 해외 시장에 K-좀비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도화선이 됐다.

  같은 해 선보인 <밀정>에서 그는 몫은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이었다. 기존 작품들과는 또 결이 달랐다. 게다가 ‘연기 9단’이라는 송강호와 대거리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공유는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두 배우의 앙상블은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정평이 난 김지운 감독의 손을 거치며 한결 도드라졌다. 두 작품이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공유의 진일보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는 이유다.

  그 해 이 두 편의 영화로 공유가 모은 관객은 도합 1900만 명. 이를 통해 안방극장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흥행 배우로 거듭난 공유는 그는 ‘흥행’보다는 ‘배우’에 보다 큰 방점을 찍는다. 그가 가진 외적인 매력과 같은 하드웨어를 내세우지 않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곁들여진 소프트웨어에 무게를 두며 배우로서 외연을 확장했다. 이를 통해 예가체프처럼 그의 연기는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맛을 내기 시작했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공저)이 있음.

 

* 《쿨투라》 2020년 11월호(통권 77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