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Theme] 커피의 도시, 강릉
[11월 Theme] 커피의 도시, 강릉
  • 진영하(프리랜스 작가)
  • 승인 2020.11.02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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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당 연간 512잔. 하루 평균 2~3잔의 커피를 소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밥 먹듯 마신다는 얘기다. 한때 서양에서 온 신문물이자 모던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커피는 이제 우리나라를 ‘커피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없게 만들었다.
  강릉은 관광휴양지이면서 예로부터 문향과 예향의 고장이라고 일컬어 왔다. 요즘은 하나 더 추가되어 커피의 도시로 각광 받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아쉽게도 열리지 못했지만, 해마다 10월이면 ‘강릉 커피 축제’와 함께 한 지도 올해로 12년째이다. 축제는 메인 행사장을 두고 안목, 사천, 강릉 시내 등 커피 거리와 커피점 등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들로 진행된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자라던 커피나무의 열매가 아라비아로 전파되어 유럽 및 세계 각국으로 퍼져 현재에 이르렀다. 커피를 주산지로 하는 나라도 아닌데, 우리나라 동쪽 끝자락의 도시 강릉에서 커피를 주제로 한 축제가 개최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는 점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보다 더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릉은 전국에서 커피전문점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곳이다.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 거리를 비롯해해안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택가 골목골목에도 자리 잡고 있다. 로스팅(볶는 것), 드립(추출) 등의 용어가 일상 언어처럼 입에 오르내리고, 바리스타(커피전문가) 과정은 여러 곳에서 꾸준히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오죽하면 강릉엔 한 집 건너 모두가 바리스타라고 하겠는가. 이쯤 되면 강릉에 불고 있는 커피 바람은 가히 열풍 수준이다.
  사실 맛에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강릉의 커피 역사는 옛 강릉 사람들이 신라 시대부터 향유한 차(茶)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커피도 차(茶)의 일종이라고 보면 강릉의 커피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신라 시대 차 문화 유적지인 강릉 남항진 공군부대의 한송정(寒松亭)에는 당시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실 때 사용한 다구(茶具)가 옛 모습 그대로 전해온다.
  그렇다면 경포대를 비롯한 곳곳에서 차를 달여 마셨다는 강릉은 왜 천 년 전부터 차로 유명했을까? 아마도 백두대간 깊은 산과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석간수(石間水)의 특별한 물맛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똑같은 음식을 다른 지역에 가서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물맛에 의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수돗물과 정수기의 물도 엄연히 그 맛이 다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박이추 커피 장인 Ⓒ 보헤미안박이추커피

  그래서였을까. 인스턴트 다방 커피뿐이던 시절, 우리나라에 로스팅 문화를 퍼뜨린 ‘3박(朴) 1서(徐)’ 중 한 분인 박이추 커피 장인이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버리고 물 좋은 강릉에 정착했다. 박이추 장인은 원두를 강하게 볶아 진한 맛을 내는 일본식 커피의 대가이다. 그가 운영하는 ‘보헤미안’에 가면 지금도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며, 몇 년 전 사천 해변에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공장’을 열었다. 강릉 커피 역사의 산증인이자 지금도 여전히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분이라는 것은 서울우유와 콜라보하여 출시한 이름하여 ‘강릉 커피’가 현재 편의점 등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더불어 전국 15개 직영점을 운영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용덕 대표의 토종 카페 ‘테라로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재배에 성공한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농장과 커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금정 대표의 ‘커피커퍼’는 커피 좀 마신다는 마니아 세계에선 강릉의 3대 커피 성지라 불린다. 그 외에도 강릉 전역에 500개가 넘는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묘한 것은 조금씩 다른 특색으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핫하다고 하는 곳을 꼽으라면 달콤하고 고소한 흑임자라떼로 유명한 ‘툇마루’ 카페라고 할 수 있겠다.

 

  강릉이 커피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일등 공신은 강릉 시민들이 사랑한 안목의 커피 거리이다. 다방밖에 없던 1980년대, 강릉항이 있는 안목은 경포 해변처럼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기에 현지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안목 바닷가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연인끼리 바다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거나 때론 이별의 아픔을 덜어내던 낭만과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런데 안목의 자판기 커피는 다른 곳의 커피자판기에서 나오는 평범한 커피가 아니었다는 사실! 커피자판기에 커피, 프림, 설탕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국산 콩가루, 미숫가루 등의 잡곡이 들어가기도 하며 다양한 맛을 내었다. 커피자판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마치 지금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커피처럼 자판기마다 커피 맛이 달랐다. 커피의 종류와 배합을 달리해 강릉 시민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나만의 자판기가 있을 정도였고, 죽 늘어서 있는 커피자판기가 일명 ‘길 다방’으로 불리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안목의 커피자판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추억의 자판기뿐만 아니라 안목에 있던 횟집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번듯번듯한 커피전문점이 들어서면서 안목해변은 ‘커피 거리’라는 커피 명소가 되어 이제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강릉의 커피는 백사장을 거닐거나 카페에 앉아 탁 트인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기 때문에 그 맛이 배가되는 것이 아닐까. 높은대관령 덕에 쉽게 넘어오지 못해 미세먼지를 걱정할 필요 없는 청정한 하늘에 흰 구름 한 조각 유영하는 날이라면 더더욱 금상첨화다. 그 어떤 최고급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도심의 카페도 아름다운 강릉의 풍경 앞에선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별한 물맛과 어우러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강릉의 커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 가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갈매기가 노니는 백사장을 거닐며 입과 코를 가득 채우는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셔볼 것을 권한다. 아, 커피의 도시 강릉에선 가슴 가득히 채워가는 한 잔의 낭만과 여유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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