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테마 - 배우 조승우] 조승우라는 보물 찾기
[11월 테마 - 배우 조승우] 조승우라는 보물 찾기
  • 이태훈(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 승인 2018.10.2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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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자연스러운
'기억'을 사로잡는
'자신'을 갈아넣는
조승우라는 보물찾기
Ⓒ Robin Kim

기록할 ‘기記’자를 쓰지만, 기자記者는 본래 듣는 직업이다. 쓰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람들의 의견을 자주 많이 깊이 들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정結晶이 기사記事다.


공연 담당 기자에게 배우 조승우(38)는, 오래된 비유를 빌리면 ‘밭에 숨겨진 보물’같은 이름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야 그 존재감을 익히 보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본향이라 할 무대를 홀연 떠난 지 이미 한참이었다. 그의 무대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공연판 사람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각자가 아는 조승우에 관해 들려줬다.

올 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네 번 봤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이 뮤지컬을 만든 S씨와 함께였다. 기자는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의 홍광호 돈키호테, 연기 경험만큼 깊이 있는 오만석 돈키호테를 칭찬했다. 흐뭇하게 듣던 S씨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대단하죠. 그래도요, 승우가 역시 엄청났어요.” 그 때, 공연 기사를 쓰기 시작한 뒤 처음 질투를 느꼈다. 조승우는 얼마나 대단한 배우란 말인가. 공연은 레디메이드 복제품이 아니다. 2004년 젊고 뜨거운 조승우가 연기했던 지킬을, 2005년 그의 헤드윅을 나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2007년 스물일곱, 2015년 서른다섯의 조승우가 연기했던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나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조승우의 이름 앞엔 왜 ‘최고’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는 걸까.

조승우는 배우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기억을 사로잡았다. 고교생 누나가 출연한 <돈키호테>를 보고 뮤지컬로 진로를 정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 그의 계원예고 시절, 돈키호테 공연을 보러 자주 갔던 젊은 극작가 J씨는 말했다. “주인공 돈키호테가 친구였고, 조승우는 산초였어요. 크지도 작지도 않고 튀는 행동이나 대사도 아닌데, 공연이 끝나면 산초만 생각났어요.” J씨는 “나중에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며 그 산초가 조승우인걸 떠올렸다”고 했다. “얼굴에 지킬과 하이드 분장을 반반 하고 몸을 돌려가며 두 개의 인격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어요. 마징가Z 아수라 백작처럼, 하하. 자칫 어설퍼지기 쉬운 장면인데, 근데 너무 강력한 거예요. 그게 조승우죠. 조승우라서 가능한 거예요.”
공연 전문지 기자로 오래 일한 K씨는 “조승우는 무서운 배우”라고 했다. <맨 오브 라만차> 출연 때 조승우를 오래 인터뷰 했고, 연기를 분석한 형광펜 줄과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그 유명한 대본도 봤다. K씨가 가장 놀란 건 조승우가 이 뮤지컬의 클라이맥스인 거울의 기사 장면에 관해 얘기할 때였다. “유산을 물려받아야 하는 조카사위의 음모로 현실을 마주하며 돈키호테가 무너지는 장면에 대해 40분쯤 얘기하더군요. 빈틈이 없었어요. A부터 Z까지, 1부터 100까지 모든 걸 분석하고 계산해 손 안에 쥐고 있었죠. 천재라고들 하지만, 그 이상이에요. 배역 안에 자신을 갈아 넣어 하나가 돼 버려요. 그 노력이 더 무섭죠.”

<타짜>의 최동훈 감독은 “나에게 조승우는 브래드 피트, 알 파치노였다. 그가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짝사랑하던 여자랑 데이트를 하게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더라도 일 년에 한 편씩은 영화를 해줬으면 한다. 보물 아닌가. 그 연기는 영상자료원에 남겨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조승우를 보물이라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보물을 찾고 있다. 그는 올 연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돌아온다. 추석 시즌 출연작 <명당> 개봉 때 기자들과 만난 그는 “주름은 지고 늙어가지만 고귀한 감정을 찾아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구나, 배우 일에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친구여, 나는 50년을 사는 동안…’하는 대사가 있어요. 처음 그 공연 때 저는 27살이었고, 그 대사를 ‘내가 사는 동안’이라고 바꿔서 했죠. 그걸 35살에 또 했어요. 마흔이 돼서 한다면 느끼는 것 자체가 다를 거예요. ‘친구가 죽어가는 걸 봤다’, ‘전쟁과 고문과 굶주림을 봤다’ 그런 대사들만큼, 연륜이 쌓이며 예전에 몰랐던 것들이 이해되는 시기가 오겠죠.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못 느꼈던 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구요. 보물 찾기 하듯이.”

‘보물’ 조승우는 여전히 보물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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