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책가옥은 책가옥이 아니라 이두헌이 커피를 볶는다
[INTERVIEW] 책가옥은 책가옥이 아니라 이두헌이 커피를 볶는다
  • 손정순(시인, 본지 발행인)
  • 승인 2020.11.05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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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문화공간 책가옥 이두헌 대표를 만나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렸을까? 서분당(고기)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 좌회전을 반복하며 고기로 173번길 골목길로 접어들자 탈린의 구시가에서 본 듯한 성당 같은 아름다운 삼각형 건물이 나타났다. 대략 7m 높이의 웅장한 층고와 삼나무 문, 빨간 벽돌이 은은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새벽기차> <풍선>등으로 유명한 그룹 다섯손가락 이두헌 뮤지션이 운영하는 커피문화공간이다.

  ‘책가옥’이라는 작고 동그란 간판을 매단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장난감 같은 나무시계와 노란 자전거 등의 소품이 전시된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를 지나 카페 문을 여니 나무 냄새가 훅 들어온다. 얼마만에 맡아보는 숲의 냄새인가. 그 나무결 사이로 스며드는 원두향… 나만의 동화 속으로 여행 온 것만 같다.

공연장은 300년 이상 된 나무를 통째로 만든 테이블과 나무 의자들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군고구마를 구워먹을 수 있는 화로, 핸드드립 커피, 비밀의 다락방과 빔을 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흰 벽면 스크린 등 모던한 건물에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살아있어 새벽기차를 타면 타임머신처럼 먼 옛날의 추억 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다.

  그의 손때가 묻은 1957년산 1964년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가 걸려 있는 뮤지션의 공간이지만 왠지 시인의 서재 같은 느낌! 그래서 ‘책을 두는 선반’ 책가(冊架)옥인 걸까?

  직접 로스팅을 하며 사람좋은 선한 웃음을 주는 뮤지션이자 책가옥의 이두헌 대표를 만났다.

  뮤지션 이두헌: 그룹 다섯손가락 데뷔 시절 이야기

  손정순(이하 손) 선생님 너무 반갑습니다. 작년 이맘때 뵙고 책가옥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1년 만에 오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나무 냄새가 나서 너무 좋았습니다. 서울에서는 맡을 수 없는 새벽 숲의 냄새랄까.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번 쿨투라 11월호 인터뷰는 80년대의 문화아이콘이었던 그룹 다섯손가락의 이두헌 뮤지션이 운영하는 책가옥에서 선생님의 음악과 커피 철학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음악전문가도 커피전문가도 아니지만 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또 커피와 동거동락(同苦同樂)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두헌(이하 이) 네. 먼 길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대학로 북콘서트 때 주신 쿨투라 잡지 너무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문화전문지 쿨투라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저도 행복합니다.

  손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두헌 하면 다섯손가락 리더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당시 굉장히 폭발적인 인기였습니다. 386 끝 세대인 저도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데요. <새벽 기차>나 <이층에서 본 거리> 등 선생님이 작곡한 히트곡들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작곡도 그러하지만 특히 노랫말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깊이가 느껴져요. 이런 곡을 20대 초반에 발표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메타포와 감수성이 돋보입니다. 은유의 힘이랄까, 선생님 노래를 음미하다보면 원래 시인이 아니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데뷔 시절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이 시집을 내기도 했었죠. 제가 83년에 데뷔를 했으니까 벌써 38년 됐네요. 제 나이에 비해서는 데뷔가 빠른 편이에요. 잘 알려진 최성수 씨, 유열씨, 봄여름가을겨울보다 데뷔가 빠르죠. 생각보다 빠른 데뷔에 사람들이 많이 놀라기도 해요. 그러고보니 데뷔40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희가 처음으로 모였을 때 대학생이었는데, 다들 고등학교에서 각자의 파트에서 날리던 친구들이었어요. 저희가 대학에 오면서 그대로 뭉쳐서 ‘다섯손가락’을 결성하고 KBS에서 진행하는 ‘젊음의 행진’이라는 프로그램 오디션을 봤어요. 거기서 저희와 장필순 씨, 대학가 사람들 몇몇이 ‘캠퍼스의 소리’라고 음반을 내게 된 거죠. 옴니버스 음악이었는데, 그 음반 내고 그 이후에 서울음반이라는 회사에서 전속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85년 3월에 1집 앨범을 냈어요. 1년 후 86년에는 2집을 냈는데, 거기에 <풍선>, <사랑할 수 없는지> 등이 수록되어 있죠.

  손 선생님의 데뷔시절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과 같은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앨범 순위 차트에 늘 선두를 장식했던 다섯손가락이 방송에 나오는 날이면 그날 교실은 온통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다섯손가락은 그렇게 싱그러웠던 젊은 날을 빛나는 기억으로 남겨준 애틋한 밴드인데요, 만약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는지요?

  이 많이 있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연주를 더 잘하고 싶어요. 시간 낭비를 좀 덜 하고 싶은 거죠.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들에 시간낭비를 많이 했어요. 나이가 이만큼 들고 돌이켜보니까 그때 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생략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연주를 더 잘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새롭게 뭘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해왔던 일 중에 불필요했던 부분이나 낭비했던 부분을 좀 자르고, 더 효율성있게 갔다면 엄청난 연주자가 되지 않았을까 요즘도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연습을 한다고 해도 점점 느려지고 둔해지는 걸 느껴요. 스무 살 때 분명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되어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다른 것들을 많이 건드리면서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돌아간다면 그때 불필요하게 낭비했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책가옥의 탄생: 가구작가 유희열 씨와의 우정

  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순간 용인으로 이주해 하루 50~60km씩 걷기 시작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힘든 시절을 잘 견디고 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진 선생님을 뵙게 되어 좋습니다. ‘책가(冊架-책을 두는 선반)옥’이라는 이름처럼 잘 짜여진 나무 선반 위에 책과 커피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카페이기도 하고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이기도 한데요, 제가 어려서부터 꿈꾸던 공간을 이곳에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책가옥의 탄생 배경도 좀 들려주시겠어요.

  이 책가옥을 만든 사람은 가구 작가인데, 가수 유희열 씨와 이름이 같아요. 가구를 만드는 목수예요. 유 작가는 화학 약품 처리를 안 하고, 살아있는 원목만을 쓰는 사람인데요. 눈에 띄는 예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100년, 200년이 가도 사람과 어우러지며 하나가 될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제가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와서 우연히 걷던 중에 유작가의 작업실을 발견했어요. 걷다가 우연히 너무 예뻐서 작업실을 들어간 게 인연이 되었어요. 한 6개월 정도 왔다갔다만 하다가 어느 날 이 친구가 사실은 제 노래도 알았고, 좋아했다고 말을 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거죠. 그러면서 한 개씩, 두 개씩 이 친구가 제가 쓰는 스피커의 스탠드나 커피를 젓는 나무 같은 것들을 만들어주었죠. 이렇게 한 개씩 하다가 책가옥을 만들고 싶다는 제 말에 용인 청덕동에 빌렸던 남의 집에 돈을 많이 들여서 원목으로 방음 장치도 설치하고 그랬어요. 덕분에 5년 동안 제가 거기서 잘 놀았죠. 그러고 나서 이쪽에 땅을 사고 책가옥을 짓게 되면서 아예 이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겼죠.

매일 이곳에 와보지는 못했는데, 어느 날 와봤더니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한 가지만 원칙을 세웠어요.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들이 삼각형이었는데, 세모난 지붕에 박공으로 집을 짓자. 또 하나는 건물주들이 대부분 건물 하나만 지어놓고 2층, 3층 월세 내놓고 골프 치러 다니는데 저는 이런 인생은 살기 싫었어요. 죽는 날까지 제가 몸을 움직여서 직접 벌고 싶어서 건물을 단층으로 지었어요. 남들에게 월세 받아서 편히 살기 싫었던 거죠.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는 곳인데, 그걸 안한 거예요. 이 부분에서 이 친구와 제가 잘 맞았어요. 건물 전체를 나무로, 저기 폴딩도어도 나무로 되어 있죠? 지금 바깥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잖아요. 나무안에 흡음재를 채워서 방음 폴딩도어를 만들었습니다. 여기 마루도 그렇고 음향 시설을 모두 설치해뒀어요. 여기서 언제든지 바로 녹음을 할 수 있구요. 여기에 있는 모든 자재는 다 나무로 되어 있는데, 모두 다 이 친구가 손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되는 일을 한 거죠. 둘의 뜻이 합쳐져서 우리 둘이 이걸 만들고 여러 사람과 나누면서 살자. 책을 꽂아두는 선반을 ‘서가’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거기에 자기 삶을 담았어요. 선비가 거문고를 하는 사람이면 거문고를, 무예를 하는 사람이면 칼을 담았던 거죠. 여기는 책을 담아서 ‘책가옥’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커피와의 인연: 커피장인 다이보 가쓰지와의 만남
  책가옥은 책가옥이 아니라 이두헌이 커피를 볶는다

  손 이곳은 두 분의 우정이 탄생시킨 공간이네요. 전통 느낌이 가득한 책가(冊架)에 선생님께서 아끼는 수작업으로 만든 세상 하나뿐인 기타를 비롯해 가수 이승환이 선물한 빨간 의자까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만들어주신 유희열 가구작가님께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두 분의 아름다운 철학이 깃든 이 책가옥은 또 ‘커피’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흥미롭고 신비한 커피드립의 세계로 책가옥과 함께 뮤지션 이두헌이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커피로스터인 이두헌의 커피와의 인연을 들려주시겠어요.

  이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좋아했죠. 어렸을 때는 다방이라는 곳에 가면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주인분과 가족 같은 문화도 생기고 친구들도 만나구요. 예전에 최불암 씨 어머니가 하셨던 명동의 은성주점 공간에 박해미 씨도 오고가고 극작가들, 작곡가들이 오는 명동의 살롱문화가 있었잖아요. 그런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제가 찻집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어요. 제가 커피를 좋아한 건 그때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일찍이 취미로 커피숍을 여러 곳을 하셨어요. 연대 앞, 숙대 앞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앞서간 거죠. 커피숍을 몇 개 가지고 계셨어요. <이층에서 본 거리>라는 노래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남영동 카페 2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물론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죠. 그러다가 한 20년 전에 아내와 일본 여행을 갔는데, 다이보 가쓰지라는 분이 있어요. 커피 명인으로 유명하죠. 이분이 하는 도쿄 오모테산도역에 위치한 ‘다이보 커피’라는 곳에 우연히 가게 된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책에서 봤었나, 아무튼 그렇게 갔는데 마침 다이보 선생님이 커피를 볶고 계셨어요.

매장에 연기가 가득했죠. 거기서 손으로 볶고 대나무 채반에 쏟아서 부채질하는 장면을 봤는데 뭐하는 건가 싶었어요. 거기서 내린 한 잔을 마셨는데 저는 그날 커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날 신주쿠에 가서 이분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주전자 같은 커피 용품을 사고 서울로 왔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커피문화 태동기였는데, 당시에 그렇게 하나씩 사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시도를 해본 거죠. 프라이팬에 볶아도 보고 채반도 써보고, 그 이후에 오사카, 교토, 가나자와, 도쿄의 유명한 카페에 가봤어요. 가서 장인들의 문화를 보고 배웠어요. 그 사람들만의 정제된 커피 문화를 느꼈죠. 한 잔의 커피를 정말 정성껏 내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다이보 선생님이 쓰는 커피 기계를 우연히 서울카페쇼에서 구했고요.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커피를 내렸어요. 윤선해 씨라고, 일본 저자들이 쓴 커피 책을 모두 번역한 사람이 있어요. 윤선해 씨에게 독일 기계를 사려고 연락을 취했는데, 그분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어요. 저는 독일 기계 프로밧을 사려다가 윤선해씨에게 후지로얄을 사게 되었죠. 윤선해 씨는 다이보 선생님과의 대담집을 번역해서 내는 등 그분과 평소에 교류가 있었어요. 근데 선생님께 저를 소개시켜준 거죠. ‘한국에 당신에게 영감을 받아 당신과 똑같은 기계와 똑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며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 주신겁니다. 그래서 다이보 선생님이 본인 책에다가 제 이름을 한글로 또박또박 써서 보내주실 정도로, 저와 선생님은 각별한 사이가 됐어요. 그러면서 제가 선생님이 가진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커피를 해보자, 라고 생각하게 됐죠. 커피만 하다보면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데, 저는 다른 분들에게 책가옥에 관해 이야기할 때 ‘책가옥은 커피를 볶지 않습니다. 책가옥이 아니라 이두헌이 커피를 볶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커피 볶는 일을 누구에게 맡기지 않아요. 제가 하죠.

  손 뮤지션에서 커피장인 다이보 가쓰지와의 만남을 통해 커피로스터가 되셨다니,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책가옥 커피만의 특별한 맛, 비법이 있다면? 

  이 저희가 꽤 규모가 있는 카페지만 5키로 3키로 머신이 아니라 1키로 수동로스터 3키로 소형 로스터를 써요. 효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맛은 더 낫기 때문이죠. 밥도 15인분 밥솥에 짓는 것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2인분 밥솥에 짓는 것이 훨씬 맛있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소량 로스팅만 할거예요. 그리고 소량으로, 일일이 손으로 커피를 골라요. 볶고 난 이후에는 보통 잘 안 고르는데, 한두 알씩 나오는 이상한 커피콩을 골라내요. 소량으로 하면서 전 과정에 모두 감수가 들어가죠. 음악도 그렇게 해왔어요.

  딱 세 분만을 위한 특별한 커피 강좌와 공연

  손 책가옥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직접 커피를 볶고 내려주신다니 정말 감동입니다. 이 공간을 주로 찾아오는 연령층은 어떻게 되나요? 커피 강좌도 여시나요?

  이 전 연령층이 다 와요. 심지어 다섯 살짜리 아이도요. 사실 너무 많이 와서 밖에 알리지도 않고 그래요. 간판도 일부러 잘 안 보이게 바꾸기도 했어요. 가능하다면 이곳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도 누구나 듣는 건 좋아요. 하지만 아무나 듣는 건 싫습니다. 제 커피도 누구나 마시는 건 좋지만 아무나 마시는 커피가 되는 건 싫어요. 책가옥도 마찬가지로 누구나의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나 오는 공간이 아니게 만들겠다. 이게 평생의 모토예요. 아무에게나 열려있지는 않아요. 이게 사람을 가린다는 표현은 아니지만 ‘아무나’라고 취급되는 사람이 여기 와서 이 분위기를 해치는 것을 저는 싫어하거든요. 근데 자연히 이곳의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그런지, 등산하고 술에 취한 사람은 대충 들어와서는 뒷걸음치고 나가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그러고 나가요.

  커피 강좌는 한 달 전에 사전예약을 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수요일, 토요일에 딱 세 분정도만 핸드드립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 알려드려요. 한 10분이면 매진이 돼요. 대부분 여기에 ‘커피사춘기’인 사람들이 많이 와요. 소위 커피전문가들이어서, 자신의 말만 맞다고 자꾸 공식을 만들어요. 온도는 항상 이래야 한다는 등의 편견이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 입맛에 맞는 커피를 내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드려요.

  손 와~ 저도 한번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책가옥은 커피와 책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공간으로 북 카페이자, 커피숍이며, 무대가 있는 음악 공연장이기도 한데요. 이곳은 기획콘서트를 비롯한 공연을 하는 인디밴드에게 좋은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노래들 듣고 자란 동시대의 사람은 물론 젊은 청년들에게도 감성적인 음악공간인 것 같습니다.

  이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클럽 같은 곳밖에 없죠. 이곳에는 이분들의 음악에 대한 리스펙트가 전혀 없어요. 손님은 술을 마시고 있는데, 너희들은 여기서 연주를 해봐, 이 정도이지. 대중음악 가수가 대중들이 진지하게 자기를 바라봐주는 공간에서 연주를 하려면 어느 정도 이름이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게 싫어서 이 공간에서 공연할 때는 잡다하게 먹거나 할 수 없어요. 아무리 무명 가수여도 자기 음악으로만 연주를 해야 하고, 여기서 듣는 사람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콘서트를 봐야 하죠. 그래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책가옥 무대를 좋아해요. 클래식 공연도 많이 하는데, 소품들을 연결해서 하는 공연은 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엘가의 <사랑의 인사>, 모차르트 <세레나데 2악장> 같은 사람들의 귀에 익어서 알만한 곡들을 소품처럼 들려주지 않고, 세계적인 음악가의 연주를 비롯한 ‘전악장’,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 있어요. 음악가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도전이 됩니다. 그래서 덩달아 공연의 분위기가 잡히죠.

  나무 통판, 삼각형으로 만든 힐링 문화 공간
  이곳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공간

  손 뮤지션들의 자존감을 드높여주는 선생님의 철학이 책가옥과 꼭 빼닮았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성당같은 느낌이 들어 옷깃을 여미며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설계할 때 특별히 정성들인 인테리어 공간이 있는지요?

  이 삼각형 집이 제가 살던 집이었고, 집은 삼각형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집이 네모가 되면서 세상이 나빠졌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 집만큼은 삼각형으로 짓고 싶었어요. 삼각형 집이 주는 묘한 정서가 있어요.

  제가 쓰는 물건이 이 공간에 그대로 있어요. 장사를 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공간이 아니에요. 저기 400년 된 호두나무 탁자는 제가 거의 5년 이상 쓰고 있어요. 400년이면 영조, 정조 때 만들어진 저보다 수백 년을 더 산 나무가 저기 있잖아요. 밥을 먹으면 밥상이고, 글을 쓰면 책상이고, 누워서 자면 침대죠. 여기에는 제 일상의 소재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기타 치고 싶으면 앰프에 꽂아서 바로 치고요.

  손 주인장의 인문학과 따스한 정서가 느껴지네요. 이 공간은 나무로 만든 벽시계도, 밥을 주는 선생님도 멋지고요, 멋스런 자전거와 핸드 로스팅 기계가 어울려 한폭의 엔틱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 ‘아무나’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여야 아름답다. ‘아름’의 어원이 나라고 하더군요. 무엇이든 나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해요. 항상 어디를 가든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공간,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음식, 친구. 연필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나를 위해 깎아주는 그런, 이 공간도 그래서 기성품을 하나도 쓰지 않았어요. 물론 긴 세월이 걸렸지만 전부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고, 커피 내리는 기계도 모두 수동으로 하는 수고가 있지만 이렇게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아름답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룹 ‘다섯손가락’을 이끌었던 뮤지션 이두헌은 커피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지금도 여전히 멋진 음악과 삶으로, 커피와 책 그리고 음악 사랑을 공유하며 동시대 문화와 호흡하고 있다. “북적대고 시끄러운 카페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에서 편히, 오래 쉬어가기를 바란다”는 이두헌 대표의 인생 철학을 듣다보니 나도 자꾸만 책가옥이 있는 이 동네의 주민이 되고 싶어진다.

 

* 《쿨투라》 2020년 11월호(통권 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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