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11] 가장 큰 위기, 또는 고비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11] 가장 큰 위기, 또는 고비
  • 이무영(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 승인 2020.11.2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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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점을 넘어선 영화는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가 맞서는 갈등의 본질이 더 명확해지고,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기감도 증폭돼야 한다.

  주인공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칠 때 역시 큰 위기감이 발생한다. 이제 주인공의 투쟁은 심화되고, 관객은 이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만족스런 스릴을 느낀다.

  <밀양> 중간점을 넘어선 후 계속 평온할 것만 같던 신애의 삶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뀐다. 아들을 살해한 도섭을 용서하려 했던 그녀는 이미 신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평화롭다는 놈의 말에 분노로 일그러진다. 신애는 도섭과의 면회 이후 신과 맞장을 뜨기로 결심한다. 교회에 가서 장의자를 손으로 내려치며 성도들의 기도를 방해하고, 목사가 기도할 때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 야외집회를 엉망으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교회장로인 약사를 성적으로 유혹해 넘어뜨리려 한다. 

장로가 정신없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는 사이 신애는 경멸의 시선으로 신을 올려다보듯 하늘을 쳐다본다.

신애 : (마치 은밀한 농담이라도 하듯, 입 모양으로만) 보여? (다시 또박또박 끊어서 입 모양으로만) 잘, 보, 이, 냐, 구? (비로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으며) 잘, 보, 이, 냐, 구?

그렇다면 신애는 왜 이런 짓거리를 할까? 신실한 장로를 타락시켜 신을 한 번 괴롭게 해보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시도는 처절히 실패한다. 신애의 말에 장로가 움직임을 멈춘다. 신애가 남자를 내려다보면 그는 그 자세대로 꼼짝 않고 있다 .

신애 : 왜요?
장로 : (고개를 쳐들어 신애를 보며)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신애 : (장로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괜찮아요…
장로 : (신애의 손을 떼어내며) 안 돼요. 이러지 맙시다! 우리 지금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어요.

  장로는 신애의 가슴을 여미어준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이런 신애를 보며 그녀가 다시 무신론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관객이 꽤 있다. 단연코 아니다. 그녀가 신을 버렸으면 그냥 다시 신앙과 담을 쌓으면 그만이다. 사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왜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빼앗아 갔는지, 왜 주제넘게 자신의 용서를 대신했는지 가슴을 찢듯 고통스럽게 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움은 비단 신애만 느끼는 게 아니다. 관객 대부분도 한 번씩 그들 삶에 왜 알 수 없는 불행이 들이닥쳤는지 답을 알고자 울부짖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신애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동시에 부질없다 느껴진다. 이따위 도발에 신이 대답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신을 도발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의 전쟁을 지켜본다. 과연 신과 맞서는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신이 꼬리를 내릴 가능성은 아예 없다.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지금까지 자신의 불행을 신의 섭리로 수용하든지, 아니면 신을 저주하고 죽든지, 둘 중 하나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그녀의 최종선택을 확인케 해준다.

  <마더>에서 엄마는 천신만고 끝에 죽은 아정의 휴대폰을 손에 쥔다. 그리고 생전 아정이 찍어 저장해뒀던,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내들 중 하나가 범인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엄마는 면회소에서 도준에게 휴대폰 속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준은 그중 고물상 사내가 아정이 살해되던 날 현장에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그가 진범이란 확신을 갖고 고물상을 찾아간다. <복수는 나의 것>의 중간점 이후 류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복수의 화신이 된 동진은 최반장을 매수,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며 점차 그를 옥죄어온다. 동진은 유선이 죽은, 류의 고향 냇가에서 뇌성마비 청년을 통해 영미의 차번호를 확인한다. 원래 전기기술자였던 동진은 영미를 찾아가 전기로 고문해 죽인다. 비슷한 시간, 류는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장기밀매 가족 세 사람을 찾아가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인다. 그들의 콩팥을 씹어 먹은 후 영미를 찾아간 류는 그녀가 동진에 의해 살해됐음을 알게 된다. 이제 류는 동진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자신을 죽이려는 그와 맞서는 것 외에 류에게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주인공은 확고한 목적을 이루려 나아가다가 가장 큰 위기에 빠지거나 고비를 맞는다. 주인공은 이 난관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바로 이루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는다. 비록 주인공이 시원하게 목적을 이루고 있지 못하더라도, 작가는 이런 난관 속에서 목적을 이루려는 주인공의 투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관객을 계속 속이고 배반하라!

  서프라이즈와 반전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영화 중반부 내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방식이나 동원한다고 좋은 플롯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훌륭한 권투선수는 무조건 펀치를 휘두르지 않고 미리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는데 신경을 기울이며 카운터펀치를 준비한다. 시나리오 작업도 마찬가지다. 관객의 관심을 영화에 묶어두기 위해선 그들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생각하며 얘기를 쌓아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해서 놀라운 일이 발생하길 원한다. 고로 작가는 극적 흥미를 위해 항상 관객을 놀라게 할 ‘서프라이즈’(surprise) 를 ‘플롯 창고’에 준비해둬야 한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놀라운 상황이 펼쳐질 때 관객은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렇게 계속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못하면 그들은 어느새 편안히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졸기 시작할 것이다. 관객의 졸음을 막기 위해 서프라이즈는 필수다. 서프라이즈가 없으면 당연히 서스펜스도 생겨나지 않는다. 서프라이즈는 영화의 플롯이 관객이나 주인공 등 주요 인물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 발생한다. 믿었던 캐릭터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관객은 경이로움을 느낀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프라이즈는 더욱더 빈번히 활용돼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등장하는 서프라이즈는 천지가 개벽할 듯 놀라워야 한다. 서프라이즈는 관객을 놀랍게 할뿐 아니라 그들의 기존 생각을 무너뜨리고 자꾸 이후 상황을 예측하게 만든다. 우리 삶에서 놀라운 일을 만나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상황은 관객을 흥분케 한다.

  물론 유쾌한 흥분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하지만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막 써먹어선 안 된다. 캐릭터가 무슨 행동을 하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서프라이즈는 플롯의 전후 맥락 틀 안에서 창조돼야 한다. 어느 순간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이유가 설명되지 못하면 그건 당연히 쓸모없는 카드가 된다.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걸 서프라이즈랍시고 내미는 건 지양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예상한대로만 흘러가는 영화를 보며 짜증스러웠던 경험을 한두번쯤은 갖고 있다. 전지전능한 주인공도 서프라이즈의 효과적 활용을 방해하는 요소다. 제 아무리 슈퍼히어로라 해도 모든 악당을 파리 잡듯 손쉽게 죽이고, 단 한 차례도 난관에 봉착하지 않는다면 어느 관객이 서스펜스를 느끼며 그 영화를 보겠는가? 주인공은 무조건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그의 목표가 이뤄질 확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서스펜스의 강도는 커진다. <복수는 나의 것>은 크고 작은 서프라이즈를 매우 잘 활용한 영화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류는 3주 후,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의사는 “이렇게 빨리 기증자를 찾은 건 기적이야.”라며 일주일 내로 수술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기대치 않은 상황에 류는 놀랍고, 당황스럽다.

  만약 3주 후에 기증자가 나타날 걸 알았다면 당연히 그는 장기밀매조직을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유선을 유괴한 후 동진으로부터 순조롭게 돈까지 받은 류는 누나가 수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 기뻐한다. 그런데 누나는 같은 시간 동생이 자신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걸 알고는 자살한다. 욕조에서 누나의 시신을 발견한 류는 망연자실한다. 이건 전혀 자신이 기대했던 일이 아니다. 사실 이정도면 서프라이즈를 넘어 커다란 반전이다. 작은 서프라이즈이지만 동진에게 류가 잡히는 상황도 스릴만점이다. 동진을 죽이러 그의 집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친류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다. 창틀이 뜯겨져나간걸 확인한 류는 동진이 천연덕스럽게 잠든 걸 보곤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치켜들고 문을 열려 한다. 하지만 문고리를 잡는 순간 그는 감전돼 기절한다. 이 상황은 매우 놀랍지만 관객이 받아들이는데 전혀 무리함이 없다. 동진이 원래 전기기술자란 점을 활용한 안성맞춤의 서프라이즈이기 때문이다. <마더>에서 엄마는 변호사를 만나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와 습관적으로 아들 도준의 방에 들어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도소에 있어야 할 도준이 컴퓨터 앞에 앉아 고스톱게임을 하고 있다. 그녀는 ‘도준아!’라며 이름을 부르는데 정작 아들이 아니라 그의 친구 진태가 돌아본다. 짧은 순간이지만 잠시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어찌 된 일인가 숨을 죽인다. <밀양>에서 무신론자였던 신애가 아들의 죽음 이후 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놀라운 변화다. 또한 도덕군자처럼 굴던 그녀가 나중에 약사장로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도 관객을 당황케 하는 서프라이즈다. 영화 중반부 작가는 긴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최대한 여러 차례 서프라이즈를 활용해야 하는데 그 중 으뜸은 반전이다.

  반전은 한쪽으로 달려가던 영화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는 걸 말한다. 과속으로 달리다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채 급 유턴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식스 센스>(M. 나이트 샤말란 감독, 1999)에서 말콤은 망자들을 본다는 소년의 정신과의사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즈음 관객은 말콤이 죽은 자임을 알고는 까무러칠 듯 놀란다. <군함도>(류승완 감독, 2017)의 윤학철이나 <설국열차>(봉준호 감독,2013)의 길리엄이 각각 일제와 절대 권력자 윌포드의 프락치란 사실이 드러날 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반전은 작가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진행되던 이야기가 180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 놀란 관객은 이를 받아들이며 향후 벌어지는 상황까지 따라가느라 어마어마한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야만 한다. 이럴 경우 관객은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전혀 없다. 오로지 100 퍼센트 영화에 온 시선을 집중해야만 한다. 따라서 만족도는 당연히 수직상승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가장 큰 반전은 유선이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다.

  만약 류가 처음부터 유선을 살해하려 했다면 그건 반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류는 단 한 차례도 그런 의도를 가진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선을 따뜻하게 대해줬다. 류가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더라면 당연히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유선의 소리를 듣고 구해냈을 것이다. 장난으로만 치부하기엔 운명은 류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항상 그렇진 않지만, 많은 경우 가장 큰 반전이 클라이맥스 지점에 자리를 잡는다. <마더>에서 가장 큰 반전은 엄마가 그토록 결백하다 믿었던 도준이 아정을 살해한 범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그 순간 그녀의 목표는 처절하게 무너져버린다. 영혼을 탈곡기에 털린 듯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당연히 관객도 그녀의 처지에 처절하게 공감한다. 이처럼 반전의 상황이 주인공에게 커다란 정서적 영향을 끼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감정이 반전에 기름을 붓기 때문이다. 반전에 따른 상황의 변화는 주인공의 감정에 불을 지르고, 때론 그로 하여금 완전히 돌변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기도 한다.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만 반전이 존재한다면 그건 절반의 성공에 그치는 것이다. 그 커다란 반전이 주인공과 주요 인물의 감정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때 따라서 관객의 마음도 요동치게 된다. 관객의 마음을 두들겨 반응케 만드는 반전이야말로 영화를 살찌우게 하는 작가의 가장 소중한 무기일 것이다.

이무영
대중음악평론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방송인, 대학 교수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어떤 타이틀을 붙여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아티스트다. 어느 시점부터 영화인으로서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기 시작한 이무영은, 시나리오 작가로 <본투킬>,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소년, 천국에 가다>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연극 <선데이 서울>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 <휴머니스트>,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아버지와 마리와 나>, <저스트 키딩>, <한강블루스>를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11월호(통권 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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