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커피 향과 함께 기록되는 의지 다큐먼트(DOC.U.MENT)의 아티스트 B. 코 & 권소정
[INTERVIEW] 커피 향과 함께 기록되는 의지 다큐먼트(DOC.U.MENT)의 아티스트 B. 코 & 권소정
  • 김준철(시인·미술평론가, 미주특파원)
  • 승인 2020.11.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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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먼트에서 권소정과 필자의 인터뷰
다큐먼트에서 권소정과 필자의 인터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낮 최고기온이 화씨 100도 가까이 올랐었는데,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자연의 순리는 어쩌지 못하는지 어느새 해가 짧아지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생겼다. 천사의 도시에도 가을이 오려는 모양이다. 평온했던 땅을 장악했던 코로나와 산불은 그 기세가 여전하다. 그런데도 갑자기 변했던 세상이 조금은 더디게 변하는 것 같아 희망을 걸어본다. 난리 통인 세상에서도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그러하다. 예전에는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던지 맥도널드에서 구수한 커피를 사서 즐겨 마셨는데, 요즘은 더 좋은 커피를 찾아발품을 팔고 있다.

  1982년 시애틀에 1호점을 시작으로 판로를 넓혀간 Starbucks는 침체해 있던 커피 시장을 부흥시킴으로 커피 시장의 지형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오랜 세월 스타벅스를 위시한 몇몇 유명 프랜차이즈가 호황을 누렸으나 지금은 ‘Specialty coffee’가 커피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당연한 흐름이다. 같은 맛과 같은 인테리어에 길든 사람들이 비로소 새로운 맛과 기호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호응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필자 역시 커피를 좋아해서, 금방 마시고도 분위기가 근사하거나 새로 생긴 카페를보면 일단 들어가 보곤 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곳도 오래전에 그렇게 첫발을 들였던 곳인데, 얼마 전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장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그가 품은 커피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LA 한인타운의 중심이 되는 Wilshire 선상에 있는 카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널따란 주차장으로들어가면 페티오 한쪽 공간에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는데, 하얀 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구수하고 진한 커피 향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긴 통로 형태의 협소해 보이는 카페 전경이 보인다. 반지하 형태지만, 맞은편 문은 길가로 연결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천장과 흰 벽이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건너편 창에서 들어오는 따사로운 채광이 아득한 추억을 불러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단 위에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넓어진 공간이었다. COVID-19 때문에 원래 있던 긴 의자와 책상을 치운 상태여서 예전의 비좁던 카페가 아니라 어떤 무대나 갤러리에 온 느낌이 들었다. 마주 보이는 벽에는 사람들의 상반신을 찍은 흑백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고, 사진이 주는 느낌 또한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테이블도 의자도 없는 공간이 결코 횅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참 사진에 빠져 있다가 궁금증이 발동하여 주문대로 향했다. 커피를 주문하며 본지와 내 소개를 하였고 마침내 운영자인 B. 코씨와 권소정 씨를 만나 전시된 사진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예상했던 대로 한국과 미국에서 Fine Art를 전공하고 Sculpture와 Performance Art 작업을 하는 분들이었고, 미주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였다. 넓은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선뜻 마련해주어 쾌적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지금의 카페는 1989년부터 LA를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였던 ‘Andrew Shire’였다고한다. 개관 후, 한국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었고 백남준의 전시회도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후 갤러리가 자리를 옮기며 공간이 비게 되었는데, 작은 계단이 있는 구조와 전시할 수 있는 깨끗한 벽에 마음이 끌려 그들은 겁 없이 카페를 인수하였다. ‘모름’에서 생긴 용기로 허둥지둥 달려온 카페가 이제 제법 자연스러워졌다며 긴 시간의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6년이 지난 지금은 한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더 선호하고 찾는 곳이 되었다.

현재 Ordinary Or Extra Ordinary 쇼
현재 Ordinary Or Extra Ordinary 쇼

  “아무래도 작품 활동이나 구상을 위해 여러 곳으로 여행 다닐 기회가 많았어요.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늘 시작은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죠. 나라와 도시,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을 접하고 이해하는데 카페만한 곳이 없어요. 바리스타들, 줄을 서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말투나 행동, 옷 입는 모습 등 이게 그 도시의 첫인상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권소정 씨는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에피소드를 밝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시골에서 Artist Residency 로 두어 달 보낸 적이 있어요. 작업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아침이면 커피를 마셨어요. 어느 날, 급히 커피를 사서 나가려는데 주문받던 아주머니가 화를 내더라고요. 뭐가 그리 바빠 커피 한 잔을 앉아 마실 시간이 없냐는 거였어요. 제겐 익숙한 ‘Coffee Togo 문화’가 그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던 거죠. 그 후 매일 아침 카페 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고, 그 아주머니를 비롯한 몇몇 단골손님과 식사를 같이할 만큼 친해졌어요.

  뉴잉글랜드 쪽에서 지낼 때도 에피소드가 있었죠.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직원의 말투가 상당히 무뚝뚝했고 거의 인사도 없이 주문을 받았어요. 제가 이것저것 몇 가지를 추가로 부탁했는데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반응이 없더라고요. 긴가민가한 느낌으로 주문을 마쳤죠. LA에서 15년을 살았던제겐 그 무뚝뚝함이 낯설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데, 제가 부탁한 대로 꼼꼼히 챙겨주었더라고요. 여전히 잘 가라는 인사는 없었지만, 기분이 좋아지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무심하지만 담백한 친절이 그 도시의 인상이 된 것 같아요.”

Document Coffee Bar 전경
Document Coffee Bar 전경

  오래전 기억임에도 마스크 너머 그녀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어색함과 불안함을 그녀는 그렇게 카페라는 공간에서 풀어내 온 것이다. 아티스트의 예민함과 섬세함은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었던 순간마저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로 전환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녀는 유럽 여행 때 보았던 아름다운 기억도 꺼내 놓았다. 로컬 카페에서 종종 손님들이 자신의 뒷 사람을 위해 커피값을 미리 지불하여, 돈 없는 사람도 누구나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데는 큰 결심이나 큰돈이 필요치 않다. 작은 마음의 여유와 배려만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 카페가 있는 골목이나 동네, 도시는 참으로 밝을 것 같다. 그런 경험과 기억들이 지금의 다큐먼트를 만들게 했고, 앞으로도 사업을 이어가는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큐먼트의 상징적 전시물이 된 사진에 대해서 코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로윈 때마다 좀 더 재미있고 색다른 인테리어가 없을까 고민하다 직원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새 정기적인 사진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Covid-19이 시작되고 다큐먼트 팀과 커뮤니티의 안전을 이유로 한 달 반 정도 가게 문을 닫게 되었다. 어렵사리 다시 오픈하게 되었는데 바로 다음 날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벌어졌고 여기저기서 일어난 폭동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는 여러모로 마음이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가능하면 자주 새롭고 의미 있는 공연이나 이벤트를 기획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사진 프로젝트 외에도 음악 공연이나 시낭송회, 북 사인회, 아티스트 렉쳐 등 여러가지 행사를 했습니다. 2020년에도 많은 계획이 있었는데, 팬데믹 때문에 보류하였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클래식 음악 리사이틀, 그리고 한국의 판소리나 창을 하시는 분들도 초대해 공연하고 싶습니다.”

  불편하고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공간이 가진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사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번에는 지난 6년간 한결같이 카페를 찾아 준 단골손님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가 있는 소품을 하나씩 가져와 사진찍기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속 주인공들은 모델이 아니라 단골손님과 직원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가 프로처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코와 권소정 씨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친숙한 소품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아티스트의 배려가 담긴 함정 같은 장치가 결국 통한 것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신의 직업을 나타내는 악기나 작업 도구 혹은 시인의 첫 시집, 지난해 떠난 13살 반려견의 유골단지, 패션디자이너가 가져온 자신의 첫 번째 재봉틀, 9살 난 딸이 만들어준 조각선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주신 가죽 재킷, 첫 번째 스케이트보드, 지금도 꼭 껴안아야 잠이 오는 베개, 암 투병 때 매일 사용했던 커피 머그잔, 과테말라에서 LA에 이민 온 이유가 된 할머니와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암벽등반가의 신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자신이 작곡한 악보와 지휘봉, 할리우드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 등이 있었다. 소중한 것들과 함께 찍으니 심리적으로 안정된 표정과 자세가 나오고 그 모습이 사진에 담겨 보는 이들에게도 안정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 같다고 필자의 느낌을 전하자 권소정 씨가 반갑게 받으며 “매일 지나치는 보통 사람들이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질 때 보이는 특별함이 담담하게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하며 흐뭇해했다.

  예술은 그 어느 곳에서나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누군가로부터 읽히고 전해질 때 감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만든 사람이 추구하고 전하려는 맛을 끝까지 느낀다면 만든 사람은 분명 감동할 것이다. 어쩌면 결국 같은 맥락으로 전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고 나누는 것 역시 양 끝에 마주한 사람들이 온기를 느끼는 감동 이상의 격려가 되리라 믿는다. 커피는 술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술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옛말이 있다. 커피도 그런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중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품이나 음료가 아닌 그것을 매개체로 한 소통의 공간을 제공한다. 혼자 생각하려는 사람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도, 또 여럿이 대화를 할 때도 그 공간과 커피 향은 추억이 되고 기록이 되는 것이다.

  코씨는 “카페의 시작부터 모든 일이 사고처럼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늘 예상 밖이었다”며 “‘다큐먼트’라는 이름은 그 시작과 과정 또는 결말을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매일 여러 방법으로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소정 씨는 “시작은 멋모르고 해서 가벼웠는데, 알면 알수록 책임감이 생기고 무게가 쌓인다”며 심정을 털어놓았다. “아티스트로만 살 때는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났어요. 지금은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야 하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런 커다란 변화의 시간과 경험이 언젠가 또 다른 작업으로 저희를 끌어내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들이 전하려는 한잔의 커피와 커피 향이 밴 그 공간, 일상처럼 오가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쌓은 이야기는 결코 그 어떤 아티스트들의 작품보다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문화는 즐기는 것이다. 주어진 공간 속에서 함께 충분히 누리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다양한 맛처럼 조금은 다른 맛의 커피를 느낄 수 있는 박인애 시인의 <Espresso>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spresso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린다
카페 어둑한 구석에 몸을 묻고
벽걸이 텔레비전에 눈길을 맡긴다
화면엔 흐린 비가 내리고
여자를 뒤로한 채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이 줌 아웃된다
파국은 목울대를 훑고 지나는 아린 눈물
뮤직비디오 속의 짧은 사랑도
에스프레소처럼 독하다.

진한 향이 불러온 추억 한 잔
한 모금에 두근대고
두 모금에 흔들리고
급하게 삼키다 얹혀버린 첫사랑

25초에 운명을 건 급행열차가 질주한다
고압을 견디지 못해 토해내는 기적 소리
샷 잔에 떨어지는 검붉은 눈물
약속은 십 초 후면 떠나는
크레마 속으로 스러져가고
커피의 심장은 멈췄다.

오버랩 되는 쓰고 달고 시큼했던 순간들
짧은 만남일수록 뒷맛은 지독히 쓴 법
상처는 서서히 카페인에 용해되고
말문 막힌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슬픈데
반쯤 비워 낸 늙은 여가수의 사랑 노래가 편안하다.

오래된 비가 마음에서 갠다.

 

박인애 (Ann Park)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역임
뉴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문화센터 한국문학 강사.
세계시문학상, 해외한국문학상, 국제문학대상 수상
「말을 말을 삼키고 말은 말을 그리고」 「인애, 마법의 꽃을 만나다」외 다수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부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특파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20년 11월호(통권 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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