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Theme] 단언컨대, 올해의 아이콘입니다, ‘이병헌’
[12월 Theme] 단언컨대, 올해의 아이콘입니다, ‘이병헌’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20.12.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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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영화 아이콘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수많은 연기자들 중, 명실공히 ‘스타’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또한, 진정한 ‘배우’로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독자적인 티켓파워를 갖게 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둘 중 하나의 위상만 누린다 해도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드물게는 둘 다 충족시키는 사람도 있다. 1990년대 초, 청춘 드라마로 데뷔해 일약 스타가 된 후, 2000년대에 K-드라마의 해외 진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곧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하는 배우가 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언제부터인가 3-4년에 한 번씩 각종 영화상 트로피를 휩쓸다시피 하는 연기자, 이병헌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어 첫 주연작이었던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연기력, 부드러운 미소,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그는 곧 <아스팔트 사나이>(1995), <백야 3.98>(1998) 등 굵직한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고, <아름다운 날들>(2001), <올인>(2003) 등을 대히트 시키면서 드라마 시청률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스크린에서도 활약해 왔으나 이 시기 그가 출연한 드라마들의 리스트가 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이 ‘한류’의 확산과도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성공은 곧 출연자들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고, 한국 배우들의 해외 활동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홍콩 배우들이 가졌던 글로벌 스타의 지위를 우리 배우들이 누리게 된 시대, 이병헌은 그 낯설고도 경이로운 풍경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영화는 상대적으로 21세기 초반의 한류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기에 스크린에서 이병헌의 성공또한 처음에는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그는 어리숙하면서 정이 많고 때로 대담하기도 한 병장 ‘이수혁’ 역을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이후, 이병헌은 김지운 감독과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하게 되는데 <달콤한 인생>(2005)은 그를 ‘영화배우’로 각인시켜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느와르의 교과서처럼 회자되는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충성심 강한 부하, 보스의 여자에게 흔들리는 남자, 배신감에 복수를 다짐하는 건달 등 한 인물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성공하며 작품을 빛냈을 뿐 아니라 이 영화를 자신의 대표작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간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여성 배우들과 어김없이 좋은 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이 영화를 계기로 소위 남성적 장르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BH엔터테인먼트

  또한 처음에는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그는 어리숙하면서 정이 많고 때로 대담하기도 한 병장 ‘이수혁’ 역을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이후, 이병헌은 김지운 감독과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하게 되는데 <달콤한 인생>(2005)은 그를 ‘영화배우’로 각인시켜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느와르의 교과서처럼 회자되는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충성심 강한 부하, 보스의 여자에게 흔들리는 남자, 배신감에 복수를 다짐하는 건달 등 한 인물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성공하며 작품을 빛냈을 뿐 아니라 이 영화를 자신의 대표작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간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여성 배우들과 어김없이 좋은 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이 영화를 계기로 소위 남성적 장르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병헌은 아시아계 합작 영화나 드라마에 조금씩 출연하다가 <지. 아이. 조 – 전쟁의 서막>(스티븐 소머즈, 2009)으로 드디어 미국 영화 시장에 입성한다. 그는 <기생충>(봉준호, 2019)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위업을 달성하기 한참 전부터 할리우드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던 우리 감독들과 배우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병헌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최초의 한국배우다.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2016)에 그는 프레젠터로 초청되어 스티브 카렐, 줄리안 무어, 리즈 위더스푼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밖에도 이병헌이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데는 많은 명분과 이유가 따를 것이다.

ⓒ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데뷔한 이래 공백기가 거의 없었을 만큼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늘 새로운 역할을 찾아 변신해왔고,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영화의 규모나 장르, 상대역을 따지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그는 모든 것을 철저히 계산하고 연기하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스턴트맨에 의지하기보다 직접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기발한 애드리브를 하거나 연출적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공한 배우들이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건만 이병헌은 수십 년간 한 우물만 팠을 만큼 연기를 즐기고 사랑하는 배우다. 남다른 근성과 열정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올 초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2019)에서 이병헌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한층 더 성숙하고 능란해진 연기력을 과시했다. 그가 보여준 것은 한국 현대사의 실존 인물 및 사건을 묘사하는 데서 오는 부담감 대신 인물의 굳은 신념과 변화에 대한 논리였다.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이전에 그 캐릭터에 깊이 이입하게 만드는 마성이야말로 감독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가 많이 개봉하지 못했다는 전제는 있지만, 다시 한 번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연기였다.

  지난 7월, 이병헌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꽤 의미 있는 숫자인데도 특별한 행사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빡빡한 일정을 따라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한 지 1년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임하고 있다’는 말로 소회를 대신했다. 매너리즘이란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는 듯하다. 부디 30년 더, 그가 완성시킨 캐릭터를 보며 울고 웃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성은
영화학 박사. 201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수상 이후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공연과 리뷰》 PAF 평론상수상.

 

* 《쿨투라》 2020년 12월호(통권 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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