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Theme] 반전 매력, 복합장르 이준기
[12월 Theme] 반전 매력, 복합장르 이준기
  • 주찬옥(드라마작가)
  • 승인 2020.12.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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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왕의 남자>는 천만 관객이 봤지만 거품 낀 영화라고 한다. 이준기 보려고 열 번 이상 영화 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중복관람을 빼면 절대로 천만이 안 될 거라는 얘기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런 가십도 있다. 천만 영화 중 어떤 영화는 진정한 천만 영환데 그 이유가 이딴 걸 누가 두 번 씩 봤을 리 만무하니 진짜로 천만 명이 본 영화라고. 어떤 영화라고 밝히지는 않겠다. 나는 <왕의 남자> 관람을 한번으로 끝내긴 했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라 극장에 누구와 갔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예쁜 남자 공길이가 입을 여는 순간 뜻밖에도 중저음의 목소리여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있다. 이준기의 매력은 그 반전에 있다.

 

  우선 눈이 묘하다. 외꺼풀이라 옆으로 길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다. 대개 예쁜 남자는 웃어도 예쁘고 입 다물고 있어도 예쁜데 이준기는 느낌이 다양하다. 웃을 땐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해맑은 미소년이지만 입 다물고 무표정해지면 차갑고 냉정해 보인다. 냉혹한 자객 내지는 살인마 표정까지 나온다. 이 정도면 다양하다는 범주를 넘어서 극과 극을 달린다고 해야 하나? <왕의 남자> <마이걸>과 석류 음료 CF 등에서 이준기는 여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이미지였다. 유튜브에 ‘이준기 담배’라고 검색하면 이준기가 담배 피우는 동영상이 뜨는데 대단히 섹시하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은 아니고 일상생활을 촬영한 영상 같아 보인다.

 

  한편 <일지매> <조선총잡이> <보보경심> <무법변호사> 등에선 액션을 소화하며 남성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그리고 <악의 꽃>에 이르러서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남편, 아빠에서 섬뜩할 정도로 비정한 사이코패스까지 복합장르로 표정이 만개한다.

 

  <악의 꽃>은 지난 7월에서 9월 사이 tvN에서 방송된 드라마다.

  이준기는 본명은 도현수지만 백희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이코패스 역을 맡았다. 사이코패스라니!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는 어느덧 우리 드라마에서 흔한 캐릭터가 되었다. 수사물의 연쇄 살인범으로 입지를 굳히더니 요즘은 ‘주인공이 싸이코패스’까지 진화했다. <비밀의 숲>에서 감정 없는 조승우가 그러했고 최근에는 <앨리스>에서 주원이 그 역할을 맡았다. 설정은 그러한데 주원이 엄마가 죽자 격하게 오열하는 바람에 뜨악하긴 했지만. 사이코패스가 범인일 때 연기는 단순하다. 얼마나 더 잔인하게 연기하느냐가 관건이니까. 물론 단순한 연기라고 해서 쉽다는 얘긴 아니다. 그런 씬을 찍고 난 뒤 배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멘탈이 흔들려서 몹시 힘들다고 한다.

  <악의 꽃> 주인공은 고난이도 사이코패스였다. 이준기는 거울을 보며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연습하고 딸이나 아내에게 가면 쓰고 자상하게 군다. 적어도 자상하게 군다고, 행복을 연기하며 산다고  스스로는 믿고 있다.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한 이유는 아버지가 진짜 사이코패스였으므로. 그렇다고 ‘알고 보면 사실은 착한 남자’로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준기는 오랫동안 감정을 감추거나 억누르며 살아온데다가 거짓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죽어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래서 사이코패스화 된 인물이다. 마치 양파처럼 혹은 부드럽게 겹겹이 벗어지는 파이처럼 여러 겹의 의식을 가진 인물인데 그 인물 표현은 15화와 16화에서 다채롭게 드러난다. 이준기라는 배우의 아주 풍부한 표현으로.

  15화에서 이준기는 아내가 죽었다고 착각한다. 사이코패스 김지훈이 아내를 죽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준기는 사이코패스였던 아버지처럼 변하는데, 오랫동안 자신이 두려워했을 그 살인마의 DNA가 눈뜨는 순간을 긴장감 넘치게 표현한다. 그리고 김지훈을 막 죽이려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달려와 부르자 이준기는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감정이 변한다.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의 순간에서 정말 아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지, 죽은 아버지가 보이듯 죽은 문채원이 보이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가 드디어 안심하고 문채원에게 다가가면서 우는 모습. 악마처럼 변했던 그가 완전 무장해제 되어 어린애처럼 단순한 얼굴이 되면서 운다. 대단한 집중력이고 엄청난 몰입감이었다.

  인상 깊었던 16화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15화에서 감정의 대폭발이 있었으므로 그 다음은 밋밋한 뒤처리가 될 수도 있었다. 긴장감 넘치던 드라마의 마지막 화가 화해와 용서와 교훈이라는 어이없는 결말로 시청자를 실망시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기억상실이라는, 어찌보면 구태의연한 설정이 등장하는 바람에 약간 걱정됐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좋은 마무리였다. 대본도 문학적으로 잘 써진 대본이거니와 그걸 드러내는 풍부하고도 섬세한 연기라니.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도 하고 주위에서 관계를 알려주는데도 이준기는 자신을 믿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본심을 너무 많이 켜켜이 안으로 다져 넣어 살아왔기 때문에, 한 번도 자기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었고 그걸 이준기는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진심이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 자신을 믿는 순간을 멋지게 표현하며 엔딩을 끌어냈다.

 

  <왕의 남자>가 나온 지 15년 지났다. 배우에게 인생 캐릭터가 있다는 건 행운일 수도 있지만 덫이 될 수도 있는데 이준기는 공길이라는 강렬한 캐릭터에서 이미 멋지게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 이준기라는 배우에겐 이런 기대를 해도 좋겠다. 이 배우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을까? 그래서 어디까지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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