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Theme] 21세기형 과학소설(가)의 얼굴
[12월 Theme] 21세기형 과학소설(가)의 얼굴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0.12.0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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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문학 아이콘 김초엽
ⓒ블러썸 크리에이티브

  실은 데뷔부터였다. 김초엽은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관내분실」)과 가작(「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동시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원래 SF(science fiction)라고 약칭되는 과학소설은 한국 문학계에서 비주류였다. 여전히 SF를 과학소설이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로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상천외한 테크놀로지가 나와도 그것 또한 터무니없는 헛된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폄하다. 그간 한국 SF 작가들은 SF에서 ‘공상’이라는 평가절하의 단어를 빼고 온전한 과학소설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김초엽을 발탁한 심사위원인 배명훈·김보영이 대표적이다. 윤이형·장강명·정세랑 등도 SF와 문단문학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해왔고. 그러니까 이들이 먼저 닦아놓은 길이 없었다면, 김초엽이 SF 소설가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르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임을 덧붙여 둔다.

  김초엽의 등단작을 눈 밝은 문단 문학평론가들이 발견하고 지지했다는 사실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후 김초엽은 SF 전문지 외 일반 문예지에 작품을 청탁받아 실었다. 덕분에 2년 만에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묶어낼 수 있었다. 문단과 대중에게 공히 신뢰받는 작가 김연수는 “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라는 추천사를 남겼다. 괜한 공치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소설가의 이 같은 평은 김초엽의 작품을 접할 독자 반응을 예견하고 압축한 발언이었다. 2019년 여름 소설집이 출간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초엽은 여기저기 자주 호명되면서 상찬 받는 작가가 됐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10만부 넘게 판매됐고, 해외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으며, 문단의 유력문학상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영화 <벌새>의 감독 김보라는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스펙트럼」을 원작으로 차기작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영향력에 힘입어 김초엽은 ‘서점인이 뽑은 2020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축구선수 손흥민·방송인 송은이와 더불어 ‘서울국제도서전’ 홍보 모델로 발탁돼 도서전의 주제 ‘얽힘’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SF는 항상 우리가 지구환경, 우주, 우리 몸이 기술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유전적 공학을 통해 어떤 괴물들이 만들어졌는지를 다뤄왔습니다. 그래서 SF는 ‘얽힘’을 다루기 좋은 장르에요. SF를 통해서 현재의 얽힘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 명제이기도 한 다양한 얽힘을 표상하는 김초엽은 그래서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무관할 수 없는 작가가 됐다. 이때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김초엽이 ‘작가라면 오직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기존의 작가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김초엽은 SNS를 통해 현재 문학의 여러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실천으로 옮긴다.

  예컨대 지인과의 사적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쓴 작가의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김초엽은 피해자의 편에서 SNS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문단의 창작 윤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한 대형출판사와의 작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기득권을 가진 대형출판사 눈치를 보지 않고 신인 작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결행해 김초엽은 뭇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작가가 쓰는 문학과 작가가 사는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한 가지 사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단 성폭력 사태’로 작가가 쓰는 문학과 작가가 사는 삶의 불일치에 실망했던 독자에게, 김초엽은 ‘여성+SF’라는 소수자성을 긍정적으로 주류화한 롤모델로 인정받았다.

  그러면 김초엽 소설의 구체적 내용은 어떠한가. 등단작 「관내분실」을 소개하고 싶다. 소설 주인공은 ‘지민’이다. 임신을 한 지민은 세상을 떠난 엄마와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관내분실」에서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이 아니라 ‘마인드 접속기’가 있는 장소다. 도서관은 죽은 사람의 뇌를 스캔해 그의 의식을 데이터 형태로 보관해놓았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마인드가 고유한 자아와 의식을 갖느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중론은 마인드가 망자를 가상 세계에 현현시킨다기보다, 과거 기억에 근거해 망자의 반응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인드를 산 사람처럼 대하는 이들은 많았다. 지민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는다. 생전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임신 후에 지민은 고인이 된 엄마를 마인드를 통해서나마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

  그렇게 도서관을 찾은 지민은, 그러나 엄마의 마인드를 찾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엄마의 데이터가 도서관에 있기는 한데, 엄마를 특정하는 인덱스가 지워져 엄마를 찾을 수 없는 상태, 곧 관내분실이 되었다는 말을 담당자에게 듣는다. 지민은 잃어버린 엄마의 마인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찾는다면 대체 무슨 말을 건넬까? 「관내분실」은 ‘모성’으로 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테마를, 다면적인 서사로 전개하는 방식이 특징적인 작품이다. 눈치 챘을 테지만 김초엽 소설에는 온기가 흐른다. SF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금속성 이미지-비정함이나 건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SF 고전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김초엽 소설은 빅브라더 같은 악(인)이 등장해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고 그 다음을 수습해가는 플롯이 아니다. 김초엽은 거대한 스케일의 줄거리를 엮는 데 집중하지 않고, 바로 그 거대한 스케일에 가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된 존재들을 조명한다. 그런 발신에 응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0년 12월호(통권 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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