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화집 출간과 함께 열린 박치호展
[Gallery] 화집 출간과 함께 열린 박치호展
  • 이정훈(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0.12.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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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부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고향 여수에 내려와 작업에 매진해온 박치호 작가. 그의 결단과 외로운 창작의 결과를 엮은 화집(『부유 FLOATING』)이 출간되었다. 화집 출간과 더불어 박치호 화백의 작품 전시회가 지난 11월 14일부터 여수 화양면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Studio 창고(創考)와 해남 행촌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작품집에는 박치호 화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의 일관된 주제인 ‘Floating(부유)’과 ‘Oblivion (망각)’이 탄생되기까지의 고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치호_Floating(부유)

  <망각>이라는 부제로 열리는 박치호 전시회에는 그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두상, 그리고 몸이 등장한다. 그런데 두상은 두상대로, 몸통은 몸통대로다. 아마도 한 전시 공간에 배치된 몸의 두 부분은 양자의 관계를 묻게 한다. 무엇인가 잊혀졌다함은 이러한 부재와 결핍을 충만하게 채워줄 무언가를 전제한다. 망각과 달리 기억은 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한다. 탈각된 시공의 고리가 연결되어야 기억은 가능하다. 쪼개진 두 개의 단편이 하나가 되어 상징으로 완성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몸은 머리를, 머리는 몸을 만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치호의 작품에서 몸과 머리의 만남은 아직은 아니고, 영원히 아닐 것 같은 비극적 정서가 깔려있다. 물론 미술의 전통에는 엄연히 초상화와 누드화, 토르소 등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각각의 시각적 관행 속에서 나름의 완전성을 가진다. 팔이 잘린 채로 발굴된 세계문화유산급의 비너스상은 부서진 모습 그 자체로 원본처럼 각인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박치호의 작품 속 대부분의 두상이나 몸통은 유기적 전체에서 잘려 나온 이미지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두상을 화면 한가운데 붕 띄워 놓는다. 보다 묵직한 몸통은 신체 일부들이 절단된 상태로 서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머리와 팔이 없는 수동적 상황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눕거나 죽은 모습과 착각될 수 없는 옆모습이 담긴 몸이 그렇다. 두상의 경우 목 부분에서 흘러내리는 물감은 신체의 단면에서 흘러내리는 체액을 떠올리고, 배경이 없는 화면 한가운데 놓인 몸에 붙어있었을 얼굴과 팔은 화면의 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잘려 있다. 화면에 꽉 찬 몸의 경우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몸을 잘라낸다. 팔과 머리를 잃은 몸통, 눈 코 입이 생략된 얼굴은 망각에 대한 충격적 표현이다. 작가는 망각이라는 어스름한 주제에 가장 직접적인 신체 이미지를 겹쳐 놓은 것이다. 작가는 여러 몸 중 특정 몸, 즉 나이 든 여성의 몸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floating」 시리즈에서의 나이 든 여성의 몸통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망각을 대변한다. 관객은 무엇에 대한 망각임을 묻게 된다. 그의 작품은 여성의 삶의 주기 속에서의 망각뿐 아니라, 여수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국가폭력 사태인인 여순사건을 포함한다. 눈코입 없는 초상들은 깊은 슬픔에 그 신체 기관들이 떠내려 간 듯하다. 또는 풍화에 닳아버린 돌조각 같은 모습니다. 작가는 전쟁을 포함한 대량적인 인간 살육의 장에서 여성, 특히 어머니의 고통들이 망각되었음을 암시한다. 한국의 여성/어머니들은 생활력이 강하지만, 작가의 관찰에 의하면 바닷가의 여자들은 더욱 그렇다. 대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온 그녀들의 평생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출산과 육아, 그리고 평생 지속되는 과도한 노동에 의해 왜곡되는 과정이다.

  젊고 아름다운 신체의 기본 조건이 반듯한 대칭성을 갖췄다면, 그가 자주 본 시장 할머니들의 몸은 기울어져 있다. 삶의 무게가 이상적인 축을 흐트러트린 것이다. 인간의 직립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보다는 신을 향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대칭축의 흐트러짐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하게 한다. 인간의 두드러진 특징인 머리와 팔의 부재는 명확한 지표가 되지만, 박치호가 주목한 인간 중심축의 흐트러짐은 미묘하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신체적 균형이란 신체의 왼쪽과 오른쪽의 크기가 같음을 나타낸다. 균형을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만이 아니라 매력을 끄는 특징이라고 평가된다.

 

박치호_Oblivion_2020

  박치호가 관찰한 어촌의 여자들, 가령 해녀들은 늙어서도 물질을 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해녀가 입었던 옷을 주워서 콜라주한 작품이 있는데, 몸과 밀착된 잠수복은 그녀들의 몸을 떠올린다. 그러나 바닷물에 떠밀려온 이러한 간접적 피부조차 팔 부분이 잘려 있다. 어촌의 여성들은 주변화된 삶에 절망하여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곤 하는 남자들의 몫까지 책임지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며, 그 흔적은 온전히 몸에 남겨진다.
  이때 그 흔적은 상처일 수 있다. 트라우마는 기억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망각은 치유일까? 망각은 치유이기보다는 억압이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원초적 상처를 말한다. 멀게는 유기체에게 완전한 만족을 공급해 주었던 모태로부터의 단절, 어머니 젖가슴으로부터의 유리 등이 트라우마의 원형이다. 누군가에게는 심리적 상흔뿐 아니라 육체가 절단되는 상흔을 준다.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그러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어부인 아버지 일손을 돕기 위해 고깃배에 탔다가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동네 친구와 형들을 기억한다. 시원하고 초월적인 수평선이 있는 바다는 삶의 기원이자 종말이지만, 섬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바다는 구체적으로 사람이다. 1994년 첫 개인전 <노좆바다>展 때, 노 저을 때 필요한 기구인 배의 부속을 마치 인간같이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다는 인간에게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낳기도 한다. 얼마 전 전 국민에게 충격과 상처를 주었던 세월호 사건은 그에게 그리 낯선 사건도 아니다. 바다에 삶이 편재한다면 죽음도 편재한다. 더 기나긴 삶의 주기 속에서 큰 상처조차 둥글려진다. 바닷가의 유리 파편과 돌 같은 이러한 형태에 대해 작가는 “바닷물에 얻어맞아서 그런 형태가 나온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망각과 치유는 같은 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치유 과정일 수도 있다. 그는 “상처가 기억으로 저장된다”고 말한다. 그가 몸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이유는 기억된 상처가 몸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인간은 기억/망각하는 존재다.

 

  행촌미술관 이승미 관장은 “미술관에서의 전시된 작품은 정체된 작품을 보여주기 때문에 화가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없기도 하다. 작업실에는 때로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작품도 있을 수 있으나 이번 기획에서는 박치호 화가의 작업실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 작업도 하면서 책도 만들고 전시도 하는 기획을 만들었다”고 밝혔다.‘바다가 사람’인 여수의 화가 박치호의 전시는 여수시 화양면 이천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Studio 창고)과 해남 행촌미술관에서 12월 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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