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힐링 먹방의 새로운 패러다임: 〈더 먹고가〉, 〈강호동의 밥심〉
[1월 Theme] 힐링 먹방의 새로운 패러다임: 〈더 먹고가〉, 〈강호동의 밥심〉
  • 김세연(미디어비평가)
  • 승인 2020.12.29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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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음식 문화를 해독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려 했다. 저작 『날것과 익힌 것』을 통해 제시한 ‘요리 삼각형’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날것과 익힌 것의 대립은 자연과 문화의 대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는(날것) 시간이 흘러 부패하기도 하지만(썩은 것), 불로 요리하면 음식이 되기도 한다(익힌 것). 다시 말해 썩은 것은 날 것의 자연적인 변형이고, 익힌 것은 문화적인 변형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설명하기 위해 주목해야할 가장 중요한 항목이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MBN

  보릿고개 이후 요즘같이 밥 걱정을 많이 하는 날이 있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필자는 삼시세끼를 챙기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인지 최근에 알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재택근무로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로 쌀밥과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 먹는데, 생존요리라 할 수 있다. 메뉴 선정이 특히나 어렵다. 배달 음식으로 인한 지출도 늘었다. 돈도 돈이지만 일회용기 사용이 슬슬 걱정된다. 내 몸에 해로운 환경호르몬도 문제지만 자연에도 미안하다. 지구상에 이상한 역병이 도는 것도 그동안 우리가 환경에 지나치게 무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전에 없던 죄책감을 느낀다.

ⓒSBS Plus

  이 와중에 강호동이 ‘밥’을 주제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때 ‘강한 진행’의 대표 주자였던 그가 스타일 변신을 시도해 좀 더 편안하고 인간적인 방송을 추구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예능 장르를 찾은 듯하다. 이름하여 ‘힐링 먹방’이다. 신인 가수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고 게임을 진행하던 강호동은 이제 요리하고 먹이고 위로한다. 출연자와 시청자들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의외의(?) 소통력은 <한끼줍쇼>(JTBC)를 비롯한 몇몇 프로그램에서 이미 발휘된 바 있는데, 이번에는 <더 먹고 가>(MBN), <강호동의 밥심>(SBS Plus)으로 돌아왔다.

ⓒSBS Plus

  식사와 토크라는 중복된 소재를 어떻게 변주했을까. 우선 <한끼줍쇼>와 두 프로그램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더 이상 남의 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역수칙 준수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하겠지만, 최근의 정서가 반영된 기획인 것으로도 보인다.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박현영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남의 삶을 엿보고 부러워하거나 자신을 남에게 과시하기보다 내면에 천착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시간. 잠시 멈춤을 계기로 나의 우울과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SBS Plus

  그런 의미에서 <더 먹고 가>는 요즘 시류에 꽤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밥을 요리하고, 사람을 요리하고, 인생을 요리한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게스트의 성향,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 등 한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고려를 통해 ‘칭찬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는 육아에 지친 박정아를 위해 ‘한우 업진살 토마토 밥’을 짓고, 도시 생활에 익숙하면서도 토속적인 어머니의 맛을 그리워하는 허재를 위해 ‘토종닭 완자밥 구이’를 만든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 생경한 이름의 요리들은 그러나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어렵지 않게 감동을 자아낸다. “생각지 못한 맛”이면서도 “그리움의 맛”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맛”(2회 박중훈 편)인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자연주의와 슬로우푸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2014년 백종원의 ‘슈가보이’ 대란 이후 충격적인 양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유튜브 ‘먹방’이 유행하는 오늘날까지 음식을 테마로 한 방송들은 건강이나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먹고 가>는 좀 다르다. 솔방울을 푹 고아 국물을 내고 후박나무 잎으로 그릇을 삼는다.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직접 산을 탄다. “우리가 다녀온 북한산을 그대로 옮겨놓았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자연주의 밥상이다. “12월에 눈이 왔으면 좋겠다”며 밥상 주변에 하얀 쌀가루를 뿌리는 임지호 셰프는 어찌 보면 세계를 창조하는 조물주의 모습을 닮았다. 밥상을 통해 세계관을 보여주고 지친 게스트에게 힐링을 불어넣는 그는 프로그램 내에서 신과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 음식에 대한 과한 의미부여와 전언적인 메시지가 때때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의 재치로 균형을 잘 잡아가는 듯하다.

  <강호동의 밥심> 역시 게스트에게 힐링 음식을 대접하는 프로다. ‘우리는 밥심으로 살아가지만, 살다 보면 밥숟가락 딱! 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전제 하에 입맛을 돌아오게 만드는 밥상을 차려준다는 콘셉트다. 특이한 점은 ‘밥’이라는 소재를 전격적으로 내세우는 제목에 비해, 프로그램에서 밥은 소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음식은 방송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데, 심지어 2회 ‘신혼여행 중 생명을 구한 부부’ 편에서는 힐링 요리인 돈까스가 약 40초 등장한다. 쏜살같이 짧은 먹방 뒤에는 음식의 흔적조차 볼 수 없는 깨끗한 테이블 위에서 토크가 진행된다. 지극히 평범한 토크쇼다. 베테랑 MC들이 만들어내는 예능적 재미는 물론 있지만, 소재와 구성의 맞물림이 영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 트렌드 노트』(북스톤, 2020)에 따르면 코로나 시대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시간관념에 있다고 한다. 예전에 사람들이 비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고민했다면, 요즘에는 어떻게 ‘채울지’ 고민한다. 집에 발이 묶이면서 늘어난 여유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한 콘텐츠로 채우고자 한다는 것이다. 밥도 마찬가지다. 대충 한 끼 때우는 게 아니라, 허기진 심신을 제대로 채워줄 수 있는 식사(食事)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또 고민한다. 오늘은 뭐 먹지?

 

* 《쿨투라》 2021년 1월호(통권 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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