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잠잠한 격동
[문학 월평] 잠잠한 격동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01.0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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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드릴로, 『침묵』

  생각을 멈출 수는 없지만 말을 멈출 수는 있다. 그러나 SNS 시대 말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다.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자의적인 믿음 속에서, ‘나’는 자기 존재를 어필해 다른 사람과도 친밀해졌다고 여긴다. 그래서 좋아? 이렇게 물으면 답하기 궁색하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있기는 한데 마냥 좋다고 하기 곤란하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인정 욕망이야 다들 있기 마련이라도, 자기 존재 증명을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하면 사는 게 힘겨워진다. 그때 타인은 지옥이다. 해결책은 ‘단절’일지도 모른다. 타인이라는 지옥에서의 탈출이란, 관계를 끊는 결단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것은 어쩐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긍정적인 뉘앙스로 바꿔 다시 표현할 수 있겠다. ‘침묵’이 그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 침묵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경험하는 것이다. 매순간이 중요한 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자기만의 침묵』, 민음사, 2019) 노르웨이 탐험가 엘링 카게의 전언이다. 1993년 그는 혼자 걸어서 남극에 도착했다. 이런 사람이 침묵에 대해 한 말이라면 들을 가치가 있다. 엘링 카게는 침묵을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실제적인 원천”이라 강조한다. 환영 같은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으로 빠져드는 구체적인 경험을 하라는 그의 조언에 독자는 심드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리라는 게 원래 그렇다. 뻔한 느낌이 들고 별로 소용없을 것 같으나, 그게 도움이 된다. 80세가 넘은 미국 노작가도 비슷한 견해를 밝힌다.

 

  “가장 단순한 육체적인 것들을 챙겨야 해. 만지고, 느끼고, 물어뜯고, 씹고, 몸은 그 나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129쪽) 돈 드릴로가 올해 10월 출간한 소설 『침묵』의 구절이다. 그는 그간 발전을 거듭해온 과학 기술이 현대인의 삶에 도리어 악영향을 끼쳤음을 작품으로 써왔다. 『침묵』도 마찬가지다. 2022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디지털 네크워크가 작동을 멈춘 세계의 하루를 그린다. 100쪽 남짓한 짧은 소설이라 갑작스러운 변화의 총체적 양상을 담아내기보다는, 2월 첫째 주 슈퍼볼이 열리는 날 맨해튼 아파트에 모인 다섯 사람의 모습을 조명한다. 집 주인 다이앤·맥스 부부, 이들의 초대를 받은 다이앤의 옛 제자 마틴이 슈퍼볼을 시청하려고 대기 중이다. 그런데 TV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중국이 알고리즘을 통제했다느니, 외계인 침공이니 추측이 나오지만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다이앤·맥스·마틴이 당황한 정도라면, 테사·짐 커플은 위태롭다. 둘은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다. “그들 아래 어디선가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스크린이 꺼졌다. (……) 승객들 모두가 집에서 채널 4의 6시 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기들의 추락한 여객기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했다.”(27쪽) 자동차보다 비행기 사고 확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고 확률이 낮은 것이지, 아예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더구나 비행기 사고는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 일어날 수는 있겠으나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런 막연한 낙관이 깨지는 순간을 테사·짐이 맞닥뜨렸다. “과학, 기술, 상식에 버림받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39쪽)이 되고 만 것이다. 불시착, 하나 우연한 다행으로 두 사람을 포함한 승객들은 살아남는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내용의 『침묵』이 세간의 화제에 오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돈 드릴로의 신작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이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현재의 초상이라는 점이다. 돈 드릴로는 『침묵』을 코로나19로 뉴욕 봉쇄가 결정되기 몇 주 전 완성했다고 밝혔지만, “일상생활의 핵심에서 정지한 시스템들”(65쪽)과 그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의 언행은 코로나19 시대를 힘겹게 통과 중인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독자는 대작가에게 난관을 해결할 대안 제시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는 거 잊지 말아야 해.”(50쪽) 이것이 돈 드릴로의 답변이다. 상세한 대책 마련은 정부 임무이지 작가 역할이 아니니까. 그렇다 해도 뭔가 더 힘이 될 만한 메시지는 없을까? 궁금함에 이 책을 자꾸 펼치게 된다.

  아무리 뒤적여도 더 찾기 힘들다. 위에 언급한 대로, ‘가장 단순한 육체적인 것들을 챙기는 것’ 그러면서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되뇌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확산 이후의 세상을 견디는 데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보급되기 전까지 코로나19는 기승을 부리겠지.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사회는 이전보다 적막해지겠지. 이때 개인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으므로 가장 단순한 육체적인 것들을 챙기는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하면 득이 된다. 안 그러면 운명을 저주하며 본인을 무너뜨리고 말 테니까. 여기서 덧붙일 게 있다. 이를 재난이나 단절이 아닌, ‘침묵’으로 쓰는 돈 드릴로의 선택에 대해서다. 재난이나 단절은 명백히 마이너스 의미의 단어다. 반면 침묵은 플러스 의미도 갖는다.

 

  돈 드릴로는 비상상태 상황을 의도적으로 “전지구적 침묵”(90쪽)이라고 표현한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도 우리기술이 완전히 제 기능을 잃었다는 것”(69쪽)이라는 ‘기술의 침묵’, 그리고 이로 인해 의심 없이 기술을 누려왔던 어제까지의 자명한 세계를 의심하는 ‘사람의 침묵’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말해줘야만 해요.”(116쪽)와 같은 속삭임의 호소는 소음에 속절없이 묻힌다. 요점은 엘링 카게의 말대로 침묵을 “매순간이 중요한 순간이 되도록 하는” 사건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대에는 (비말 방지를 위해서라도) 침묵을 실천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으로써 한 가지는 깨닫게 됐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숨 쉬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침묵 탓, 침묵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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