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우리 모두 다 천재잖아요!
[공연 월평] 우리 모두 다 천재잖아요!
  • 장윤정(연극평론가)
  • 승인 2021.01.0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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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 육상천재〉

  한국 연극사에서 유의미하게 여겨지는 청소년극으로는 윤대성 작가의 ‘별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85년에 공연된 <방황하는 별들>은 청소년이 지닌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다루며 청소년을 담론의 주체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청소년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면서, ‘청소년극’의 정의와 개념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했다. <꿈꾸는 별들>(1986), <이름 없는 별들>(1988), <불타는 별들>(1989), <외로운 별들>(1991)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청소년극의 존재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 외에 ASSITEJ(세계 아동청소년 연극협회) 한국본부에서도 아동청소년극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청소년극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극단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아동극에 비하여 청소년극은 다소 몸집이 약소한 편이었다. 그러는 중에 2011년에 등장한 국립극단의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본격적으로 ‘청소년 관객’과 ‘청소년극’을 주목하면서 청소년극 연구와 제작에 열성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창작하고, 꾸준히 창작극과 번안극을 지속하여 제작해온 덕분에, 현재 청소년극은 다시금 조명을 받으며 그 위상이 변화하는 중이다.

 

  가능성을 향해 달려가는 12살
  국립극단은 <영지>(2019)를 시작으로 청소년극 12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발가락 육상천재>는 해당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육상천재의 발가락’에서 신체 일부가 주체의 자리로 옮겨간, ‘발가락 육상천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청소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작품임에도 성인 관객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호평이 들려온다. <발가락 육상천재>에는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발가락 육상천재>는 작은 바닷가 마을의 자갈초등학교를 배경으로, 4명의 육상부 아이들의 관계를 그려낸다. 늘 육상부 1등이었던 호준은 정민이 전학 옴으로써 2등으로 밀려난다. 아직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기인 12살 호준은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1등의 자리에 연연한다. 그런 호준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호준은 점점 무리에서 이탈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에 호준의 거짓말이었던 인어가 실제로 등장하면서, 아이들과 호준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때로는 서로 미워하다가도 때로는 함께 뭉치는 이들 사이엔 편협함이라곤 없다. 머리는 생선에 신체는 사람인, 인간사회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어의 존재를 아이들은 그저 ‘받아들인다.’ 인어로 인해 아이들은 각자 가장 긴 발가락을 잃어버리지만, 덕분에 역설적으로 각자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된다. 마치 인어가 닫혀 버린 아가미 덕분에 뛰어난 달리기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달리기 시합으로써 순서대로 발가락을 가져가기로 한다. 늘 꼴찌를 하던 은수도 2, 3등만 하는 상우에게도 1등의 가능성이 열린다. 정민과의 시합을 거부해왔던 호준도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달린다. 작품은 그렇게 제각각의 모습으로 달리는 아이들을 조명하며 막을 내린다.

 

  호준이 1등에 연연하는 것은, 유일하게 가장 잘하는 것이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호준의 정체성과 같다. 교내에서 ‘육상부’, ‘달리기’하면 곧 변호준으로 통용되었을 것이기에, 정민으로 인해 밀려나는 것은 호준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아이들의 눈에도 뻔히 보이는 호준의 거짓말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운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경쟁심의 발로가 아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호준에게서 관객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게 되고, 12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호준은 늘 허풍으로 가득한 인물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 솔직하고 용기 있는 아이다. 물에 빠진 인어를 적극적으로 구출해내고, 1등을 향한 자신의 열망을 솔직하게 발언하며, 정민과의 대결을 회피하지 않고 끝내 정면으로 맞선다. 이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호준에게 다음 단계로 성장할 인생의 변곡점이 될지도모른다.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의 변곡점, 모두에게 해당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변곡점, 각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고유성을 존중하게 되는 변곡점 등. <발가락 육상천재>는 ‘나’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이 조금씩 ‘세상’과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대하여 사유하게끔 한다.

 

  유쾌한 환상으로 가득한 놀이
  <발가락 육상천재>는 성인보다 단연 청소년 관객의 비중이 더 높은 편이다. 그런 만큼 작품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보고 들을 거리가 가득하다. 무대는 몇 가지 소품과 장치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써 다양한 장면을 연출해낸다. 예컨대, 굴곡진 무대가 배우의 연기와 관객의 상상만으로 바다가 되기도 하고, 곧게 뻗은 조명만으로 육상트랙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무대 전환의 순간조차 배우들이 랩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과 소통하니, 관객은 지속해서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지점은 음악을 재치 있게 활용한 것과 인어의 뱃속을 환상적인 이미지로 구현해낸 점이다. 인어가 음파에 영향을 받는다는 설정으로, 아이들이 <마술피리>의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 음악을 공격수단으로 사용한 지점에서 익살과 위트가 넘친다. 인어의 내장이 뜻밖에도 색색의 풍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을 마치 보란 듯 높이 걸어두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배우들이었다. 덩치 큰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위화감 없이 12세 남자아이들을 소화해냈다. 실제 또래들이 할법한 말과 태도로써, 단순하지만 진지한 또래 세계를 구현해내며 관객과의 교감을 형성했다. 인어의 경우, 실제와 가상사이에서 존재할법한 환상 속 인물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이은수 역의 김기현 배우와 인어 역의 박창욱 배우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고, 변호준 역의 임모윤 배우와 박정민 역의 홍사빈 배우, 김상우 역의 류석호 배우에게 <발가락 육상천재>는 처음 도전하는 청소년극이다. 그러니 배우들 또한 <발가락 육상천재>를 통해 12세 아이들 못지않은 변곡점의 시기를 거쳤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발가락 육상천재>는 관객에게 놀이로서의 연극성을 충분히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지점은 특히, 청소년 관객에게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 청소년기에 접한 작품이 연극에 대한 인식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발가락 육상천재>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서사와 형식 면에서 완성도를 갖춘 동시에 오락성까지 겸비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발가락 육상천재>가 완성되는 과정에는 실제로 청소년들의 역할이 컸다. 국립극단의 예술교육팀은 각 지역의 초등학생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초등학생들이 언급한 ‘천재’가 눈에 띈다. “뜨개질 천재”가 있고 “노는 방법 천재”가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천재들이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제목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명징해진다. ‘육상천재의 발가락’ 같은 건 관심 없다는 뜻이다.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제각각 ‘어떤 천재’인가다. ‘발가락이 천재’인 육상선수. 즉, 각자의 고유성으로 모두가 세상의 중심인, 우리 모두가 제각각의 형태로 천재며,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이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은 것 아닐까.

  호준을 비롯한 아이들 그리고 인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근원에 대하여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아직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한 시기의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옳다고 느껴지는 자신만의 무언가에 대하여 표현한다. 호준이 왠지 열려있는 인어의 배가 자꾸 신경 쓰여 초록색 박스 테이프로 인어의 배를 닫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인어는 다시 살아나고 극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발가락 육상천재>는 이같이 모두에게 잠재된 가능성과 고유성에 대하여 넌지시 전달한다. 동시에, 명확히 규정되거나 정의 내릴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 끝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아이들의 세계가 흥미로운 건, 그 어떤 것이라도 가능성이 잠재된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그러니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소중 할 것이다. 이미 다 자랐다고 믿는, 청소년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는 어른들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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