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코로나 시대의 ‘집밥’의 역사
[1월 Theme] 코로나 시대의 ‘집밥’의 역사
  • 신재근(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조리학과 교수)
  • 승인 2020.12.29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이야기 하는 ‘집밥’이라는 단어는 ‘일반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21세기에 들어서야 생성된 단어이다. 1인 가구와 맞벌이, 학교 급식이 보편화되면서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일이 줄어들고 외식과 배달 애플리케이션, 편의점 음식 등으로 집밥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먹방’이나 ‘쿡방’처럼 음식을 체험하고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코로나시대에 들어서며 배달음식과 밀키트등의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 대체식)이 식품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HMR을 넘어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 레스토랑 대체식)이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공장식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지고, 어머니가 집에서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을 그리워하게 되면서 ‘집밥’도 주목 받고 있다.

  문화(culture)의 어원인 라틴어 ‘cultra’는 ‘밭을 경작하다’라는 의미에서 왔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먹거리는 현시대의 우리 민족의 생존과 그 정체성을 나타낸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그 민족의 언어, 고유한 음식, 음악과 춤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음식은 항상 사회적 지위의 중요한 지표였다.

  우리가 오늘의 ‘집밥’을 먹기까지는 여러 시대를 거쳐 왔다. 우리민족 음식의 변화는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에 따른 식재료 발달과 전쟁과 기아를 거치며 새로운 먹거리가 유입되면서 우리의 음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근대의 과학 기술은 부뚜막을 현대의 모던한 주방으로 변화시키며 현재 우리가 먹고 향유하는 음식을 발달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식재료가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요리하는 주방기기와 주방기구, 또한 요리하는 공간인 주방이라는 하드웨어도 동시에 발달해 오며 현대의 우리나라의 독특한 집밥과 식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려시대의 집밥과 조선시대의 집밥은 사뭇 달랐다. 불교문화의 고려시대 밥상에는 지금처럼 고기나 달걀, 생선이 없는 채식주의자의 밥상이었을 것이고, 불교문화가 철폐된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쇠고기를 먹는 문화가 발달하여 밥상에 고깃국이 등장하고, 생선구이와 젓갈류가 우리의 입맛을 돋우었을 것이다.

  조선후기에 전래된 고추와 탱탱한 촉감의 결구배추는 20세기 초반에야 보급되었던 역사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식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밥상 이상의 차이를 보일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된다.’고 하였듯 음식은 한 개인의 민족적 정체성과 권위, 문화 향유의 특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현대의 음식은 향유하는 대상으로서 문화적 범주 안으로 생성된다. 마르크스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한국인이라 김치를 먹는 것이 아니라 ‘김치를 먹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규정하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미각과 현대의 미각은 많이 다르고, 현시대를 사는 남북의 입맛도 다르다. 같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민족인 탈북민들이 '남한 음식은 너무 달다'라고 생각하듯,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입맛과 북한사람들의 입맛도 다름이 나타난다. 하지만 김치라는 우리의 고유한 미각적 공통분모가 존재하여 한 민족임을 잊지 않게 한다.

  미각적 취향이란 귀족계급부터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한 민족의 음식문화를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계승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새로운 음식문화를 탄생하게 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김장’ 문화는 희미해져 가도 김치공장은 매일 ‘김장’이라는 정신문화를 이어가 콜드체인이라는 기술적 테두리 안에서 맛있는 김치를 우리의 식탁으로 배송될 테니 말이다.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만이 가진 배타적 입맛을 가지고 음식을 향유한다. 대한민국의 미각의 변화는 단일 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입맛과 고도성장 속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양 갈래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현대의 집밥의 메뉴들은 더 다양해지고, 세계화된 방향으로 수용적 입맛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각의 발전은 획일성의 민족주의적 입맛에서 다양성의 미각이 존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집밥 또한 그 시류에서 다양성의 메뉴로 변화하고 있다. 획일성의 사회가 아닌 다양성의 사회가 문명적인 사회이듯, 획일화된 하나의 입맛에서 다양한 미각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듯 음식 문화도 발전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미각이 과거 선조들의 미각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과 진보는 공존하고 집밥의 문화도 발전한다. 

  음식과 요리가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서점가에도 음식 인문학 책이 많아질수록, 실제 우리가 따뜻한 집밥을 먹는 비율은 하락한다고 한다. 팬데믹과 디지털의 결합은 언택트라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의식주의 디지털 대체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며 천정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의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정주하는 의식주의 생활양식의 발달에는 과거와 크게 변함이 없을 테니 말이다.

  1인 가족시대로 변화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언택트의 시대는 역으로 따뜻한 끼니를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의 의미도 되살리고 있다. 어머니의 따듯한 한끼를 생각하고 공동체적 사회를 지향하며, 배타적 입맛이 아닌 관용적이고 수용적인 입맛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새로운 집밥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 《쿨투라》 2021년 1월호(통권 79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